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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의결 그 후] 경영계 “경제활력 제고” VS 노동계 “최저임금 참사” 

 

진통 끝에 표결로 사용자안 채택... 역대 세 번째로 낮은 2.9% 인상으로 시간당 8590원

▎7월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 2020년 적용 최저임금안 투표 결과가 보여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잠정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859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 최저임금(8350원)보다 240원(2.9%) 오른 금액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1일 오후 4시 30분부터 13시간에 걸친 마라톤 심의 끝에 이날 새벽 5시 30분께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사용자안(8590원)과 근로자안(8880원)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사용자안 15표, 근로자안 11표, 기권 1표로 사용자안이 채택됐다.

사용자안 15표, 근로자안 11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0년 적용 최저임금(2.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제도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1998년 9월∼1999년 8월 적용 최저임금(2.7%)과 2010년 적용 최저임금(2.8%)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2018년 최저임금(7530원) 인상률은 16.4%였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였다. 정부와 여당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이 현실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한다는 현 정부의 공약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도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 대상 근로자는 최대 415만명으로 추산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에 의결된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137만∼415만 명, 영향률은 8.6∼20.7%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최저임금 의결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현재 임금 수준이 시급 기준으로 8590원에 못 미쳐 내년에 임금을 올려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토대로 내년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규모를 추산했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올해 적용 최저임금(8350원)을 의결했을 때, 노동부 추산으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290만∼501만 명이었고 영향률은 18.3∼25.0%였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로, 내년 임금(2.9%)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 규모도 그만큼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은 179만531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174만5150원)보다 5만160원 많다. 시급 기준인 최저임금의 월급 환산에는 유급 주휴시간을 포함한 월 노동시간 209시간이 적용됐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진통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590원으로 의결했지만, 최저임금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의결하면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확정해 고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간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불만을 가진 노사 단체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전국적 규모의 노사단체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등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의 제기에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최저임금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제도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최저임금에 대해 노사 양측이 이의를 제기한 적은 많지만, 재심의를 한 적은 없다. 지난해에도 경영계가 올해 적용 최저임금(8350원)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소상공인단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노동계의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만큼, 올해는 노동계가 이의 제기에 나설 전망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은 합리성과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며 “당연히 이의 제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해 고시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의 사용자는 최저임금을 노동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는 등 널리 알려야 한다. 현행 최저임금법상 최저임금은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가사(家事) 노동자와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선원 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했지만,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빚어진 잇단 파행은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노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근로자위원 4명을 포함한 노·사·공익위원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었다. 지난해 민주노총 근로자 위원들이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에 반발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을 처음부터 줄곧 보이콧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도 노사 어느 한쪽의 집단 퇴장과 불참에 따른 파행을 피하지는 못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양측이 팽팽한 대립을 계속하다가 어느 한쪽이 심의 과정에 불만을 품고 집단 퇴장하거나 불참하는 것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돼온 현상이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한 1988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표결 없이 합의로 의결한 것은 7번에 불과하다.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표결로 의결한 것은 올해를 포함해 26번이다. 이 가운데 노사 어느 한쪽이 표결에 불참한 적이 17차례나 된다. 경영계가 9번, 노동계가 8번 불참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탄력 받을 듯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만 참여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해 전문가들이 정한 구간 내에서 노·사·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 개입을 확대해 노사 협상 여지를 줄인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1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심의부터 적용될 수 있다.

한편,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2.9% 인상에 그칠 것이라는 소식에 증시에서 편의점 관련 종목이 강세를 보였다. 이지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시장 기대치를 반영해보면 3% 이내 인상률은 최저임금 상승의 부담을 받던 대부분 유통 업체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특히 가맹점주 수익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편의점은 이번 의결로 부담을 덜게 됐다”고 설명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493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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