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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타격] 기술 이전도 규제받는 시대에 대비해야 

 

저장장치 보관, 기술지도도 불가능할 수도… 안보 이유로 지정하면 전면적 통제 가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하루 뒤인 7월 22일 자민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본이 8월 2일 한국을 수출절차 간략화 우대조치를 받는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파장은 과연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일본 정부는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정령(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NHK방송과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개정안은 주무부처인 경제산업성의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장관이 서명하고 아베 총리가 연서한 후 8월 7일 공포될 예정이다. 절차가 완료되면 공포 21일 후인 8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일본의 세코 경제산업상은 이날 각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결정 이유에 대해 “안전보장을 위한 수출관리제도의 운영에 필요한 재검토를 했다”라고 설명하고 “수출관리 당국의 입장에서 엄격한 심사에 힘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무미건조하고 관료적인 설명이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유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이로써 한일 관계가 냉각기를 갖고 해결책을 모색할 여유를 잃은 채 더욱 파국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로써 그동안 교과서, 독도, 동해 명칭, 종군위안부, 징용공, 해상 초계기, 문희상 국희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 등으로 이어져온 다양한 한일 간 갈등이 이번 조치로 더욱 벽에 부딪히게 됐다.

한일 양국 사이에는 일본 정부는 7월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일본산 소재 3개 품목의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발표하면서 이미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때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12일 일본 통상산업성에 직원을 보내 실무자급 양자 협의를 시도했으나 일본 측은 이를 실무적인 설명만 하는 성격의 ‘사무적 설명회’로 규정했다. 7월 31일에는 여야 5당 의원 10명으로 이뤄진 국회 방일 의원단이 해법 모색을 위해 1박2일간 일본을 방문했지만 일본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과의 면담도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강경화 외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참석차 방문한 태국 방콕에서 8월 1일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을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회담을 마쳐야 했다. 강 장관은 이날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강 장관은 이번 수출규제 문제가 “강제징용 판결 문제와 관련이 있다”며 한국의 우대국가 제외에 반대했지만 고노 외상은 “안보를 목적으로 한 정당한 조치”라며 이를 거절했다. 일본 각의는 결국 8월 2일 예정대로 한국을 수출절차 간략화 우대 조치 대상국가에서 제외하는 정령 개정안을 통과했다.

백색국가는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 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다. 이번 조치 이전까지 백색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모두 27개국이었다. 대상 국가는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인 북미의 미국·캐나다와 나토와 유럽연합(EU) 동시 가입국인 서유럽의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덴마크·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동유럽의 폴란드·체코·헝가리·불가리아가 포함됐다. 나토만 회원국인 노르웨이, EU만 회원국인 오스트리아·아일랜드·스웨덴·핀란드, 둘 다 회원국이 아닌 서유럽 국가 스위스, 대양주 국가 호주·뉴질랜드,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가 포함됐다. 대부분 북미와 유럽 국가이며, 남미에선 아르헨티나가, 아시아에선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 정부가 이 가운데 특정 국가를 제외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한국은 2004년 백색국가 명단에 올랐다. 경제산업성은 우대조치 대상 국가를 부르는 용어였던 ‘화이트 국가’를 앞으로 ‘그룹 A’로 바꾸기로 했다는 내용도 이날 함께 발표했다.

일본 기업은 한국 등 우대조치 대상 국가를 대상으로 수출을 할 때 군사 전용 우려가 있는 규제 품목에 대해 원칙적으로 3년간 개별 허가수속을 면제하는 ‘포괄 허가’를 인정해왔다. 한국이 대상국가에서 제외되면 포괄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되고 원칙적으로 수출계약을 할 때 개별허가가 필요하게 된다.

규제품목 외에도 군사전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경제산업성이 개별 허가수속을 요구할 수 있는 ‘캐치 올’ 제도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자동차로 사용하는 나사도 군사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수출 전에 허가수속을 요청할 수 있다. 우대국가 대상국가는 이런 조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대상에서 한국이 제외됐다는 것은 앞으로 일본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 제조에 들어가는 나사 하나까지도 대한 수출을 옥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음만 먹으면 나사 하나도 수출 규제 가능


하지만 이 조치로 일본 정부가 대상 품목의 대한 수출을 틀어막거나 힘들게 할 수는 있지만, 숨통도 하나 틔어있다. 요미우리는 기업이 엄격한 수출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등의 요건을 만족시키면 우대조치 대상국가가 아닌 나라에 대해서도 개별적으로 포괄허가를 이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이번 수출 규제 조치가 한일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한정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로 한국이 우대조치 대상국가에서 제외되어도 당분간 일본과 협상할 여지는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당장 상당수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심리적·절차적 부담을 안게 됐다. 일본 경제산업성 리스트에 따르면 한국이 우대대상 국가에서 제외되면 용향을 받는 품목이 모두 857개나 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광학 부문에서 주로 타격이 예상된다. 타격은 일본이 기술력에서 앞서고 한국이 이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얻는 산업에 집중될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일본산 소재나 부품 중에는 국내에서 대체하기가 힘든 제품도 여럿 있다. 예로 삼성이 차세대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용하는 극자외선(EUV)용 블랭크 마스크는 일본 광학기기 제조업체인 호야만이 생산한다. 세계 유일이 공급원인 셈이다. 내충격성 렌즈인 ‘호애 렌즈’ 등 소비자 광학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호야는 반도체 소자 제조용 마스크를 비롯한 반도체 부문, HDD를 비롯한 디스크 부문, 안과용 이식 렌즈와 내시경 렌즈를 비롯한 의료 부문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레이저 부분에서도 대체가 불가능한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리소그래피 장비는 전 세계에서 일본 니콘과 네덜란드 ASML 밖에 없다. 이를 도입할 때 일본의 수출 규제로 납품사의 가격 경쟁 없이 한 회사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면 자칫 가격이 오를 우려가 있다.

