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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정증권 발행 후폭풍 부나] 마이너스통장으로 ‘세수 펑크’ 돌려막아 

 

재정 조기 집행에 세수 감소 겹쳐… 시중금리 상승 가능성 우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1월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반 간담회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연말 기준으로 세입예산에 다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입예산의 1% 내에서 부족이 발생하지 않을까 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국세 수입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 세수 부진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 격인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세수 펑크로 ‘급전’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정부는 큰 문제가 없다지만 이자 등 재정증권 발행에 드는 비용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내년에는 대규모 적자국채(일반회계 적자보전 국채)도 발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금리를 끌어 올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가 시장에서 돈을 끌어당기니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시중금리가 오르면 기업 등 민간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경기 부진에 대응하려 올해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과는 상반된다.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11월 18일 올해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이 49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연간 누적 발행액 49조원은 관련 자료를 파악할 수 있는 2011년 이후 최대치다. 재정증권은 국고금 출납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부족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63일 또는 28일물) 유가증권이다. 반드시 연내 상환해야 하는데, 성격이 직장인의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해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불린다. 정부는 2003∼2006년 재정증권을 발행했지만, 이후 세수가 증가하면서 2010년까지 발행하지 않았다. 5년여 만인 2011년 재정증권을 발행했는데, 그해 누적 발행액은 11조원 정도였다. 이후 누적 발행액은 2014∼2015년 정점을 찍은 뒤 하강 국면을 보였다. 세수 호황을 누렸던 2017년(두 차례 총 7조원)과 2018년(한 차례 2조원)은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이 급감했다.

상반기 예산 집행률 65.4%


지난해 2조원에 불과했던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이 올해 2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 기조와 세수 부진 영향이다. 정부는 대외 여건 악화와 투자·수출 부진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자 올해 초부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예산 집행을 독려했다. 그 결과 상반기 집행률 목표인 61%를 초과한 65.4%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2월 6조원을 시작으로 3월 10조원, 4월 7조원 매달 수조원대의 재정증권으로 단기 자금을 조달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세금 수입은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원 줄었고, 예산 기준 세수 진도율도 53.0%로 0.5% 포인트 하락했다.

정부의 씀씀이가 커졌지만 수입은 오히려 줄어들며 급전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7~9월에도 매달 재정증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상반기 발행한 재정증권 상환에 사용했다. 급전을 빌려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그러나 기재부 측은 “재정증권 발행으로 세목에 따라 세입 시점이 다른 분절성을 완화해 효율적으로 재정의 조기 집행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문제가 없다지만, 많아서 좋을 건 없다. 올해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세수 감소폭이 올해처럼 정부 예상보다 커질 경우 역대급 재정증권 발행 기조는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2020년 국세 세입예산안 내년 세입은 올해보다 0.9%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에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내년에는 특히 세수 펑크를 막기 위한 대규모 적자부채도 발행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에 발행할 적자국채는 60조2000억원에 이른다. 재정지출을 9.3% 늘려 잡았는데, 수입은 1.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해 50조원 이상의 적자국채를 발행한 예는 그동안 없었다. 시장에서는 국채 발행이 현실화하면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올라 은행·회사채의 금리 상승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최근 국채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고채 금리의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8월 사상 최저점인 1.172%를 기록한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11월 11일에는 1.79%로 올랐다.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가파르다. 같은 기간 미국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1.50%에서 1.94%로, 독일은 -0.70%에서 -0.26%로 각각 상승했다. 이에 따라 10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상승세도 지속하고 있다. 재정당국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11월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가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해 금융·자본시장의 자금을 흡수하면서 민간 자금이 국채로 흡수되고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구축효과’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차관은 “저축이 투자보다 많은 상태에서 민간 자체의 채권 발행 수요가 크지 않다”며 “정부가 그 기회를 뺏기는커녕 오히려 민간이 필요로 하는 채권을 (웃돈을 받고) 공급해 주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시중금리에 영향 미칠 것”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웃돈을 지불하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정부의 국채 발행이 민간 채권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과도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시장에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 만큼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물량이 쏟아지면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연말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 예정인 20조원 규모의 주택저당증권을 시중은행이 산다면 그만큼 다른 채권을 못 사게 되므로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DB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장기투자기관의 국내 채권 매수세가 내년에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장기채 발행 증가와 맞물려 수급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부총리도 11월 16일 “국채가 어느 정도 발행이 되는지에 따라 시중금리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511호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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