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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에 몰린 인도 모디 총리] 총선 압승 6개월 만에 양파 대란에 휘청 

 

폭우로 양파 생산량 줄고 가격 급등… 수출 금지에 친인도 방글라데시도 대혼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지난 5월 23일 개표가 이뤄졌던 인도 총선에서 보수 우파 인도인민당(BJP)을 이끌고 압승을 거뒀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불과 6개월이 지난 현재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문제는 농산물인 양파에서 비롯했다. 지난 여름 우기에 양파 주산지인 인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계속 내려 지난 9월부터 양파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치솟았다. 그러자 인도 정부는 9월 29일 양파 수출을 금지했다.

양파는 남아시아 범인도권 국가의 필수 음식 재료

양파는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네팔 등 지리적으로 인도아대륙에 위치한 남아시아의 범인도권 국가들의 음식문화에서 필수적인 재료다. 범인도권은 기본적으로 쌀과 렌틸 콩을 허브 양념을 중심으로 만든 채소와 육류 요리에 버무려 먹는 음식문화를 공유한다. 우리가 커리로 아는 요리다. 이 커리를 일본에서 개량한 것이 카레다. 범인도권 요리의 대략 70~80%에 양파가 들어갈 정도로 양파는 범인도인의 삶에 필수적이다.

그런 양파 가격이 한마디로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모디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인도에서 7∼8월에는 ㎏당 20∼25루피(인도의 화폐 단위)였던 양파 소비자 가격이 9월이 되자 최고 80루피로 치솟았다. 인도 루피화의 기준 환율인 1루피당 16.39원을 바탕으로 하면 ㎏당 332~410원이던 양파 값이 9월 이후 1311원으로 3~4배로 뛰었다. 인도는 2018년 220만t의 양파를 수출했는데, 이는 모든 아시아 국가가 수입하는 양파 물량의 과반수에 해당한다.

인도발 양파 대란은 남아시아 전역에 충격을 줬다. 특히 방글라데시는 양파 수요의 20%만 국내에서 공급하고 나머지는 인도에서 수입해왔다. 방글라데시는 농업 국가이니만큼 국내에서 더 생산할 수도 있지만 인도에서 항상 낮은 가격으로 수입을 제안해 물가 조절을 위해 그동안 인도산을 수입해왔다. 방글라데시 일각에선 인도가 자국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덤핑에 가까운 낮은 가격을 제시해 방글라데시의 양파 농업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2009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집권 셰이크 하시나 총리와 집권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은 친인도적 성향이어서 이를 해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인도 양파에 의존해왔다. 방글라데시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벵골인의 자결을 강조하는 벵골 민족주의 정당인 이와미 연맹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아버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1920~1975년)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친인도 성향이 강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라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1971년 3월 7일 당시 동파키스탄이던 방글라데시가 지금의 파키스탄인 서파키스탄에 저항하는 무장시위를 주도하고 3월 26일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인도에서 훈련 받은 동파키스탄 무장 세력이 라만을 지원했다. 라만은 4월 11일 방글라데시의 초대 대통령이 됐지만 서파키스탄 군대에 체포돼 서파키스탄으로 이송돼 군사재판을 받았다. 그러자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시위와 무장활동이 벌이지면서 독립전쟁으로 번졌다. 방글라데시 독립 세력은 서파키스탄의 숙적인 인도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군사적으로 우위에 섰고 서파키스탄의 항복을 받아냈다. 방글라데시 독립을 인도가 지원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라만과 그가 이끈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은 인도 지도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줄곧 친인도 성향을 보였다.

라만은 1972년 1월 석방돼 귀국했지만 곧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1975년 1월 12일 제2대 총리를 맡았으며, 1월 25일엔 4대 대통령에도 올랐다. 총리직은 1월 24일 물러났지만 대통령은 그대로 맡다가 그해 8월 15일 군사 쿠데타로 일가족과 함께 살해됐다. 라만이 대통령을 맡는 동안 총리를 맡았던 3명도 군사정권에 살해됐다. 당시 셰이크 하시나는 서독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1996년 6월부터 2001년 9월까지 총리를 맡았으며 야당 대표를 거쳐 2001년 1월 총리로 복귀했다. 셰이크 하시나가 총리를 맡는 동안 방글라데시는 친인도 정책을 폈다.

