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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37) 구본창 WLK 설립자‘] 한국 향한 증오심 키우는 코피노가 4만명 

 

‘생명의 위협’ 불구 코피노 돕는 활동가... 화곡대성학원장 출신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그걸 믿니 18, Korea’. 그녀가 건넨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걸 믿니? 씨팔.” 나로서는 생면부지인 이 한국 남자가 그녀를 조롱한 것 같았다. 이 젊은 필리핀 여자는 한국어 문장의 뜻을 몰랐다. 철석같이 남자의 한국 주소로 믿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마 그 의미를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 가서 그 주소지로 찾아가 보겠다고 둘러댔다.

한국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필리핀의 명문대 재학생이었다. 남자가 그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이렇게 만나 두 사람은 여자 부모 집에서 2년간 동거했다. 그 덕에 남자는 월 200만원에 이르는 홈스테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 날 남자가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부모님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혹시 모르니 한국 집의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남자는 ‘그걸 믿니 18, Korea’라고 적어 줬다. 한국으로 돌아간 후 남자는 연락을 끊었다.

‘그걸 믿니 18, Korea’


▎구본창 WLK 설립자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근무하는 필리핀 정부군 선임하사와 포즈를 취했다. 이 군인은 민다나오 WLK 스탭들의 협력자이다. / 사진:WLK
불행의 전조였다. 여자는 홀몸으로 힘겹게 아이를 키웠다. 불행은 불행을 불렀다. 아이가 병에 걸린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많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어학원 강사로 일하던 여자는 병원비를 대기 위해 클럽의 댄서가 됐다. 아이는 그러나 회생하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 여자는 술에 기댔다. 알콜 의존증. 이 전 과정을 지켜본 여자의 부모도 알콜 의존증에 빠져들었다. 평온했던 한 필리핀 가정이 이기적인 한국 남자에게 이용 당한 끝에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그후 나와 그녀 사이의 연락도 끊기고 말았다.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리핀에 ‘WLK(We Love Kopino)’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6년 전 일이다. WLK는 코피노와 사실상 미혼모인 그 엄마들을 돕는 활동을 한다. 코피노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핀 사람을 가리키는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다. 한국 남성과 현지의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다. 총 4만여 명에 이른다. 가장 나이가 많은 코피노는 스물네 살의 어엿한 성인이다.

아이 아빠는 대부분 1990년대 중반 이후 필리핀에서 공부한 한국 유학생이거나 필리핀으로 어학 연수 간 한국의 직장인들이다. 영어권인 필리핀에 장기 체류 하는 동안 필리핀 여성과 사귀어 아이를 낳은 후 나홀로 귀국했거나, 나 몰라라 연락을 끊은 사람들이다. 꼭 10년 전 위헌 판결로 국내에서 사라진 ‘혼인빙자간음죄’에 해당하는 몹쓸 짓을 필리핀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한국 남자들. 1960~70년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배경이었다.

한국 남자들은 왜 필리핀 동거녀,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버리는 걸까? 가부장주의적 가치관에 의해 굴절된 성의식,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한 비뚤어진 우월감 등이 원인 아닐까?

코피노가 계속 생겨나는 것은 필리핀 여성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남자로서는 가족과 떨어져 이국땅에서 외롭게 지내는데 현지 여성과 말이 통하는 것이다. 필리핀 명문 라살대를 나온 한 코피노 맘은 어학원 강사로 일하다 이 어학원에 다니던 한국 직장인과 만나 살림을 차렸다. 그녀에게 대시했던 한국 남자는 아이가 세 살이 됐을 때 한국으로 도주했다. 돌아올 마음이 없는 남자를 체념했던 여자는 아이가 중병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자 남자에게 연락을 했다.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에게 필리핀 의료비는 한국보다 싸지 않다. 아이의 아빠는 여자와의 유일한 끈이었던 메신저마저 차단했다. 콜센터에 다니던 여자는 아이를 24시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4년째 동네에서 잡일을 한다. 아이는 여전히 투병 중이다. WLK가 나서 그녀의 양육비 소송을 도왔다. 다행히 남자와 합의가 이루어져 얼마간의 양육비를 받아냈다. 코피노 아빠들이 동거녀에게 가짜 한국 주소를 남기는 건 흔한 일이다. 자신의 무역회사 사무실 주소라고 해 내가 찾아가 보니 가정집인 적도 있었다.

코피노 아빠들의 가부장주의적 성의식

나의 이름은 구본창, 1963년생 올해 쉰여섯이다. 평범한 소시민이다. 아니 한국에 사는 동안엔 그랬었다. 오랫동안 대입재수학원 영어 강사를 했었다. 명강사 소리를 들은 건 아니지만 돈을 벌어 학원을 차렸다. 화곡대성학원 원장으로 있다 나이 오십에 은퇴했다. 학원가 생활 20년, 기러기 생활 5년 만의 은퇴였다. 딸 둘이 유학 중이던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아내와 백수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별장도 장만했다. 그런데 코피노 문제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한국의 코피노 아빠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아니면 필리핀 동거녀가 임신한 후 단신으로 귀국한다. 전자가 전체의 약 70%, 후자가 30%가량 된다. 이들은 자기 아이의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친자로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일부는 필리핀에서 아이의 출생증명서에 직접 사인한 사람들이다.

코피노 맘의 직업은 다양하다. 대학생, 어학원 강사가 많고 유흥업소 종사자도 많은 편이다. 한국 남자에 대한 무슨 로망이 있는 건 아니다. 일찍이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정서가 없을 뿐이다. 다수가 서민층으로 빈민가에 산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빈민층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프레이밍하듯 코피노는 섹스관광의 ‘부산물’이 아니다. 제대로 된 통계는 없지만 그렇게 태어나는 코피노는 전체의 5% 미만이다.

