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현대차 ‘세타Ⅱ GDi’ 엔진 평생보증] 국내외 평생보증 비용만 9000억원 

 

북미 417만대, 한국 52만대 민사상 손해배상 마무리 단계… 전·현직 임원 형사 재판 시작

▎현대·기아자동차가 결함 논란을 빚고 있는 ‘세타Ⅱ GDi’ 엔진과 관련 평생보증을 약속하면서 3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69.4% 하락했다. 평생보증 비용 약 6000억원을 반영한 영향이다. 사진은 10월 2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현대자동차 매장. / 사진:연합뉴스
‘평생보증으로 책임지겠다.’ 소음과 진동, 주행 중 시동 꺼짐 등 결함 논란을 불렀던 ‘세타Ⅱ GDi’ 엔진에 대해 현대·기아자동차가 내놓은 방안이다. 미국에서는 관련 집단소송에 대해 이미 합의하고 미 법원에 합의 예비 승인 신청을 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미 법원이 합의를 승인하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4년여 간 미국 소비자와 마찰을 빚어 온 세타Ⅱ GDi 엔진 문제를 매듭짓게 된다. 일단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는 큰 틀에서 해결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끝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는 아직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엔진 결함을 알고도 이를 숨긴 혐의로 담당 임원이 기소돼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평생보증 비용 3분기 실적에 선반영


문제가 된 세타Ⅱ GDi 엔진은 현대·기아차가 2008년 자체 개발한 2~2.4ℓ 가솔린 직분사(GDi) 엔진이다. 소나타·K7·쏘렌토 등 현대·기아차 주력 차종에 탑재한 대표 엔진이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에서 소음·진동은 물론 잇단 시동 꺼짐과 화재로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가 처음 발생한 건 2011년 미국이다. 엔진 화재 사고가 났고, 조사 결과 2010년 이후 제조한 세타Ⅱ GDi 엔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는 2015년 9월 미국에서 47만대를 리콜했다. 이어 2017년 3월에도 현대차 쏘나타·싼타페, 기아차 옵티마(국내명 K5)·쏘렌토·스포티지 등 119만대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소비자가 2년 전 미국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을 이어가다 이번에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만 총 11개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현대·기아차는 미 법원이 합의를 승인하면 국내·외 세타Ⅱ GDi 엔진을 탑재한 차량의 엔진 수리비용과 손실을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엔진 예방 안전 신기술인 엔진진동감지시스템(KSDS) 적용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엔진을 탑재한 차량은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 팔린 총 417만대다. 늑장 리콜 논란이 있었던 국내 차량에 대해서도 똑같은 보상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미국과 달리 국내 차량은 문제가 없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미국에서의 2차 리콜 이후인 2017년 4월에서야 그랜저·쏘나타 등 국내 차량 17만대를 리콜해 비난을 샀다. 현대·기아차는 해당 엔진을 이미 수리한 고객에게는 수리 비용과 견인 비용 등을 보상하고, 엔진 결함으로 화재가 난 고객에게는 보험개발원에서 발표하는 ‘차량 보험 잔존가’ 기준으로 보상할 계획이다. 세타Ⅱ GDi 엔진을 탑재한 국내 차량은 2010~2019년형 쏘나타·그랜저·싼타페·벨로스터N(현대차)과 K5·K7·쏘렌토·스포티지(기아차) 52만대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조치로 현대차 약 6000억원, 기아차 약 3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당장 이 비용을 3분기 실적에 반영했다. 이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3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2분기 영업이익 1조원대를 회복하며 ‘V자 반등’을 노렸던 현대차는 378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전 분기에 비해 69.4%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4605억원으로 2분기보다 53.9% 줄었다. 기아차는 2분기 533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3분기에는 2915억원으로 확 줄었다. 세타Ⅱ GDi 엔진에 대한 화재보상금과 평생보증 비용 등 7억7500만 달러(약 9200억원)를 3분기 실적에 반영한 때문이다. 회사 측은 “(평생보증으로 인해) 단기적인 재무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 신뢰 회복과 브랜드 가치 제고를 우선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또다시 조 단위에 맞먹는 비용을 들여 평생 보증에 나선 것은 오히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품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보증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하지만 평생 보증은 차량 폐차 직전까지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차량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단행하기 어려운 조치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늑장 리콜에 이어 발표 시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10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법원에 현지 소송 원고들과 합의안을 제출하며 국내에 평생보증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국내서도 비슷한 문제가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미국에서 집단 소송이 있고서야 이런 조치를 발표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국내 소비자들은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담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한 국내 현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미국에서 민사 배상금과 형사 벌금 등으로 43억 달러(약 5조460억원)를 내야 했다. 일본 도요타는 급발진 관련 리콜로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의 벌금과 함께 리콜과 소비자 소송으로 각각 24억 달러(약 2조8000억원)와 16억 달러(약 1조9000억원)를 지출해야 했다. 미국 자동차 업체인 GM(제너럴모터스) 역시 시동점화장치 리콜로 9억 달러(약 1조560억원)에 달하는 벌금과 함께 대대적인 보상금을 냈다. 반면 국내 자동차관리법은 제작사가 결함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공개한 뒤 시정하고, 이를 어기면 10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검찰에서도 조사 시작

어쨌든 미 법원이 합의안을 승인하면 현대·기아차는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를 매듭짓게 된다. 하지만 세타Ⅱ GDi 엔진과 관련 문제가 여기서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지난 7월 신종운 전 현대·기아차 품질 총괄 부회장, 방모 전 품질본부장, 이모 전 품질전략실장 등과 현대·기아차 법인을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과 회사가 세타Ⅱ GDi 엔진 결함을 알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리콜 등 시정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에 배당돼 지난 9월 첫 공판이 열렸다. 미국에서도 관련 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민사소송과는 별도로 미국 검찰에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는 만큼 징벌적 벌금이 부과되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508호 (2019.11.1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