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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좌파 승리한 아르헨티나 대선] 경제위기 부른 장본인이 다시 집권한 셈 

 

포퓰리즘 성격의 페론주의에 뿌리…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 예상

▎아르헨티나의 중도좌파연합 ‘모두의전선’ 대통령 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10월 27일(현지시간) 실시된 대선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을 꺾고 승리한 후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27일 치른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중도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를 꺾고 당선했다. 3385만8733명의 유권자 가운데 80.86%가 투표했으며, 97.13%가 개표된 상황에서 페르난데스 후보는 48.1%를 득표해 40.4%를 얻은 마크리 대통령을 눌렀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서 낙선한 것은 마크리 대통령이 처음이다. 대통령에 당선한 페르난데스보다 더욱 주목 받은 인물은 그의 러닝메이트로 나와 부통령에 당선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66)다. 크리스티나 부통령은 과거 12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 관저인 ‘카사 로사다(Casa Rosada)’에 거주했다. 4년은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1950~2101년, 재임 2003~2007년)가 대통령에 재임하던 시절 영부인으로서, 그 뒤에는 대통령으로 카사 로사다의 주인이 됐다.

아르헨티나 현직 대통령 첫 낙선

크리스티나는 대단한 카리스마와 리더십, 그리고 흡인력이 강한 대중 정치인이다. 크리스티나는 남편인 키르치네르와 나란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됐으며 1975년 결혼한 뒤 함께 정치에 입문했다.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는 풀뿌리 정치인이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한계단씩 권력의 정상부로 접근했다. 키르치네르는 아르헨티나 농업 중심지인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의 리오가예고스 시장(1987~1991년)을 시작으로 리오가예고스를 주도로 하는 산타크루스 주의 주지사(1991~2003년)를 거쳐 2003년 대통령에 당선했다. 리오가예고스 시는 인구 9만8000명, 산타크루즈는 인구 27만 명의 작은 지역이다. 키르치네르는 한국으로 치면 시장과 도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오른 셈이다.

그동안 크리스티나도 만만치 않은 정치 경력을 쌓았다. 그는 결코 시장 부인이나 주지사 부인, 영부인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선출직 공직자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시작은 리오가예고스를 지역구로 하는 산타크루즈 주의회 의원(1989~1995년)이었다. 그 다음으로 산타크루즈를 지역구로 하는 상원의원(1995~1997년)을 지내다 하원의원(1997~2001년)도 맡았으며, 다시 상원의원(2001~2005년)을 지냈다. 모두 선출직이다. 두 번째 상원의원을 지내는 후반기에는 영부인(2003~2007년)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남편이 건강 문제 등으로 재선에 도전하지 않기로 하자 2선 경력의 전직 연방 상원의원이자 하원의원 경력도 있는 크리스티나가 대선에 나서 당선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직선으로 선출된 첫 여성 대통령이다. 1974년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세상을 떠나자 잔여 임기를 맡았던 페론의 세 번째 부인 이사벨 페론이 아르헨티나는 물론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크리스티나는 2011년 재선 당시 54.11%의 지지율을 얻었다. 2010년 남편인 키르치네르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후광 없이 치른 대선전에서 첫 당선 때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크리스티나 자신이 높은 득표율을 지닌 대중 정치인임을 만천하에 보여준 것이다. 그런 크리스티나가 2015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4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부통령으로 권력의 중심에 복귀한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대통령 재임 때인 2012년 4월, 아르헨티나 최대의 에너지 기업인 YPF를 국유화했다. YPF는 1993년 민영화해 스페인 기반의 다국적기업 렙솔이 소유하고 있었다. YPF는 카를로스 메넴(1989~1999년 재임) 대통령 재임 당시 민영화했으며 이는 아르헨티나 경제가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1989년 61년 만에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던 좌파 민주화 운동가인 메넴은 경제 분야에선 공공부문 민영화와 적극적인 외자 유치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인플레를 진정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크리스티나는 이런 과거 정권의 정책을 일거에 뒤집었다.

