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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중남미 어디로] 남미 좌우파 정권 치열한 대립 양상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사임 두고 갈등… 칠레·볼리비아 이어 니카라과 정세 급변 가능성

▎대선 부정 논란 끝에 물러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 다음날인 11월 11일(현지시간) “쿠데타로 대통령에서 강제로 물러난 뒤 첫날 밤을 보냈다”는 글과 함께 알려지지 않은 한 장소에 담요를 깔고 누워 휴대전화를 보는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 사진:연합뉴스
라틴 아메리카가 요동치고 있다. 일당독재 국가를 제외하고 중남미 좌파 지도자 중 최장 기간 권좌를 지켜온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부정선거 문제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 사태로 11월 10일 사임하고 이튿날 멕시코로 망명했다. 중남미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모범국이었던 칠레는 지하철 요금 30페소(50원) 인상에 따른 대규모 시위사태로 11월 16~17일로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취소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모랄레스, 좌파의 희망에서 장기 집권 모략가로

2006년 1월 볼리비아에서 원주민 최초로 대통령에 오른 사회주의운동당의 에보 모랄레스는 ‘남미 좌파 정치의 희망’에서 ‘장기 집권 음모가’로 변질됐다가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다. 모랄레스는 대선 조작 논란으로 수도 라파스를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 사태가 발생한 지 3주 만인 11월 10일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모랄레스의 퇴진은 윌리엄스 칼리만 군 최고사령관과 쿠리 칼데론 경찰청장이 시위를 진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통령 사임을 요구한 다음날 발표됐다. 모랄레스는 사임 발표 후 텐트에서 지내는 사진을 공개했지만 다음날 멕시코 군용기를 타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는 “더욱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며 “신자유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군대와 손잡고 민주주의 정권을 억압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사임이 ‘쿠데타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멕시코 정부는 “모랄레스가 전화로 망명을 신청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공개하고 “(볼리비아) 군이 헌법을 위반해 대통령 사임을 요구한 것은 정권에 대한 테러”라고 주장했다.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인(12월 10일 취임 예정)과 11월 8일 석방된 룰라 이그나시우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한 좌파 지도자들은 모랄레스의 사임 사태를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페르난데스는 지난 10월 27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해 4년 만에 페론주의 정당인 ‘정의당’의 좌파 포퓰리즘 정권을 복원했다. 룰라는 뇌물과 돈세탁 혐의로 2017년 7월 1심 재판에서 9년 6개월, 지난해 1월 2심 재판에서 12년 1개월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고 지난해 4월 7일 수감됐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2심 재판의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11월 7일 판단하면서 룰라는 580일 만에 석방됐다. 공산주의 일당독재 국가인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의장과 두 명의 대통령이 존재하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도 같은 주장을 펴며 모랄레스를 응원했다.

모랄레스는 아무런 수습책 없이 혼란의 볼리비아만 남기고 망명을 떠났다. 그가 사임을 발표한 날 대통령직 승계 1순위인 부통령은 물론 2순위인 상원의장도 물러났으며, 3순위인 하원 의장도 승계를 고사해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모랄레스가 속한 집권 여당인 사회주의 운동당(MAS)의 불참 속에 야당 소속 자지네 아녜스 하원부의장이 11월 13일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임시 대통령을 맡았다. 임시정부는 대선 재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볼리비아 사태의 발단은 10월 20일 치러진 대선·총선의 부정선거 시비다. 현직인 모랄레스는 유효표의 47.08%를 득표해 36.51%를 득표한 2위 카를로스 메사(시민공동체) 후보보다 10%포인트 이상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볼리비아 대선은 1차 투표 1, 2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치르지만 격차가 10% 포인트 이상인 경우 결선투표 없이 1위 득표자의 당선을 선언한다. 문제는 중간 집계에서 격차가 10% 미만이었던 것이 최종 발표에서 10% 이상으로 발표되면서 많은 사람이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거기에 선거를 감시했던 미주기구(OAS)가 이번 선거를 조작과 결과 바꾸기, 날조가 횡행한 부정선거라고 선언하고 재선거를 권고하면서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 OAS는 1948년 창설된 중남미 지역의 협의기구로 현재 35국이 가입하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에 본부가 있다. 이번 대선에선 한국계 이민 출신인 정치현 후보는 우파 기독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8.78%를 득표해 3위에 올랐다. 우파 민주사회운동의 오스카 안텔로 후보가 4.24% 득표로 4위에 올랐다. 만일 결선투표를 치렀으면 야당 세력의 합종연행으로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항의시위가 터지고 이를 통제하지 못한 모랄레스는 퇴진과 망명을 선택한 셈이다. 결국 모랄레스의 퇴진은 남미의 좌우파 정권 간의 대립까지 부르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바탕엔 볼리비아 정치의 대결 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모랄레스가 1998년 창당해 그가 대통령에 오른 2006년 1월부터 집권당으로 자리 잡은 사회주의 운동당(MAS)은 좌파 포퓰리즘 정당이자 원주민 정당으로 분류된다. 지지자들은 당 이름의 약자를 따서 마시스타스로 불린다. 볼리비아는 1150만 인구의 68%가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이고, 20%가 18개 이상의 언어를 쓰는 원주민이 차지한다. 백인은 5%, 아프리카계는 1% 수준이다.