친인도 성향 방글라데시, 중국과 밀월관계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은 지난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인도가 9월 29일 남아시아 지역에서 생필품에 해당하는 양파의 수출을 금지하자 파동의 불똥은 방글라데시로 튀었다. 인도의 수출 금지 이전까지 ㎏당 30타카(방글라데시의 화폐 단위)이던 양파 가격은 10월 초 130타카로 무려 4.5배로 뛰었다. 11월 17일 기준으로 260티카로 치솟았다. 거의 9배로 오른 것이다. 1타카에 13.88원인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1㎏에 416원이던 양파 가격이 10월 초 1800원을 거쳐 11월 17일 3600원으로 폭등한 것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웃 미얀마에서 양파를 긴급 수입했으나 도착한 양파가 상하는 바람에 물량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자 이집트와 터키에서 양파 수입을 시도하고 있다. 양파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양파 가격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칫 물가 폭등으로 이어져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몰릴 것을 우려한 조치다. 그럼에도 시장에는 양파 품귀 현상을 벌어지고 있다. 일부 식당에선 양파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의 제공을 중단하는 실정이다. 방글라데시 국민의 대정부 여론은 물론 대인도 여론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칫 인도의 대방글라데시 외교 전략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인도와 중국이 벌이는 세력 경쟁이 가장 뜨거운 나라의 하나가 방글라데시다. 방글라데시는 인도가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네팔·부탄·미얀마·중국 가운데 부탄과 더불어 유이한 친인도 성향의 국가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숙적 중 대표적인 친중 성향의 국가다. 네팔도 갈수록 친중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얀마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고속철도 등 중국의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부탄은 인도에 국방을 위임하고 있으며, 중국의 침략을 두려워한다. 방글라데시는 친인도 성향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면서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집권당과 정부의 지나친 인도 의존에 반발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중국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항구인 차토그람(과거 치타공으로 알려짐)의 남부를 흐르는 카르마풀 강을 지나는 하중 터널을 건설하고 있다. 차토그람은 카르마풀 강의 북쪽에 항만과 화물 터미널을 가동하고 있다. 하중 터널을 건설하면 항구를 강의 남쪽에도 건설해 화물 처리 능력을 배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얀마에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고속철도를 방글라데시까지 연장해 동남부의 콕스바자르까지 연결한 후 이를 다시 160㎞쯤 떨어진 치타공 항구까지 이어지게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중국의 상품이 미얀마 내륙을 거쳐 치타공 항이 위치한 안다만해까지 직송될 수 있다.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비롯한 중국의 전략적 수입품도 해적의 습격 위험이 높은 말라카 해협을 지나지 않고 치타공 항에서 중국으로 고속철도를 이용해 운반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지정학적 장점을 극대화하고 물류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로선 중국과 이런 경제 협력을 하면서 인도의 입김을 다소 줄이고 균형을 찾을 수도 있다. 양파 수입 금지로 인도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된 상황을 이용해 방글라데시의 집권세력이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점을 중국 쪽으로 옮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모디 총리에겐 달갑지 않다. 모디 총리는 군사적으로 중국에 맞서고 경제적으로 중국을 추월 대상으로 삼는 전략으로 국민들의 인기를 모아왔다. 과거 국경 분쟁을 겪은 중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도 국민의 힌두민족주의에 불을 질렀다. 2017년 6~8월엔 중국이 전략적 요충지인 북부 국경지대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갈등이 불거지자 모디가 강력히 대응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모디 총리는 이렇게 중국을 견제하면서 유권자들에게 강단 있는 지도자로 비쳤다. 2018년 4월 비공식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간단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모디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자국 인근 인도양에서 미국·일본 군함과 합동 훈련도 벌이면서 중국을 경제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면서 북쪽 국경을 위협하는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데 앞장선다. 이를 통해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국제사회에서 크게 높이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5월 총선에서 중도좌파 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를 누르고 정권 교체를 이뤘던 모디 총리는 지난 5월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인도는 연방하원 545석 가운데 대통령이 지명하는 2석을 뺀 543석을 비례대표나 정당명부제 없이 투표로만 선출한다. 5월에 개표한 총선에선 정당 대표 자택에서 돈다발이 발견된 한군데를 뺀 542곳에서만 개표가 이뤄졌다.