문제는 사태가 일본의 대한 물품 수출 규제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의 이번 조치가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해 수출을 규제’하는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이다.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는 일본이 보유한 고급 기술과 물질이 대량파괴무기(핵무기·화학무기·생물무기·미사일)와 통상무기의 개발·제조·사용·저장 등을 하려는 국가로 건너가 국제적인 위협이 되고 지역 및 글로벌 정세를 해치는 것을 막자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한국에 우대조치를 받는 나라에서 빠진다는 이야기는 이럴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고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이는 한국의 기업과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넘어 한국이라는 국제 브랜드의 가치와 국가신뢰도에도 타격을 주게 된다.

더욱 문제는 기술 이전에 대한 규제다.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가 레이와(令和) 원년 5월, 즉 올해 5월에 작성한 ‘안전보장무역관리에 대하여’라는 보고서에는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해 기술 규제도 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안보 문제를 이유로 일본 정부가 기술 이전을 규제할 수 있는 범위는 광범위하다. 일본 국내에서 외국으로 기술을 넘기거나, USB 등에 기술 정보를 담아 국경을 넘어가는 행위, e메일을 통해 외국으로 기술 정보를 보내는 행위, 심지어 일본 국내에서 거주자가 비거주자에게 기술을 제공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이 모두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에 있는 외국계 기업이나 지사도 거주자로 분류해 여기에서 외국의 본사로 기술을 넘기는 것을 허가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전 규제 대상 기술을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계에서는 일반적인 제조 과정 이전의 모든 단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술 이전 규제대상을 설계연구, 설계해석, 설계개념, 프로토타입(미완성 버전)의 제작과 시험, 파일럿(시험운용) 생산계획, 설계 데이터, 설계 데이터를 제품에서 변화시키는 과정, 외관 설계, 통합설계, 레이아웃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기술 이전을 아예 틀어막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제조 분야의 경우 건설, 생산 엔지지어링, 제품화, 통합, 조합 및 조립, 검사, 시험, 품질보증 등 모든 제조 단계에 걸쳐 기술 이전을 규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사용의 경우도 조작, 보수점검, 수리, 분해수리 등 설계와 제조 이외의 모든 단계에 걸쳐 기술 이전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제공의 형태까지 규정하고 있다. 기술 데이터를 문서, 디스크, 테이프, 롬 등 매체 장치에 기억된 프로그램, 청사진, 도면, 수식, 설계사양서, 매뉴얼, 지시서 등 다양하다. 다만 클라우드 컴퓨터는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술지도, 기능훈련, 작업지식의 제공, 컨설팅 서비스 등 지술 지원도 금지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국이 산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일본인 고문이나 기술자로부터 상당한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전수 받아왔는데 일본 정부가 이를 중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분야에서는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한일 간 협력이 이뤄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일본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중단시키거나 어렵게 할 경우 한국은 부품, 소재 등 물품 수출 금지에 버금가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벌써 올해 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1980년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저성장 시대가 열릴 수 있다. 활력과 성장률이 떨어지면 가뜩이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가 없다. 이는 사회 불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한일 갈등이 양국의 각 정치권에 대한 지지율을 높여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이다. 국민이 이번 사태를 통한 경제적 타격을 가시적이고 직접적으로 겪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본인이 직장을 잃거나 수입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한국 경제에 대한 타격을 타인의 고통으로나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는 동안 정치권은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고양하면서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다. 더구나 저성장의 책임을 일본 탓으로 미룰 수도 있다. 이런 이전투구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국가 경쟁력 높일 근본적 대수술 절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앞줄 왼쪽 뒷모습)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오른쪽)이 8월 2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단순하게 국내 공급, 기술 자립, 대체 공급지 발굴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수준을 넘어선다. 과학기술과 실업 교육부터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본과 외교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해 당장 우리 경제가 겪는 어려움부터 해결하도록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한일 갈등에서 완승이나 완패란 있을 수 없다. 결국 경제적인 영향과 감정 사이의 방정식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존재하는 한일 양국이 갈등을 줄이고 공존하는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지 않으니 말이다. 신속하게 출구 전략을 마련할 때다. 주판알을 튕기면서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496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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