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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이기려면 

 

시간비일관성과 ‘소 치는 목동’... 노후준비는 결심 순간 바로 실천해야

소 치는 목동이 송아지 한마리를 잃어버렸다. 근처를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송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낙심 끝에 목동은 제우스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도둑을 잡게 해 주면 은혜에 대한 답례로 송아지 한마리를 바치겠노라고. 기도를 마치고 얼마 후 목동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 사나운 사자가 자기가 잃어버린 송아지를 물어 뜯다가 이제는 자기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목동은 단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었다. 목동은 다시 무릎을 꿇고 제우스신을 찾았다. “오 위대하신 제우스신이여! 저는 도둑을 찾게 해 주면 송아지를 바치겠노라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도둑의 발톱을 피하게만 해 주시면 황소 한 마리를 바치겠나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이 우화의 목동은 잃어버린 송아지를 찾기 위해 신에게 맹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경죄를 저질렀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다. 약속할 당시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잃어버린 송아지를 찾기는커녕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졌다. 목동의 경우처럼 어느 시점에선 최적이었던 선택(송아지 도둑을 잡게 해 주면 송아지 한마리를 바치겠노라고 신에게 약속한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최적이 아닌 상태로 변하는 것(도둑이 다름 아닌 자신을 죽일지 모를 사자로 판명된 것) 을 ‘시간비일관성’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사에서도 시간비일관성 문제에 빠져 올바른 결정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197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시기였다.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본격 연구하기 시작한 건 이때였다. 왜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까? 주범은 바로 정책 당국이었다.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려고 통화 공급을 줄이다가 그 목표가 달성될 즈음에 선거를 앞두고 실업을 줄이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슬그머니 통화 고삐를 풀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경제정책을 단기적 또는 정치적으로 쓰면 시간비일관성 문제에 걸려든다. 개인의 경제활동도 시간비일관성 때문에 차질을 빚는다. 노후준비가 그렇다. 노후준비를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면서도 막상 그 시점에 되면 다른 데 돈을 써버리게 된다.

개인연금 절반가량 중도해지

한 증권사가 직장인 1152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노후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3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응답한 이들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30대가 37%로 가장 많고 50대도 32%나 됐다. 이 설문조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얼마나 노후준비에 소홀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노후준비만큼은 되도록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노후에 타게 되는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비 충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열심히 붓는 등 각자 알아서 노후대책을 세워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문제는 대부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막상 노후준비에 들어가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다른 돈 쓸 데가 생겨서다. 자녀 교육비라든가 내 집 장만 같은 재무 목표가 발등의 불로 다가온다. 퇴직연금의 90% 이상이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개인연금의 절반가량이 중도해지되는 건 그래서다.

사람들은 장기적으론 올바른 선택을 하고자 하지만 단기적으론 잘못된 선택을 한다. 금연이나 다이어트가 그 예다. 흡연자들은 흔히 건강을 생각해 새해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을 한다. 이 결심은 12월까지 유지되지만 막상 1월이 되면 마음을 바꿔 담배를 입에 물게 된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소망하는 내용이 미래에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예는 일상생활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미국 하버드대의 토드 로저스 교수는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급여의 2%를 자동이체해 저축하는 것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모두가 동의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부터 즉시 저축이 시작된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엔 오직 30%만 참여하기로 했고, 1년 뒤 저축이 시작된다고 했을 때엔 77%나 동의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저축참여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시간 때문이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더 가중치를 두는 인간의 속성이 부른 결과다. 같은 돈이라도 미래에 사용하는 것보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을 해야 장기적으로 높은 효용을 얻게 될지 잘 알고 있지만 현재의 효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을 미루려 한다는 것이 시간비일관성이란 개념이다.

이 실험과 우리의 노후준비 행태를 대비해 보자.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사람들은 저축을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퇴직 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그래서 저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저축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망설이거나 이런 저런 핑계로 저축을 미룬다. 마치 금연이나 다이어트를 미루는 것처럼.

하지만 노후준비는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가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매달 100만원씩 10년 저축하면 이자 없이도 1억2000만원을 모을 수 있다. 수익률 3%만 잡아도 1억4000만원이다. 같은 금액을 30년 넘게 같은 수익률로 굴리면 5억8000만원이 된다. 수익률이 5%라면 8억2000만원으로 늘어닌다. 일찌감치 꾸준히 저축할수록 수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이를 복리효과라고 한다.

미래의 효용보다 현재의 효용 중시

노후 삶의 질은 수익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수익을 키우려면 자산이 많거나 재테크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저금리·저성장 상황에선 재테크로 자산을 불리는 것이 요원한 일이다. 방법은 있다. 저축기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가 복리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자산증식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에선 주식이나 펀드 같은 위험자산 투자에 승부를 거는 것이 유리하다. 위험자산은 원금손실이란 뼈아픈 약점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은 그 약점을 덮어준다.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릴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해볼 만한 게임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일찍 저축을 시작하고 싶지만 막상 행동에 옮겨야 하는 순간이 오면 결심은 흐물흐물해진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루지 말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다만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자동이체를 이용할 수 있다. 한번 큰맘을 먹고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고 자동이체를 설정하면 끝이다. 정기적으로 매달 일정금액이 쌓이게 해두고 그 돈은 없는 셈 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든든한 노후준비를 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니는 직장에서 주는 명절 떡값이라든가 격려금 같은 것도 이 계좌에 넣도록 하자.

‘미래의 나’는 지금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현재의 나’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기 때문에 노후준비의 효용을 잘 모른다. 노후준비를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는 이유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이기는 길은 단 하나, ‘지금 바로 시작하라’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96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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