인도 선거위원회(ECI)에 따르면 BJP는 37.43% 득표로 542석 중 303석(의석의 56%)을 차지, 단독 과반수를 확보했다. 역대 총선에서 단일 정당이 얻은 최다 의석이다. BJP가 포함된 보수정당 연합인 국민민주동맹(NDA)은 45% 득표로 352석(65%)을 확보해 우파의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가능해졌다. 지난 2014년 총선보다 BJP는 21석, NDA는 16석을 각각 늘렸다. BJP와 인도 우파의 역사적인 대승이다.

중도좌파인 제1야당 국민회의는 지난 총선보다 0.01% 줄어든 19.51%의 득표율로 8석이 증가한 53석 확보에 그쳤다. 국민회의가 이끄는 진보정당 연합인 통합진보동맹(UPA)은 26% 득표로 31석이 늘어난 91석(17%)을 얻었다. 중도우파인 모디와 BJP는 인도 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뒀고 국민회의와 중도좌파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중국 견제와 경제 성장 내세운 모디 총리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중국 견제와 경제 성장을 내걸고 지지를 얻었다. 사진은 2017년 인도 고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앉은 모습. / 사진:연합뉴스
총선 당시 모디 총리가 내세운 경제 공약은 경제 성장을 통한 일자리 마련에 주안점을 뒀다.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기업 활동 지원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와 경제활동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인도 사회의 그늘이자 최대 표밭인 농가·빈곤층을 위한 보조금은 연 6000루피(약 10만 2400원)에서 더 늘리지 않고 경기 부양을 통해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써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겠다는 공약을 했다.

이는 야당인 중도좌파 국민회의와 철저히 대조적이었다. 국민회의는 중앙·지방 정부에서 공무원 숫자를 늘려 총 340만 명에게 일자리를 나눠주는 공약을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빈곤 가정에 연 7만2000루피(약 122만 8300원)를 지급해 정부가 먹여 살리겠다고 공약했다. 무상 복지 확대를 통해 가난을 해결하겠다는 접근법이다. 경제 성장을 통한 일자리 제공 정책과 정부가 세금으로 농촌과 빈곤층을 먹여 살리는 무상복지 정책이 맞붙은 셈이다. 이 대결에서 모디 총리는 압승을 거뒀다. 그만큼 모디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컸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모디가 2014~2019년 집권 1기 기간에 받은 경제 성적표는 국민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디의 인도는 경제성장률에서 중국보다 앞서며 기염을 토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14/15년 7.2%, 2015/16년 7.6%, 2016/17년 7.1%로 7%대를 유지했다. 2017/18년 6.7%로 일시 떨어졌지만 2018/19년 7.5%(추정치)로 활기를 회복하고 2019/20년에도 7.5%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2014년 7.3%, 2015년 6.9%, 2016년 6.7%, 2017년 6.9%, 2018년 6.5%(추정치), 2019년 6.2%(전망치)로 6%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

인도의 실업률은 2018년 기준 3.53%에 불과하다. 하루 1.9달러인 빈곤선 이하로 살아가는 주민의 비율도 2016년 전체 인구의 12.4%에서 2018년 12월 기준으로 3.7%로 줄었다. 모디 정부는 정책적으로 제조업 발전을 이끌어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모디 총리는 경제 개방과 건설·유통으로 성장을 견인해왔다. 10개 신도시를 건설하고 일부 소매점을 제외한 경제의 거의 전 분야를 외국 기업에 개방해 외자를 유치하는 공약을 차례로 실천했다. 건설과 유통 붐을 일으켜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에 더해 1기 집권 직후인 2014년 9월 ‘메이크 인 인디아(인도에서 물건을 만드세요)’라는 구체적인 제조업 육성 정책도 내놨다. 가난한 농촌 인구를 공장 노동자로 돌려 제조업을 키우겠다는 의도다.

농가 소득 2배로 늘리겠다고 약속

2016년 2월엔 2022년까지 농가 소득을 2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해 11월에는 부정 소득과 위조지폐 대책으로 고액권 사용을 금지하는 강력한 대책까지 도입했다. 2017년 7월 주마다 다른 간접세를 일원화해 ‘물품과 서비스세(GST)라는 통일 세금을 도입했다. 강력한 정책 추진의 결과다. 하지만 양파 가격이라는 복병을 만나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농촌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농민의 마음을 잡는 것은 선거 승리와 권력 유지의 핵심이다. 모디 총리가 어떤 조치로 위기를 돌파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11호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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