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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한 펫보험, 왜?] 보장 범위 좁고 보험료는 비싸고 

 

보험 가입율 0.2% 수준… 반려동물 등록률 먼저 높여야

▎동물병원마다 병원비가 제각각이어서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동물 양육비, 특히 치료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 중 80%는 1년에 한 번 이상 동물 병원에 가고 연평균 3만~40만원을 치료비로 쓰고 수술이나 입원을 하게 되면 수백,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동물병원 1회 방문 때 평균 진료비용은 11만원에 이른다. ‘사람보다 비싼 동물 치료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비자시민모임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소비자 5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6%가 반려동물 관련 지출 비용 중 ‘의료비’ 부담이 가장 크다고 답했다. 4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동물병원 의료 서비스 발전 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동물병원비 부담은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반려동물 치료비 등을 지원하는 이른바 ‘펫보험’(반려동물 보험)이 있긴 하지만, 가입률이 높지 않다. 보장 범위가 좁아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험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도 지난해부터다.

사람보다 비싼 반려동물 치료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 수는 2012년 359만 가구, 2015년 457만 가구, 2017년 593만 가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구로는 10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이 급증한 것인데,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반려동물이 아플 때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 하지만 펫보험 가입률은 0.2% 수준으로 극히 낮은 편이다. 펫보험 시장 규모도 보험료 기준으로 2017년 말 현재 10억원 수준에 그친다. 계약 건수는 2638건 정도로, 등록 반려동물 수 대비 가입율은 0.22% 정도다. 이 비율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펫보험이 활성화한 영국은 보험 가입률은 25%에 이르고, 스웨덴은 가입률이 40%에 육박한다. 스웨덴은 금융사·수의사 등이 제휴해 펫보험 가입율을 최근 크게 끌어 올렸다. 이웃 일본은 펫보험 시장이 5000억원 정도고, 최근 5년간 관련 시장이 매년 18%씩 꾸준히 성장했다.

반려동물이 급증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펫보험 가입률이 떨어지는 건 그동안 펫보험 자체가 유명무실했기 때문이다. 펫보험이 국내 시장에 처음 등장한 건 2007년이지만, 손해율 악화 등으로 곧바로 사라졌다. 이후에도 같은 이유로 나왔다 사라졌다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펫보험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삼성화재·메리츠화재 등 대형사 등이 펫보험을 팔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성화재의 ‘반려견보험 애니펫’, 메리츠화재의 ‘펫퍼민트 Puppy&Dog 다이렉트’ 등이 대표적이다. DB손해보험의 ‘아이(I)러브(LOVE) 펫 보험’, KB손해보험의 ‘사회적협동조합반려동물보험’, 한화손해보험의 ‘한화펫플러스보험’, 현대해상 ‘하이펫’ 등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출시된 상품이다.

펫보험이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한 건 진료 시스템이 표준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료비는 동물병원마다 제각각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서울 시내 동물병원의 반려동물 예방접종비 4종을 비교한 결과 서초·강남·송파구의 평균 비용은 9만원으로 관악구의 7만1500원보다 1.3배 비쌌다. 또 반려견의 일반혈액 검사비, 중성화 수술(수컷) 항목은 동물병원별로 최대 6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진료항목별로 표준화된 정보제공 체계가 없어 진료항목(명칭)과 가격 등을 진료차트에 임의로 직접 입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펫보험을 청구하는 과정도 불편하다. 펫보험은 사람의 실손보험과 마찬가지로 동물병원에서 보험가입을 확인하고 보험사에 보험금을 즉시 청구해 지급받는 청구 간소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 소유자는 진료 후 동물병원에 지불한 진료비 영수증을 다시 한 번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지급받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비해 일본의 보험사들은 동물병원과 제휴해 보험금 지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를 통해 허위·과잉 진료 문제까지 해소해 펫보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동물등록제도’ 미비에 따른 정보 비대칭성도 문제다. 동물 보호법에 따라 2013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이 의무화됐지만 반려동물 등록 의무자는 동물 소유자로만 돼 있다. 동물의 등록 월령도 2개월이어서 반려동물의 판매시점과 등록 기간까지 공백이 발생했다. 다만 이 문제는 올해 3월 동물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반려동물 등록 시기를 거래시기와 같게 변경·개선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관계자는 “표준진료제도 서둘러 도입할 계획”이라며 “동물병원간 진료비용 차이가 발생함에 따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동물병원 표준진료제를 도입키로 하고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이와 함께 동물병원에서도 진료비를 공시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도 검토 중이다. 동물병원마다 진료항목에 대해 스스로 책자, 병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진료비를 공개하는 식이다. 지금은 공시 의무가 없어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표준진료제가 시행되면 펫보험 가입률도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보험개발원이 반려동물 진료비 청구 간소화 시스템인 POS(Pet Insurance Claims Online Processing Syste)를 개발했다. 동물병원에서 펫보험에 가입한 동물이 진료를 받는 즉시 보호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개발원은 한화·롯데·KB·DB손보·현대해상 등 5개 손해보험사와 시스템 구축 계약을 맺었다. 개발원은 또 POS를 정교화하기 위해 반려동물 개체식별 기능을 추가하고 전용 웹사이트도 구축한다. 개발원 측은 “사이트 구축이 완료되는 8월 이후엔 전국 모든 동물병원에서 POS를 이용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병원·보호자·업계가 윈윈할 수 있게 수의사협회 등과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등록율 30%도 안돼

표준진료제나 POS 확대 등도 시급한 문제지만,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등록제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려동물 등록제가 미흡하다 보니 보험에 중복가입한 후 보험금을 여러 번 청구하는 행태 등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펫보험은 여러 곳에서 가입해도 가입금액(보상한도)에 비례해 보험사별로 보험금을 나눠서 지급하는 비례보상 상품이다. 2개 보험에 가입하고 보상한도가 20만원이라면 각사가 20만원씩 주는 것이 아니라 10만원씩 나눠 지급하는 식이다. 이런 상품은 이중계약 여부를 조회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만 펫보험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중계약 조회시스템을 갖추려면 반려동물 등록번호가 필요한 데 등록률이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등록 반려동물 수는 모두 132만4000마리로, 등록률은 전체 추정 507만2000마리의 26.1%에 그친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496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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