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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미·중 문명의 충돌과 트럼프] 트럼프 정책에 내재된 달러 강세 압력 

 

트럼프 재선은 달러화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 미 정부 부채 20조 달러 넘어

일본의 독특한 문화와 사회를 해부한 고전 [국화와 칼]은 미국 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2차 세계대전 말 집필한 이래,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가 일본을 이해하는 창(窓)이었다. 이 책은 ‘일본인은 미국이 여태껏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중에서 가장 낯선 적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함으로써, 미국인이 일본에 느꼈던 이질감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일본과 중국은 가깝고도 먼 이웃일 뿐, 서구의 시각에 비해 문화적 이질감이 크지 않다.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우리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꽃피워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교육받은 때문일까. 우리가 중국에 느끼는 정서적 거리감과 일본에게 느끼는 거리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제 3자의 시각은 다르다. 일본의 문화는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중국과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도드라져 보인다.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을 중국의 유교 문화권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문명으로 보기도 했다. 중국이 국제 질서를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한 위계질서로 인식한다고 본 반면, 일본은 그 범주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질적인 동아시아 국가들


20세기 중반의 일본이 서구 사회에 이질적으로 비쳤던 만큼이나, 중국 역시 18세기 말 영국의 매카트니 경이 청의 문호를 열고자 노크했던 당시부터 상당히 이질적인 국가였다. 그리고 지난 200여 년간 서구 사회와 중국은 상호 이해 수준을 높였을지언정, 조화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선 중국은 중국식 발전 모델을 존중하라며 미국에게 ‘신형 대국관계’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신형 대국관계라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으나, 중국식 발전모델을 존중하라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은 다르지 않다.

한때 중국학 연구의 권위자였던 페어뱅크(John K. Fairbank)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 외교정책의 핵심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주변 지역에 지배력을 갖겠다는 요구, 이웃 국가들이 중국의 내재적 우월함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 이웃 국가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휘하기 위해 이런 지배력과 우월함을 기꺼이 사용하겠다는 의지 등이다. 이 내용은 현재의 중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웃 한반도를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은 중국의 막대한 수입 없이는 지속 불가능한 상황에 서 있다. 한국의 수출 상위 국가는 중국과 미국인데, 중국 수출 비중은 2018년 기준 26.8%로 12.0%에 불과한 미국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 한국 경제도 흔들리고, 미국이 중국 경제에 해(害)가 되는 조치를 취하면 한국이 덩달아 타격을 받는다. 중국에 대한 수출이 소비재인 경우에는 충격이 경감될 수 있겠지만, 한국의 대중 수출은 중간재 비중이 크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은 71.4%에 달한 반면 소비재는 10.6%에 불과하다.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면 중국 내 공정에 투입될 한국산 중간재에 대한 수요가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원·달러 환율이 위안·달러 환율에 특히 민감한 배경이다.

이제는 상수가 된 미·중의 대립과 협상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내년 11월 초 미국 대선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사회적 배경은 고착화되어 있다. 미국적 가치의 보편화, 세계화는 흘러간 옛 노래일 뿐이다.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상징되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 사회의 향수를 자극한 트럼프 선거 캠프로 향했던 표심이 굳건하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총 득표수는 힐러리가 앞섰으나,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남성과 여성의 각 72%와 62%가 트럼프 후보를 선택했다.

9월 말, 갑작스레 야당인 민주당이 트럼프 탄핵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의결 정족수가 3분의 2인 미국 상원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탄핵 가능성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미국 경제가 둔화되는 와중에 미국의 대중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변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선 변수에 흔들릴 환율

기업들의 사업 계획 수립이나 금융시장을 전망함에 있어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것이 리스크 관리에 유용할 것이다. 유명 정치 베팅 사이트인 프레딕트잇(Predict It)에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바이든일 경우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47 대 17로 상당히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재선은 곧 트럼프 정부의 주요 정책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깜짝 당선되자, 외환시장은 달러화를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보호무역 정책, 확장적 재정정책과 규제 완화 등 정책의 조합이 달러화 강세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자국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20조 달러를 넘긴 미국 연방정부의 막대한 부채 탓에 확장 재정은 향후 부채 한도의 장벽에 부딪힐 수 있다. 정책이 내포한 달러화 강세 압력 때문에 연준에 대한 금리 인하 요구 등 압박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보호무역 장벽을 더 높이 쌓아 올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대규모 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하는 기존 스탠스는 늦추지 않을 것이다. 향후 본격화될 대선 레이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뉴스는 달러화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환율 고유의 특성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강국인 미국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려 하면, 한국 입장에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환율은 시장의 가격 변수이지만, 국제 정치의 영역이기도 하다. 못 이기는 척 강한 달러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간혹 달러화 강세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을 지켜볼 일이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우선적으로는 다자간 회의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단, 환율은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추세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달러화의 하락 전환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어도, 단기적인 되돌림은 충분히 가능하다. 달러가 필요한 기업들 입장에선, 단기적 되돌림이 나타나는 때를 활용할 필요도 있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 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04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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