국민투표 결과조차 무시한 안하무인의 태도


▎중남미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모범국이었던 칠레는 지하철 요금 요금 30페소(50원) 인상에 따른 대규모 시위사태로 11월 16~17일로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취소했다. / 사진:연합뉴스
남미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모랄레스는 바로 이 원주민들과 빈민, 그리고 좌파의 지지를 권력 기반으로 삼았다. 모랄레스는 2005년 자신이 주도했던 가스산업 국유화 요구 시위 사태로 정국이 혼란한 상태에서 2006년 1월 정권을 쥐었다. 당시 민족주의·포퓰리즘 정당인 민족혁명운동당은 시위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2002년 8월~2003년 10월 재임) 대통령과 이를 승계한 부통령 카를로스 메사(2003년 10월~2005년 6월)가 줄줄이 사임하고 대법관 출신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2005년 6월~2006년 1월)가 세 번째 승계자로 간신히 남은 임기를 채웠다. 모랄레스는 자신이 주도한 시위 사태로 정치권이 무력해진 권력 공백 상태에서 2005년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53.74%를 득표해 28.59%를 얻은 보수정당인 민주사회세력 소속 호르헤 키로가 전 대통령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모랄레스는 취임 후 남미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기업에 대한 세금을 높이고 광산·전기·통신·철도 등을 국영화해 얻은 재원을 빈민과 원주민 복지 향상에 투입하는 정책을 폈다. 취임 당시 전체 인구의 16%에 이르던 문맹을 퇴치하는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한 정치인으로도 통했다. 미국이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에 맞선다며 코카인 원료인 코카잎 재배자의 권리를 옹호하기도 했다. 지지층인 원주민의 권리를 고려한 조치다.

이처럼 모랄레스는 남미 대륙의 첫 인디오 출신 대통령으로 인권정치를 앞세우며 기대를 모았으나 장기 집권에 골몰하다 결국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모랄레스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이 ‘정의’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선 더 긴 임기가 필요하다고 내세우며 장기 집권을 시도해왔지만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모랄레스는 결국 장기 집권 욕심에 국민투표 결과조차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2017년 2월 대통령 임기 제한 폐지안을 담은 국민투표에서 51대 49로 패배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순응적인 헌법재판소로부터 “임기 제한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올해 4선에 도전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집권했지만 권력에 취하자 노골적으로 장기 집권 의도를 드러냈다. 대선 전부터 이에 반발하는 국민이 시위를 벌였지만 모랄레스는 귀를 막았다가 결국 대선 부정 시비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모랄레스가 물러나자 원주민이 중심이 된 지지자들이 맞시위를 벌였지만 혼란만 초래하고 있을 뿐 상황을 역전하기에 역부족이다.

경제와 민주화 모범국 칠레의 급변사태


▎중남미 좌파의 기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이 발표된 2013년 3월 5일 좌파 지도자인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수도 마나과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차베스를 기리는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칠레 사태도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때 경제 발전과 민주화 모두에서 남미의 모범이던 칠레가 11월 16~17일 세계 21개국 정상이 참여해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시위 사태로 취소했다. 칠레의 세비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10월 30일 APEC 정상회의 취소를 발표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합의와 문재인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을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외교 일정이 꼬이게 됐다.

