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가마우지 경제’에서 ‘펠리컨 경제’로 

 

가마우지는 러시아 동아시아 지역과 일본 규슈 북부, 한국과 중국 일부 지역에 번식하는 물새이자 텃새다. 철 따라 자리를 옮기지 않고 거의 한 지방에서만 사는 새다. 국내에서는 거제도와 거문도, 백령도 등 서남해안의 작은 무인도 바위 절벽에서 번식한다. 민물가마우지와 달리 내륙 호수 또는 강에 살지 않고 바닷가 암벽에 서식한다.

가마우지는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으며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잠수한 후 바위에 올라가 날개를 펼쳐 햇볕에 말린다. 무인도의 바위 절벽에서 무리를 이루어 번식한다. 둥지는 천적의 접근이 불가능한 암벽 위에 죽은 나뭇가지와 풀줄기를 이용해 만들고 알을 낳는다.

물 위에서 헤엄을 치면서 먹을 물고기를 찾는데, 물고기를 발견하면 물속으로 잠수해 물갈퀴가 달린 발로 힘차게 헤엄을 쳐 물고기를 잡는다. 잡은 물고기는 물 위로 가지고 올라와서 먹는다. 중국의 소수민족과 동남아시아 일부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가마우지를 앞세워 은어를 잡기도 한다. 바위에 붙은 부착조류를 뜯어 먹고 사는 은어는 그물로 잡기 어렵다. 바닥에 돌 천지라 그물이 돌에 걸려 찢어지기 쉽고, 낚시로 잡으려 해도 미끼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찾아낸 노하우가 가마우지를 이용하는 것. 가마우지를 물에 들여보내 대신 잡아 오게 하는 방법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밤에 강에 배를 띄우고 불을 밝힌 채 가마우지가 고기를 잡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귀족들의 큰 놀이 중 하나였고, 지금도 교토에서 여름철에 볼 수 있다. 이때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목을 묶어놓고 고기를 빼앗는다. 겉으론 잔혹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공생관계에 가깝다. 어부들은 가마우지에게 물고기로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묶어놓지 않아도 가마우지가 도망가질 않는다.

이처럼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 잡는 기술을 빗대어 경제학에서는 ‘가마우지 경제(Cormorant economy)’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주로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해서, 소재를 조립해 완성한 다음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간 가공 국가를 가마우지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일본으로부터 핵심 부품과 소재 등을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이 늘면 일본은 그냥 앉아서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 이것을 가마우지 경제라고 부르는데, 만성적인 대일 무역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는 핵심 부품이나 소재는 고부가가치 물품으로, 일본 이외에는 가져다 쓸 나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자재와 부품을 조달하는 국가인 ‘어부’에게는 무역 이익, 즉 물고기를 상당수 뺏기는 상황이 된다. 이는 조립·완성만 가능하고 원자재와 부품의 공급은 자체로 할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수입해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마우지 경제가 바로 대한민국의 제조업. 일본에서는 이 점을 노려 반도체로 비롯된 한일 무역 분쟁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한국 경제는 양쯔강(揚子江)의 가마우지 같다. 목줄(道)인 일본의 부품·소재 산업에 묶여 물고기(완제품)를 잡아도 곧바로 주인(일본)에게 바치는 구조다.”

한국의 수출 구조에 대한 취약점을 가마우지 낚시에 비유한 말로, 한국이 핵심 부품 등을 일본에서 수입해 다른 국가에 수출함으로써 일본만 떼돈을 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우리나라 산업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수출을 하면 할수록 남 좋은 일만 시키는, 마치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고 어부에게 바치는 격이다.

“수출을 많이 해서 이익을 내도 핵심 소재·부품의 의존도가 높아 실익은 일본이 챙긴다.” 최근 시사용어로 떠오른 ‘가마우지 경제’는 1991년 일본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가 [한국의 붕괴 -- 아무도 쓰지 않았던 진실]이라는 책에서 처음 만든 용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한 경상수지가 21년 동안이나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무로의 책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에 대한 가차 없는 지적이자, 언젠가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실려 있다. 전문가들은 너나없이 ‘가마우지 경제’의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부품·소재의 국산화 정책에 힘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가마우지 경제의 반대말로 ‘펠리컨 경제(Pelican economy)’라는 용어도 있다. 먹이를 부리에 저장했다가 새끼에게 먹이는 펠리컨처럼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자립도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파급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한국 산업을 발전시키자는 뜻이 담겨있다. 부리 주머니에 먹이를 가득 담아 새끼에게 먹여 스스로 새끼를 키우는 펠리컨에 빗댄 것으로, 한국의 수출 구조에 대한 취약점을 가마우지 낚시에 비유해 깎아내리자 반작용으로 나온 말이다.

“우리 모두 합심하면 ‘가마우지’를 미래의 ‘펠리컨’으로 바꿀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소재와 부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으로 가마우지와 펠리컨 등 조류의 이름을 한꺼번에 꺼낸 적이 있다. 우리 경제의 과거와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가마우지 경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소재와 부품 등을 일본에 의존한 한국이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도 결국 이득은 일본에 돌아가는 구조를 말한다. 이 같은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기 위해 먹이를 부리 주머니에 담아 새끼를 키워 내는 ‘펠리컨 경제’로 우리 경제구조를 탈바꿈하겠다는 뜻이다. 소재와 부품, 장비는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기술 난도가 낮은 제품 위주로 성장한 탓에 내실 있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해당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일본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대일 전체 무역적자 달러 중 소재와 부품 쪽이 대부분이다. 때마침 일본의 수출 규제와 맞물려 소재와 부품의 탈(脫)일본화와 대외의존도 축소 등 우리 경제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민관 공동으로 대규모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연기금·민간투자자 등이 참여해 소재·부품·장비에 투자하는 대규모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부국장)

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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