필리핀인은 혼혈에 대한 편견이 없다. 코피노 가족이 정상적인 가정을 이뤄 살면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된다. 아빠 없는 미혼모 가정에, 못 살고 아이의 생김새가 달라 차별을 당하는 것이다. 코피노는 피부가 상대적으로 희고 필리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옆으로 찢어진 눈이다.

WLK의 스탭들은 지난 6년간 해마다 100건가량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승률은 95% 수준이다. 2년 전 코피노파더 사이트(https://kopinofather.wordpress.com/)를 만들었고 여기에 코피노 아빠들의 사진, 이름 등을 올린다. 코피노 아빠나 가족, 지인과 연락이 닿으면 기록을 삭제한다. 나는 또 국내 여성 단체에 몸담았던 지인들이 지난해 만든 사이트 배드파더스(https://badfather540837381.wordpress.com/)의 자원봉사자로 외부와의 소통을 맡고 있다. 배드파더스는 장기간 양육비 지급을 거부한 내국인 400여 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들 양육비 미지급자가 배드파더스 운영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오는 11월 15일을 준비기일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다. 이들 운영자의 신상이 비공개로 돼 있어 자원봉사자인 내가 ‘공범’으로 기소 당했다. 이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나는 지금 한국에 있다.

이 건 포함해 지금까지 여섯 번 소송을 당했다. 혐의는 초상권 침해와 명예 훼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법원의 재판 결과에 따를 생각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 연락을 끊은 애 아빠의 초상권과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살아가는 아이의 생존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근본적으로는 국내에서 양육비 이행 강화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이 법은 1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양육비 피해 아동에 대한 양육비 지원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당사자의 신상 공개, 운전면허 취소, 여권 발급 제한 등이 그 수단이다. 현재 친부에게서 아이의 양육비를 받는 싱글맘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양육비 피해자인 코피노들도 국적과 무관하게 똑같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게 내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배드파더스와 연대하는 목적이다. 현재 7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통과 전망은 밝지 않다.

코피노 아빠들은 코피노 맘이 양육비 지급을 요구하면 필리핀의 한국 조폭과 현지인 건달을 보내 협박한다. 제 자식의 양육비를 부담하지 않겠다는 심보다. 건달들은 코피노 맘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가족들까지 죽이겠다고 겁을 준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코피노 맘들이 소송을 취하한다. 애를 버리고 떠난 아빠에게서 또 다시 상처를 받는 것이다. 생부는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지면 월 30만 원씩 18세까지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코피노 아빠들은 판사의 판결문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다.

코피노 맘 보호하려 칼 든 건달들과 싸워

나는 유도 7단이다. 중2 때부터 꾸준히 유도를 했다. 국내에서는 유도 실력을 보여줄 일이 없었다. 키는 163cm로 단신에 가깝다. 필리핀에 있을 때 건달들이 떴다는 코피노 맘의 연락을 받으면 나는 곧바로 달려가 이들과 치고받고 싸운다. 상대가 칼을 쓰면 칼을 뽑는다. 칼에는 칼! 칼 쓰는 건달들을 상대하기 위해 짧은 칼을 쓰는 필리핀 전통 무술 칼리아르니스를 뒤늦게 배웠다. 원빈이 영화 [아저씨]에서 선보인 칼리아르니스. 코피노 맘에 대한 건달들의 사후 보복을 막으려면 말 그대로 ‘반 죽여’ 놓아야 한다. 상대방 칼에 당하기도 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당하지 않는 건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국 건달 둘이 도끼를 들고 달려든 적도 있다.

나이가 드니 이런 생활이 너무 버겁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오늘 과연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매일 한다. 솔직히 어떨 땐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 은퇴할 때 애초에 가려 한 ‘가지 않은 길’이 아른거린다. 이렇게 사는 건 국내의 가족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코피노는 아빠에게 버림받았지만 엄연히 우리 핏줄들이다. 하루 두 끼도 못 먹는 이 아이들이 너무 안됐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아이들에게서 예수의 얼굴을 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한국을 향한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한쪽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봉사 활동을 벌이는 동안 코피노 아빠들이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 학대로 간주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WLK의 도움으로 양육비를 받아 낸 한 코피노 맘은 내게 “당신 덕에 이제 살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양육비로 받은 약 2000만원 중 1200만원으로 필리핀판 봉고차 지푸니를 장만했다. 지푸니를 모는 그녀의 아버지가 월 40만원 이상 벌 것이다. 나머지 800만원은 여섯 살인 코피노 아이의 대학 학자금으로 떼어 놓았다고 했다. 가정부 일을 하는 그녀가 그날 내게 5000페소(약 12만원)를 건네며 말했다. “다른 코피노 맘들 밥을 사 주세요.” 그녀 한달 월급의 60%가 넘는 큰 돈이었다.

필리핀 교민들은 코피노 문제가 불거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칫 한국 관광객이 감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들 가운데는 코피노 아빠도 꽤 있다. 교민단체들 사이엔 내가 깡패라고 소문이 났다. 나에겐 오히려 필리핀 경찰이 우군이다. 어쨌거나 이번 재판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필리핀으로 돌아가 코피노들의 생존권을 지켜 주려 애쓰는 사람들의 활동비를 마련해야 한다. 주 수입원은 민다나오섬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반군에게서 이들이 납치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이다. 어서 민다나오로 돌아가 다시 총을 들어야지.

※ 구본창씨와 만나 인터뷰한 후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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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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