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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칼을 들 수 있는가 

 

마을에 들이닥친 최형기 일당은 길산의 집부터 집뒤짐을 한다. 포도종사관 최형기는 잔인무도한 데다 계략에도 능하다. 장길산을 붙잡아 더 큰 출세를 도모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오히려 장길산을 민중의 영웅으로 우상화한 꼴이 됐다. 황석영의 대하 역사소설 [장길산]에 나오는 대목이다.

본래 구월산 부두령으로 산적 생활을 하다가 장길산을 만나 두령의 자리에 앉게 된 마감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마을에 내려갔지만 이미 습격당한 후였다. 그는 산채로 돌아가지 않고 죽기 살기로 최형기 일당을 뒤쫓는다. 함께 간 자고의 명수 강말득은 총에 맞아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산채로 돌아가고, 마감동은 최형기와 결전을 벌이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비록 통한의 일전이었지만 마감동은 토포관 최형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마감동이 산에서 진검(眞劍)으로 익힌 실전의 경험은 최형기를 압도했다. 장안을 주름잡던 최형기는 실제로 진검승부는 처음이다. 목검으로 정통무술을 익힌 그의 칼솜씨는 정평이 나있었으나, 그가 누군지 알아 감히 덤비는 왈짜들이 없어 칼을 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진검을 들고 마감동과 마주섰을 때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 사생 결단의 다른 이름인 ‘진검승부’는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난다.

원탁(Round table)은 원래 영국의 전설적 통치자 아서 왕(King Arthur)과 그의 기사들이 앉았던 둥근 탁자다. 원탁을 쓰기 전에는 누가 상석에 앉느냐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 진검승부로 서열을 가리는 바람에 많은 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결국 원탁회의로 참가자들이 석순(席順)에 구애 없이 앉게 되자 더는 피를 뿌리지 않았다.

‘진검승부’는 사무라이들의 전형(典型)이다. 사사키 코지로는 일본의 당대 제1검 미야모토 무사시의 적수로 모노호시자오(物干し竿, 빨래 너는 장대)라는 3척에 달하는 장도를 썼다고 전한다. 오륜서(五倫書)에서 무사시가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60여 회의 실전을 치렀다. 이 시절에는 호구(護具)와 죽도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실전이란 목검이나 진검으로 싸워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혹독한 승부를 뜻한다.

사사키 코지로의 주요 무기 중의 하나인 츠바메가에시(燕返し)는 갑자기 몸을 반전시키며 상대를 베는 검법인데, 이름의 유래는 나는 제비를 잡으려고 개발한 기술이란다. 제비의 모습을 본뜬 검술이라든가 혹은 나룻배에서 강위를 날아가던 제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베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등 여러 가지 말이 전해진다.

진검승부(眞劍勝負)란 진짜 칼로 이기고 짐을 가린다는 뜻이다. 옛날 일본 무사들이 목숨을 걸고 진짜 검으로 결투한 데서 유래했다. 패하면 목숨을 잃는다고 할 정도로 명예와 권위를 놓고 다투는 큰 승부. 일본 어투 용어 순화 자료집을 보면 진검승부는 ‘생사 겨루기’로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우리가 쓰던 말은 아니다.

“칼을 맞대보지 않고 상대를 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세속을 떠나 도(道)를 닦는 일은 수신(修身)과 연결되는데, 어느 지경에 이르면 육안(肉眼)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해야 삶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자유로운 눈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세기의 베스트셀러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는 일본 에도(江戶)시대를 살다간 불세출의 검객에 관한 스토리다. 쌍검을 사용하는 검도인 니토류(二刀流)를 개발한 이 ‘칼잡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 그는 또한 서화에도 일가견이 있어 수묵화에 능했다.

오륜서(五輪書)는 무사시가 집필한 병법서로, 만년에 동굴 속에서 2년에 걸쳐 저술한 작품이다. 책의 제목대로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 하늘(空)의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이 걸어온 무사로서의 길을 간략하게 서술한 후, 무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을 담았다. 현재도 검도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읽히고 있다.

“검술만 익혀서는 참다운 검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큰 곳에서부터 작은 곳을 알고, 얕은 곳에서 깊은 곳에 이른다.” 오륜서에 처음 나오는 ‘땅의 장’에서는 곧은길을 다진다는 뜻에서 제1장을 땅의 장이라 했다고 적혀있다. 그는 평생 60여 회 이상의 대결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전설적인 검객이다. 일본에서는 그를 ‘검성(劍聖)’이라고도 부른다. 무사시는 10대의 젊은 시절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도인 중 하나로 알려진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편에 서서 그 유명한 세키카하라(關ケ原) 전투에도 참전했던 경험이 있다.

아버지에게서 검을 배운 그의 칼솜씨는 일취월장했고, 결국에는 ‘천하제일 검’으로 인정받는다. 주유천하 하면서 검술을 익힌 그의 일대기는 소설이나 영화, 만화로 많이 나와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가 30년대에 쓴 [미야모토 무사시]이다. 무사시가 치른 결투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간류 섬의 결투’다. 17세기 일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숙적 사사키 코지로와 결투를 벌인 섬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무사시는 목검으로 ‘나는 제비를 벤’ 코지로의 늑골을 부러뜨려 승부는 끝난다.

“해를 등져라.” 칼을 들었지만 ‘머리’로 싸운 무사시의 머리는 조선에서 건너간 학승 ‘다쿠앙(澤庵)’ 스님이 채워준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다쿠앙이란, 탁발할 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를 소금에 절여 평생을 밑반찬으로 공양해 붙여진 스님의 별호다. 그는 천둥벌거숭이인 무사시를 절에 가두어 놓고 수백 권의 책을 읽게 한 멘토다.

한일 무역 전쟁, 대본 없이 벌이는 진검승부다. 전쟁이란 서로 대립하는 국가가 군사력을 동원해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위이다. 종래의 전쟁은 영토침략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경제, 또는 무역전쟁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최근 심상치 않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의 경우가 그렇다. 일본이 한국을 아예 화이트 국가 명단에서 빼버려 촉발된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계기로 우리 경제 기반이 중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내 경제에도 눈을 돌릴 때가 된 것 같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만고불역의 진리다.

‘그 무기를 들 수 있는가’를 미야모토 무사시는 늘 자문했다. 상대를 아느냐는 거였다. “오늘은 어제의 자신을 이기고, 내일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이기며, 그다음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자에게 이긴다!” - [오륜서] 중에서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부국장)

1503호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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