칠레가 야심차게 준비해왔던 다자외교 행사를 취소할 정도로 급박한 형편이 된 외형적인 이유는 지하철 요금 인상에 따른 국민들의 시위사태였다. 10월 25일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120만 명이 수도 산티아고에 몰리고 사망자가 20명에 이르는 등 칠레는 민란 수준의 통제불능 시위사태를 겪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고인물 권력’을 지적할 수 있다. 칠레는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1970~1973년)가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남미에서 민주선거로 집권한 첫 좌파 정권을 수립했지만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73~81 군사정권, 81~89 권위주의 민간정부 대통령)가 쿠데타로 이를 전복했다. 하지만 칠레 국민은 끈질긴 투쟁으로 1989년 피노체트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뤘으며 이후 안정과 민주화, 경제 성장을 구가해왔다. 문제는 2006년 이후 좌우파 회전문 권력으로 부정부패와 정권의 독선을 감시할 건전한 비판 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칠레는 대통령이 중임은 할 수 있지만 연임은 할 수 없다. 한 정치인이 대통령을 연속 두 차례 지낼 수는 없지만, 한 임기를 쉬면 그 다음 선거에 다시 나올 수 있다. 칠레에선 이 제도를 이용해 좌우파에서 같은 인물이 대통령을 번갈아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좌파에선 미셸 바첼렛(2006~2010년, 2014~2018년 재임), 우파에선 세바스티안 피녜라(2010~2014년, 2018년~현직)가 이렇게 대통령을 맡아왔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했다. 유권자를 겁내지 않는 고인물 권력층이 형성됐으며, ‘우리끼리 정치’ ‘그들만의 정치’가 판치기 시작했다. 피녜라의 우파 정권의 경우 지난 정권의 마지막 법무장관이 현 정권에서 외무장관 맡는 등 좁은 인재풀에 고위 공직이 기득권층의 자리 돌리기로 메워지고 있다. 결국 정치는 소수 엘리트 정권의 파당정치에 빠졌고, 정치와 정책은 진영 논리에 빠졌다. 이들은 정치인과 대중 간의 괴리를 불러왔다.

결국 이번 시위 사태를 부른 지하철 요금 인상은 도화선일 뿐 실제 원인은 대중과 좌우 기득권층의 해묵은 대립인 셈이다. 지하철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하자 칠레 경제 장관이 “조조할인을 이용하라”고 막말을 하면서 사태에 기름을 부은 것도 민심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권력’의 실체를 보여준 사례로 지목된다. 결국 국민을 겁내지 않고고 쉽게 권력을 차지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목소리 듣지 않고 자신들이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다 끝내 분노한 대중으로부터 대규모 시위라는 강펀치를 맞은 셈이다. 결국 APEC 취소에 이른 칠레 민란 배경은 ‘고인물 권력’인 셈이다.

혁명가가 권력욕의 화신으로

중남미 급변사태의 다음 차례는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일 가능성이 크다. 오르테가는 니카라과의 좌파정당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NL)을 이끌고 2007년 1월부터 장기 집권하고 있다. 오르테가는 친미 소모사 족벌정권을 몰아낸 1979년 니카라과 혁명의 지도자로 1979~1985년 국가재건위 의장에 이어 1985~1990년 대통령을 지냈지만 재선에 실패한 후 17년간 야당 지도자로 있다가 2007년 다시 권력을 움켜쥐었다. 재집권 후 그는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층의 국민의 의료·교육·대출 ·사회복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주목받았다. 반미정책을 추구하는 중남미 지도자와의 연대도 강화했다.

쿠바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게릴라 교육 받은 후 1979년 혁명으로 친미 소모사 족벌정권을 전복시켜 좌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일당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다당제 민주사회주의자로 정치적 입장을 바꿨지만 2007년 재집권하자 장기 집권에 혈안이 되고 있다. 2014년 1월 의회에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임기 제한을 폐지했다. 2017년 4기 취임 후에는 과거 산디니스타 게릴라 활동을 함께했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를 부통령에 앉히고 권한을 몰아주고 있다. 좌파 게릴라 운동으로 족벌정치를 무너뜨렸던 오르테가가 이젠 권력을 사유화하며 ‘붉은 족벌정치’를 확대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남미 반독재의 아이콘이 권력욕의 화신으로 변질된 셈이다. 중남미 피플파워의 다음 대상이 오르테가가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이처럼 중남미는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고장 난 정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좌우가 아니라 국민임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좌우할 것 없이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정의를 독점하려는 권력층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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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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