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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교감 있었을 것”수출규제를 앞두고 미·일 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보나.“물론이다. 주요20개국(G20) 정상 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만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논의를 나눴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수출관리를 희망하기 때문에 일본도 동맹국으로서 동참의 뜻을 밝혔을 것이다.”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일본의 외교적 압박이란 뜻인가.“일본으로서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나라가 아니다. 화이트리스트는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다. 국제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수출 금지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현재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자 러시아 정찰기가 한반도 영공을 침범했다. 자신들에게 붙으라는 일종의 압력 행사다.”일본이 한국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한국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번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논의가 진척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5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약속을 희망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시아과도 이런 문제들이 걸려 있어 굽히지 않을 것이다.”수출을 계속 규제하면 일본 기업들도 피해를 입지 않나.“한국은 앞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재 국산화를 할 것이고, 다른 공급처를 찾을 것이다. 일본은 그런 희생을 치르더라도 한국에 일관성을 담보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기업 문화는 매출보다 규정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안보 이슈가 있는 국가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한국이 소재·부품 경쟁력이 뒤처지는 이유는.“대기업의 특수관계인이 독식하는 구조로 성장했기 때문에 기술 개발이 더디다. 대기업은 다른 사업자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하고, 중소·중견 기업들은 대기업을 불신한다. 안정적 협업 체제가 구축되기 어렵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아이신·덴소 등 많은 협력사와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지만, 친인척 관계로 엮인 사례는 없다. 네트워크와 신뢰가 중요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일본이 추가 카드를 꺼낼 수 있나.“일본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이후로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가족과 국가 단위 사이의 공공 영역이 외부로부터 침해 받는 데 굉장히 예민하다. 이 경우 정부의 방향성대로 따라간다. 자발적으로 한국인 채용을 중단한다든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끊을 수 있다.”
WTO 체제 무너지면 한국의 대응 카드 사라져미국이 중재자로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까.“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영향을 미칠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 집중하고, 한·일 문제는 양국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제조 2025를 겨냥해 지난해 전략물자 유출 관리 규정을 정했는데, 여기에 동맹국 모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화웨이 제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을 제한한다는 입장이다. 국제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미·일은 밀착 관계인데 비해 한국은 어느 쪽인지 불분명하다.”한국도 미국의 동맹국 아닌가.“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중국 양자택일을 선택 받지 않기 위해 외교를 펼친다. 단독으로는 협상력이 없으니,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UCMCA(기존 NAFTA) 등 새로운 블록화를 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끼기 어렵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칫 고립되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한국도 WTO 체제에서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 않나.“한국은 WTO에서의 협상력을 자신하고 있지만, WTO는 올해 12월 존폐 기로에 놓인다. WTO 체제는 애초에 미국·유럽 등 동맹체제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보 약정이 느슨해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중국·러시아·이스라엘 등이 참여하며 새로운 거버넌스의 구축이 필요해졌다. 미국은 국가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유무역보다 안보를 더 중시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많은 나라가 연대하고 있고, 앞으로 한국은 누구의 친구냐는 질문이 나올 거다. WTO가 붕괴하면 한국은 대응 카드가 없어진다. ”한국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중·일 관계가 개선된 가운데 북·미 협상이 펼쳐지면 한국의 역할이 없을 수도 있다. 외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와의 게임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경험이 부족하다.”
※ 후카가와 교수는?- 1958년 도쿄 출생으로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와세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30년 넘게 동아시아 경제와 제도, 산업 발전을 연구해온 지한파 경제학자다. 한국 학계·재계와 폭넓게 교류하고 있으며 동북아, 한일 관계 학술 행사의 단골 명사로 인기가 높다. 현재 일본 수상 관저 산하 아시아게이트웨이 전략회의 7명 멤버 중 하나로 활동 중이다. 한국 정치·경제에 대한 쓴소리와 조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스기사] 미국 반발·무용론 확산에 WTO 존폐 기로 - “미국·EU·중화권 3극 체제 될 것” 전망세계무역기구(WTO)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상설 기구로 격상시켜 1995년 출범했다. 미국 정부가 다자간 무역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47년부터 50년간 공을 들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WTO 체제 속에 글로벌 자유무역은 꽃을 피웠고, 1990~2000년대 세계 경제는 유례 없는 호황을 맛봤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도 고도성장기에 어느 나라보다도 WTO 체제의 수혜를 누렸다. WTO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의 세계 진출과 해외직접투자(FDI) 유치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WTO 상소기구는 4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를 둘러싼 한·일 분쟁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WTO는 한국의 입김이 제법 통하는 곳인 셈이다.그런 WTO가 위기에 처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는 가운데 분쟁 조정의 한계를 드러내며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우선 WT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무역 분쟁을 담당하는 상소기구부터 존폐 기로에 놓였다. WTO 상소기구 최종심 상급위원회는 7명의 수석위원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4명이 공석이다. 나머지 3명 중 2명도 올해 12월 임기가 끝나, 중국 출신 수석위원 1명만 남게 된다. 위원회를 3명 이상으로 유지하지 못하면 상소기구는 역할이 정지된다.공석이 생겨도 이를 채우지 못하는 것은 WTO의 산파 역할을 한 미국의 반대 때문이다. 수석위원 선임은 164개 WTO 회원국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미국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수석위원 임명을 저지하고 있다. 다른 회원국들도 미국 눈치를 보느라 선뜻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이를 두고 리카르도 라미레스 에르난데스 WTO 상소기구 전 수석위원은 지난해 5월 고별 연설에서 “WTO가 서서히 목 졸려 죽고 있다”고 평가했다.WTO는 16일(현지시간) 중국 정부의 태양광 패널·풍력탑 보조금을 둘러싼 미·중 갈등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며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성명을 통해 “이 판결이 미국 근로자와 기업에 피해를 주고 중국 국영기업 보조금에 대한 대응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강력 반발했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WTO 탈퇴 가능성 언급이 단순히 엄포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WTO를 탈퇴하면 다른 나라들은 대미 관세를 마음껏 올릴 수 있지만, 무역법 301조(수퍼 301조) 등 미국의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가 더욱 클 수 있다.국제사회 여론도 대체로 WTO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WTO의 분쟁해결 기능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보호무역주의 반대는 언급되지 않았다. 마이클 오설리번 크레디트스위스 전 최고투자책임자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 성장 둔화와 ‘통화 행동주의(monetary activism)’, 부의 양극화 등으로 세계화와 작별해야 할 때”라며 “세계 경제는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중심 아시아 등 세 권역으로 나뉘며 WTO와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역할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