마크리 임기 내내 인플레이션 이어져

더구나 국고로 공공요금 보조금을 지급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등 포퓰리즘적인 시장 개입 정책을 펼쳤다. 연금이 고갈 위기에 처하자 사적연금을 공적연금에 통합하기도 했다. 그 결과 포퓰리즘 정책의 혜택을 본 빈곤층으로부터는 정치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중산층의 반발을 샀다. 여기에 정권 후반기에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통령 부부가 부패 의혹을 받으면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결국 2015년 선거에서 중도 우파에 패배하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에도 뇌물수수와 폭탄테러 사건 은폐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2017년 상원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복귀하면서 대통령직에 재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아르헨티나는 대통령의 연임은 한 차례만 허용되지만 중임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두 차례 연속 당선한 후 한 차례 출마를 건너뛰면 다음에 또 출마해 연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대신 남편인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자신이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 내각 책임자인 국무실장을 지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를 내세웠다. 12월 10일 대통령에 취임할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1959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됐으며 법학 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크리스티나 부통령처럼 페론주의자이지만 키르치네르와 페르난데스 부부보다 온건한 인물이며, 한때 우파 정당에서 활동한 전력도 있다. 페론주의는 194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이 시작한 포퓰리즘 성격의 정치이념으로 아르헨티나의 현실 정치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다. 페론주의는 정부의 중앙집권화와 반외국자본, 시장과 가격에 대한 정부의 개입 등을 특징으로 한다. 크리스티나가 과거 대통령을 하는 동안 펼쳤던 여러 정책에서 이런 흔적이 뚜렷하다. 하지만 페론주의는 아주 넓은 스펙트럼에, 때로는 서로 모순이 되는 정책도 모두 품고 있어 종잡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마크리 대통령이 현직임에도 2차 투표에도 가보지 못하고 패배한 원인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마크리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자국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정부의 대외부채 지급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국제통화기금(IMF)에 SOS를 보냈다. 2018년 6월 IMF로부터 5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대출을 받기로 하고, 우선 150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IMF는 2018년 국내총생산(GDP)의 2.7%로 예상된 재정적자를 2019년에는 0%로 줄이도록 요구했다. 구제금융을 받아도 통화가치 급락사태가 멈추지 않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시지 않으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다. 마크리 대통령은 재정 적자를 IMF가 요구한 수준에 맞추기 위해 2018년 9월 정부 재정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비상 긴축정책을 발표했다.

하원도 이에 호응해 2018년 10월 25일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정부 지출은 줄이는 초긴축 예산안(2019년)을 통과시켰다. 정부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긴축 정책에 유권자들이 불만을 터뜨렸지만 마크리 대통령으로선 다른 방안이 없었다. 당장 실탄이 떨어진 마크리 대통령은 IMF와 구제금융 규모 확대 협상에 나섰다. 그 결과 10월 26일 총 563억 달러의 구제금융에 합의하고 즉각 57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대출 받았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긴축 예산을 편성한 마크리는 큰 부담을 안고 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의 이점은 선심성 예산인데, IMF 구제금융 조건이 예산 긴축이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마크리는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낙선이었다.

마크리 대통령은 2018년 -2.5%의 뒷걸음질 경제 성장과 47.5%의 물가상승률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들고 올해 대선전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좋지 않다. 경제성장률은 -1.2%로 전망되고, 물가는 54.44%나 치솟고 있다. ‘우파는 좀 낫겠지’라는 기대 속에 4년 전 대통령에 당선했던 마크리는 임기 내내 계속된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인과 크리스티나 부통령 당선인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원인 제공자가 다시 집권한 셈이다. 아르헨티나가 계속 우려되는 이유다. 아르헨티나의 국가 구조와 경제 규모를 살펴보자.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국이다. 면적이 한반도(22만847㎢)의 12.5배가 넘는 278만㎢에 이르는 대국이다. 인구도 2019년 기준 4449만으로 세계 31위이며 라틴아메리카에선 브라질(2억1066만), 멕시코(1억2657만), 콜롬비아(4825만) 다음으로 4위다.

누가 아르헨티나를 위해 울 것인가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한마디로 말해 어둡다.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전망으로 국내총생산(GDP)이 4454억6900만 달러로 세계 28위, 1인당 GDP는 1만1627달러로 59위다. GDP는 2018년 세계 순위 24위에서 4계단 떨어졌고 1인당 GDP 순위는 그대로다. 빈곤선 이하로 사는 주민의 비율도 2017년 25.7%에서 2018년 33%로 늘었다. 실업률은 2017년 8.5%였지만 2019년은 10.1%로 전망된다. 대외 부채는 2016년 925억 달러에서 2017년 연말 기준으로 2149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1632억 달러는 공공부채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대규모 규제 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마크리 대통령이 대선에서 실패한 원인을 이번에 당선한 페르난데스와 크리스티나 정권이 고스란히 물려받게 됐다. 누가 이런 아르헨티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것인가.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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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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