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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인력관리 들여다보니] 기술수출 공시한 날 R&D 핵심 임원 이직 

 

순혈주의문화 강해 비공채 R&D 전문가는 성과 좋아도 설 땅 좁아

▎사진:유한양행
지난 7월 1일, 유한양행의 연이은 기술수출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유한양행은 이날 베링거인겔하임에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를 기술이전 했다고 밝혔다. 총 기술수출 금액 8억7000만 달러(약 1조255억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이었다. 하지만 코오롱 인보사 사태 등으로 K바이오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앞선 대형 기술수출과 비교해 유한양행의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기술수출 발표 당일 종가 기준 2.86%(7000원) 오르는 데 그쳤고 다음날부터는 주가가 오히려 빠져나갔다. 8월 30일 현재 23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어 기술수출 발표 전인 6월 28일(24만4500원) 종가보다 낮다.

증권가에서는 제약 바이오 종목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가 유한양행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제약 업계에서는 조금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바이오 종목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뿐 아니라 유한양행의 폐쇄적인 기업문화 탓에 미래 연구개발(R&D)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7월 1일, 제약 업계에선 유한양행의 기술수출보다 유한USA 법인장을 맡고 있던 최순규 전무가 하나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뉴스가 더 회자됐다. 제약 업계에선 최 전무의 갑작스러운 이직 소식이 유한양행의 R&D능력에 불신을 갖게 했다고 본다. 한미약품 등이 수출한 기술이 반환되는 등의 악재로 바이오 시장의 투자심리가 나빠진 가운데, R&D 조직에서 나타난 불안 징후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는 해석이다.

기술 수출해도 기술인재 못 잡아

어느 산업군을 막론하고 연구개발 핵심 인력의 이직은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최 전무가 법인장을 맡았던 유한USA는 유한양행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설립한 미국 법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혁신 신약 개발에 나서는 유한양행에 핵심적인 곳이다. 유한양행에서 중앙연구소장으로 재임하며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이끌어 조 단위 기술수출 성과의 주역이 된 최 전무는 유한USA 설립 과정을 총괄해왔다.

그런데 최 전 전무가 유한USA 법인장에 발탁된 뒤 불과 6개월을 못 채우고 다른 회사로 옮겨가며 유한양행은 R&D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핵심으로 꼽던 ‘유한USA’ 법인장은 두달째 공석이고 중앙연구소장 자리는 지난 2월 최 전무가 유한USA로 발령 난 이후 7개월 가까이 비어있다. 현재는 오세웅 부소장이 소장 대행을 맡아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유한양행은 연구개발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따른 해외 기술수출이 있었고, 올해 연이어 구체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투입한 연구개발비는 전년 동기 (326억원)보다 33% 늘어난 434억원에 달한다. R&D와 해외 오픈이노베이션의 책임자의 공백을 빨리 매워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유한양행 관계자는 “워낙에 중요한 자리다 보니 서둘러 자리를 메꿀 필요가 있겠지만 적절한 인물을 찾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전무의 이직 과정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최 전무가 옮겨간 하나제약은 유한양행보다 매출 규모가 확연히 작은 회사라는 것이다. 유한양행의 2018년 별도기준 매출이 1조5068억원이었던 반면 하나제약은 10분의 1 수준인 1528억원에 그쳤다. 그런데도 최 전무는 하나제약 연구본부장을 맡으며 똑같은 전무 직함을 받았다. 보통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의 인재를 영입할 때 한단계 높은 직급을 맡기는 것을 고려하면 하나제약이 최 전무에게 엄청난 대우를 해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 전무가 어떤 이유로 이직을 선택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제약은 최근 연구소장을 담당하던 조영우 부사장이 사임했다. 최 전무는 사실상 하나제약 R&D 총괄책임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양행 측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이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요한 자리를 맡아왔던 만큼 주요 경영진과는 소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 업계에선 유한양행이 적합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공채문화’에 막혀 R&D 혁신을 주도할 능력을 갖춘 인물들에게 적합한 대우를 해주지 못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비공채 출신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유한양행에서 맡을 수 있는 자리에는 한계가 있다”며 “연구개발 전문가가 자신의 꿈을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채 순혈주의 때문에 비공채 출신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회사에서 인정받아 등기임원직에 오르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유한양행은 대부분의 임원이 공채로 채워진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다. 올해 3월 말 기준 등기임원 중 사외이사와 감사를 제외한 7명이 모두 공채 출신이며, 미등기임원도 마찬가지다. 상무이사 이상 직급을 가진 임원 중 외부에서 영입한 인물은 연구개발 관련 인력 두 명뿐이다.

실제 최 전무보다 앞서 중앙연구소장을 맡았던 남수연 전 전무도 성과에 비해 매끄럽지 않게 회사를 나갔다. 유한양행은 남 전무를 영입할 당시 순혈주의를 깬 인사로 주목 받았고 실제로 남 전 전무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현재 유한양행이 거두고 있는 기술수출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내에선 차기 최고경영자(CEO)가 될 재목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2016년 말 돌연 사임했다. 개발하던 신약의 임상이 중단되는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내부에서의 견제 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남 전 전무는 회사를 떠난 뒤 바이오벤처를 창업했다가 현재는 바이오벤처 업체인 지아이이노베이션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유한양행은 최근 지아이이노베이션과 신약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남 전 전무와 다시 손을 잡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최 전무의 갑작스런 사임을 유한양행 임원인사와 연관 짓기도 한다. 유한양행은 지난 4월 인사에서 김상철 약품사업지원담당 전무를 R&D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김 본부장은 1988년 유한양행에 입사한 공채 출신으로 지난해 전무로 승진해 약품지원부문장을 맡왔다. 법무와 경영기획,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을 거쳤지만 R&D에 대한 경험은 전무하다. 학사와 석사 모두 경영학을 전공했다. R&D 부문 비전문가가 공채 출신이라는 이유로 중앙연구소와 개발 분야를 모두 아우르자 뒷말이 무성했다. 이에 대해 유한양행 측은 “최근 R&D의 상업화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업적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며 “김 본부장은 R&D를 담당하진 않았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사업화 영역에서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00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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