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오리무중 홍콩 사태 어디로] 글로벌 경제위기 도화선으로 비화? 

 

트럼프, 중국 강경 대응에 홍콩 ‘특별지위’ 철회 가능성... 아시아서 자금 이탈, 홍콩 달러 하락 등 금융 불안

▎8월 18일 홍콩 시민 200만 명은 도심에 집결해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위기에 적중한 학자들은 또 다시 비관론을 펼친다. 10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하는 쇼크를 예측하면 큰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어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을 예견한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동안 예언자 대접을 받기도 했다. 경제위기 전망이 틀린다 한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학계나 대중 모두 비관론자의 빗나간 전망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며, 금세 잊고 말아서다. 학자나 평론가에게 비관론은 짧은 시간 명성을 얻기 위한 리스크 낮은 투자법인 셈이다.

증권가에는 ‘명성은 비관론자가 얻고, 돈은 낙관론자가 번다’는 격언이 있다. 학자와는 달리 투자가들은 경제 분석을 실제 자금 운용에 적용하기 때문에, 비관론을 펼치는 일이 적다. 이 때문에 최근 스티브 아이스먼(Steve Eisman) 뉴버거 버만(Nueberger Berman) 그룹 머니매니저의 비관론이 눈에 띈다. 아이스먼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빅 쇼트(Big Short)]의 실제 주인공으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기지 채권의 원금상환을 보장해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를 구매해, 그가 몸담았던 프론트포인트파트너스(Frontpoint Partners)의 헤지펀드 규모를 7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불렸다.

그런 아이스먼은 미국 등 글로벌 자산시장의 체력이 약해진 가운데 성장률 둔화, 미·중 무역분쟁 등 실물 부문 악화가 겹쳐 글로벌 경제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미국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이 저하됐고, 불황이 닥칠 경우 회사채 시장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특히 최근 불거진 홍콩 사태가 ‘블랙스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정치 이슈가 도화선이 돼 잠재된 여러 리스크가 연쇄 폭발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홍콩 사태, 미중 갈등으로 번져


실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로 격화한 홍콩 사태가 미·중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홍콩 사태를 문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홍콩 대규모 집회와 관련해 “중국이 만약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와 같은 무력 진압에 나설 경우 (미·중 무역협상)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중국에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4일 트위터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홍콩 문제를 신속하고 인도적으로 해결할 것이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 사태를 관망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외교적으로 활용할 계산임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있자 무력 진압을 준비하던 중국 공산당도 일단 숨을 고르는 분위기다. 중국 관영 언론 인민일보·환구시보는 8월 12일 중국 선전(深)에 모인 무장 경찰 모습을 공개했고, 이튿날 홍콩의 인터넷이 모두 차단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며 양측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8월 19일 시진핑 주석은 “위대한 장정 정신은 공산당과 여러 민족, 인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대한 정신 동력이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역사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의 장정의 길을 잘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8월 초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는 “엄격하고 준엄한 법 집행으로 최대한 빨리 혼란을 평정하되 일말의 양보도 하지 말라”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한결 유화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 홍콩 사태의 해법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중 갈등의 표면화와 사태 장기화 우려가 커지며 홍콩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송환법 시위가 시작된 이후 홍콩 증시의 시가총액은 5000억 달러나 급감했다. 홍콩 증권시장의 규모는 약 5조 달러로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 올 2분기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3% 줄었고, 6월 홍콩 IHS마킷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3.8로 하락하는 등 실물 경기도 나빠졌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미주와 유럽의 아시아 관문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홍콩의 국제적 위상이 추락하면 중국 등 아시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백악관 내 강경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8월 14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홍콩은 영국에 기반을 둔 신뢰할 만한 법적 체계가 있다. 중국 본토 투자의 60%가 홍콩을 거친다”며 “그런 명성을 잃으면 중국에 엄청난 경제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실익을 두고 고민이 깊다. 중국으로서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홍콩을 놓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자칫 이번 사태가 티베트·위구르·네이멍구 등지의 분리 운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이 헌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영구집권의 초석을 닦은 개헌 첫해 벌어진 일이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홍콩에 대한 특혜를 철회 카드를 이미 수중에 품었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중국이 (홍콩에) 너무 깊게 개입하면 미국은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철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을 제정해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에는 미국 비자나 사법, 무역 투자 등과 관련해 특혜를 줬다. 미국 기업의 아시아 사업을 지원할 목적에서다.

“금융 중심지로서 매력 잃어” 불안감 확산

미국은 현재 홍콩의 두 번째 무역파트너며, 홍콩의 외국 기업 18.3%가 미국 회사다. 볼턴 보좌관의 말마따나 이런 대중 투자의 60%가 홍콩을 거치기 때문에 미국이 홍콩에 대한 혜택을 중단하면 중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영국은 중국에 홍콩의 자율성과 자유 보존을 지켜달라고 당부했고, 유럽연합(EU)은 “모든 폭력을 거부하고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포괄적 대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는 등 서구사회 전반의 압력도 거세다. 홍콩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홍콩은 시위 등 영향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자 성장 전망을 낮추고 3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발표했다. 다만 중국이 송환법을 관철할 가능성이 있고, 금융 허브로서의 신뢰가 떨어져 중장기적으로 홍콩 경제는 반등에 성공하긴 어려울 수 있다. 블룸버그는 “홍콩 상황이 최악으로 가지 않아도 이미 홍콩은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 매력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중국은 상하이·선전 등을 제2의 홍콩으로 키울 생각이지만, 미국 정부로부터 홍콩 수준의 제도적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워 발전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미국과 영국의 채권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 발생에 취약한 상태라 홍콩 사태 등 정치·외교적 문제가 불거지면 파장이 세계 경제로 확산할 수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각에서 홍콩 시위가 블랙스완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제기하고 있다”며 “홍콩 달러 가치 하락 등 홍콩 금융·경제 불안이 확산하면 아시아 전체 금융시장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499호 (2019.09.0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