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나눔의 계절, 상생의 힘 

 

올해는 추석 명절이 일찍 찾아와 유달리 추위가 길어 질 것으로 예상한다. 기나긴 겨울밤 호롱불 밝혀두고 방가운데 화롯불을 중심으로 오순도순 모여앉아 군고구마를 입으로 호호 불며 나눠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네 이웃은 콩 한알도 반쪽씩 나눠 먹는다는 정서가 몸에 배어 있다. 두레나 품앗이의 미풍양속이 이어져왔다. 오죽하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19세기 경주에 사는 최 부자는 ‘백 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한다’는 신념으로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눠줬다고 하며 제주부자 김만덕은 1790년 제주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자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사다 주민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차츰 매몰찬 추위가 엄습하는 연말이 다가오면 헐벗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옷가지를 나눠주고 온정을 베푸는 것이 연례행사로 줄을 잇고 있다. 아직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 많은 어린이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다. 세계적으로 빈곤으로 생명을 잃는 5세 이하의 어린이가 매해 약 970만 명이나 된다.

총선이 치러지는 새해에는 성금 등 전시성 기부행위가 더 자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평소 보살핌 받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오히려 아픔을 주기도 한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부 자체를 불신하는 문화도 팽배하다. 연합뉴스의 5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기부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65.3%로 가장 높고, 기부를 요청한 시설을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6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 단지 현금을 기부하는 일 말고도 우물 건설, 예술 기부, 재능 기부, 환경을 생각하는 숲 조성, 나무 심기 등 다양한 형태의 기부 문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 재능과 설비를 나누고, 이를 나눌수록 기쁨이 두 배가 된다는 관념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정작 가진 자들의 기부 문화는 여전히 척박하다. 노조 집단이 대표적이다.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노조의 역량이 증대되고 또한 이들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도 크다. 연봉 1억원선을 상회하고 복지 수준도 최고의 대우를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촛불 정권에 기여했다고 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교육현장에까지 입김을 발휘한다. 한 지방대학의 경우 총장 인사권에도 노조의 입김이 작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름지기 생산현장이 활력을 찾아야 노조도 더불어 상생한다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서양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렸다. 높은 사회적 신분을 지닌 이들이 공공봉사나 기부·헌납 등으로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의 재벌들은 기부를 기업이념으로 삼아 미국 사회에 기부문화가 일반화됐으며 프랑스는 특권층의 의무를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의식의 선진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국민이 힘을 합한 밀알의 힘은 강하다. 1985년 제야의 종으로 사용된 보신각종(보물 2호)이 국민 성금으로 8억여 원을 들여 새로 복원작업에 나선 바 있다. 복원을 시작한 지 18개월 만인 7월 29일 타종식이 거행됐다. 원래 보신각종은 1468년 세조 14년에 주조해 원각사에 있었으나 수차례의 화재와 파손으로 중건을 거듭했지만 균열로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의 성금을 통해 새 종으로 탄생한 것이다. 서울공대 부속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설계하고 강찬균 서울미대 교수가 문양을 조각했다. 주철장은 범종의 장인 원광식이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을 접목한 우리 고유의 종으로 복원했다.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강 입구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횃불을 치켜든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은 원래 이름 ‘세계를 비추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로 프랑스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 1875년에 만들기 시작해 1884년에 완성했다. 작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틀디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조각한 것이다. 내부 철골구조는 에펠탑의 설계자 구스타브 에펠의 작품이고,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는 건축가 리차드 헌트가 디자인했다.

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상을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오락과 복권 등으로 모금해 성금 40만 달러를 조성했다. 거대한 조각의 동(銅) 외장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곧게 서 있게 돼 있는 게 특징적이다.

한편 미국은 받침대를 조성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퓰리쳐는 받침대 축조자금의 융통이 부진하자 신문 ‘더 월드(the world)’의 사설면을 개방해 모금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미국인들에게 기부의 동기를 부여했다. 마침내 1885년 8월 받침대를 위한 자금 조달을 완료하고 이듬해 4월 받침대 공사를 마쳤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으로,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에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전쟁·독재·가난을 뒤로하고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을 맞아주는 자유의 상징인 것이다. 기단부에 새겨진 에머래저러스의 소네트 ‘새로운 거상(the new colossus, 1883)’이라는 시 구절이 눈에 띈다.

‘정복자의 사지를 대지에서 대지로 펼치는, 저 그리스의 청동 거인과는 같지 않지만, 여기 우리의 바닷물에 씻긴 일몰의 대문 앞에, 횃불을 든 강대한 여인이 서 있으니, 그 불꽃은 투옥된 번갯불, 그 이름은 추방자의 어머니, 횃불을 든 그 손은 전 세계로 환영의 빛을 보내며, 부드러운 두 눈은 쌍둥이 도시에 의해 태어난, 공중에 다리를 걸친 항구를 향해 명령한다, 오랜 대지여 너의 화려했던 과거를 간직하라. 그리고 조용한 입술로 울부짖는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를, 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족속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 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 올릴 터이니.’

이처럼 보신각 새 종이나 자유의 여신상도 국민 성금 덕에 고귀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비전과 꿈이 밀알과 만나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한국 노조는 ‘귀족’이라고 비판받는다. 노조는 왜 귀족이라는 형용 모순적 수식어를 달고 있는가. 그들의 열정은 하투(夏鬪)에만 뜨겁지 않았나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눔의 계절이 돌아왔다. 노조도 단상에서 내려와 국민과 함께 갈 길을 고민해야 할 때다.

- 김지용 칼럼니스트(시인, 전 문화일보 부국장)

1502호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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