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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26) 이준용 경기실버포럼 수석 매니저] 지하철 경로우대 반납 후 지정기부 하자 

 

독보적 노인문화 단체 경기실버포럼 탄생 산파역… “대등하게 대해야 대접 받아”

▎사진:전민규 기자
“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 공적 연금을 받는 시니어들이 지하철 경로우대승차를 포기한다면 어쩌면 노인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달라질지도 몰라요.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그런 캠페인을 펼치고 싶습니다.” 사회복지학 박사인 이준용 경기실버포럼 수석 매니저는 “이렇게 노인들이 포기한 무임승차 혜택을 당사자가 지정기부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인들이 무임승차를 포기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생긴 경제적 자원을 전 사회적으로 공공화하는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직해 노후 걱정 없는 분들도 자발적으로 이런 무료 혜택을 반납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노인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노인의 위상이 부담스런 존재에서 존경 받는 어르신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노인들도 이 사회와 축적한 경험과 인맥을 공유하고, 지혜와 경제적 자원을 나눌 수 있어요. 실버 에너지라고 할 수 있죠. 신(新)노인으로 거듭나 받는 대상이 아니라 베푸는 주체가 되어 보자는 거예요.”

이 매니저는 노인 복지를 전공했다. 14년 전 그가 산파역을 맡아 출범한 사단법인 경기실버포럼(출범 당시엔 안양실버포럼)은 독보적인 노인 문화운동 단체이다. 60세 이상인 포럼 회원은 약 250명으로 시니어로서는 적지 않은 월 1만원의 회비를 낸다. 좋은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해 출범 초 국무총리 기관 표창을 받았다. 출범 당시 70대 초반이었던 창립 회원들은 이제 80대 중반이다.

안양에 자리 잡은 경기실버포럼 회원들은 안양시의회의 의정활동을 모니터링한다. 그 덕에 안양시의회는 전국적으로 모범적인 지방의회라는 소리를 듣는다. 시의원들은 모니터링하는 회원들 때문에 “아무래도 말조심을 하게 되고 노인들이 모니터링 오시면 겁이 난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정기국회 땐 여의도에 모니터링 나가려다 국회가 너무 어수선해 대신 경기도의회에 다녀왔습니다.”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회원들이 2인 1조를 이뤄 안양시 버스 난폭운전 모니터링도 한다. 출범 초부터 벌인 청소년 대상 장학사업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걱정에서 미혼모 어린 자녀 돕기 사업으로 전환했다. 독거노인지킴이 사업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정부 사업 ‘노노(老老)케어’의 단초가 됐다. 안양시에서 추천받은 취약계층 독거노인 100명과 회원들이 1대1 결연을 맺고 집으로 방문해 끊어진 전구를 갈고 문고리를 고쳐줬다. 노노케어는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층 노인들이 2인 1조가 돼 독거노인 한 명을 월 10회 방문해 돌보고 월 20만원 받는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경기실버포럼은 안양예술공원지킴이 사업도 벌인다.

이 매니저가 실버포럼을 시작할 때 그의 남편은 실버포럼 사무실이 있는 안양2동의 동장이었다. 안양2동이 속한 만안구는 오래된 구도심으로 노인의 비율이 높았다. 이들 중 다수는 골목길에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소일했다. 주민들을 위해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남편에게 대학원에서 노인복지를 전공 중이던 이 매니저가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 후 임기를 마친 남편이 안양시청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는 경기실버포럼 매니저 자리를 지켰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후 경기도의 한 요양원 원장으로 일하는 동안엔 회원들이 실버포럼 사무실 그의 책상을 못 빼게 해 한 달에 한 번씩 들러 신노인문화운동 세미나 등을 챙겼다.

노인복지를 공부하기 전 그는 삼성생명에서 10년간 일했다. 계약심사 업무를 맡아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모범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느라 제대로 신경을 못 쓴 무녀독남 아들이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싶어 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아들과 중국으로 떠났지만 설을 쇠러 일시 귀국했다 시부모들에게 발목을 잡혔다. 중국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한 탓이었다.

만학으로 사회복지학 박사

40대 중반에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가 아침에 집을 나서면 종일 거실 커튼도 걷지 않은 채 정물화처럼 앉아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무렵 영국에서 귀국한 여동생이 실버산업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시작한 실버 산업 공부가 노인복지 전공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 취득까지 이어졌다. 앞서 제3섹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남편이 적극 권했다. 박사과정을 뒷바라지한 그를 “여기저기 단기 교육 과정에 쫓아다니지 말고 제대로 학위를 해 보라”고 부추긴 것이다. 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노인복지로 석사를 마친 후 마흔아홉에 건국대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책장을 넘기면 바로 앞 페이지에서 읽은 게 가물가물해 애를 먹었지만 젊었을 때보다 이해력은 오히려 높았습니다. 만학을 권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의 뜻을 세우면 할 수 있어요.”

그는 연성대 사회복지과 초빙교수를 거쳐 강남대 실버산업 학과에 출강 중이다. 공직에서 퇴직한 남편은 성결대 행정학과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지자체 공무원 경험을 살려 지방자치 및 분권 분야 전문 강사로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은 안양시 시정뉴스 아나운서와 안양시 공무원으로 처음 만났다. 신혼 땐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남편과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집 근처 백운호수 주변 산책로를 걷는다. “강의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는 등 즐겁게 많은 대화를 합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맛보는 건 덤이죠.”

준마와 큰쇠북이라는 뜻을 지닌 그의 이름은 발음도 뜻도 남자를 연상시킨다. 가부장적이었던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남녀공학이었던 중고교 시절 심부름 온 후배들은 그를 찾을 때 준용이 오빠가 누구냐고 물었다. “양반 가문의 후예인 할아버지는 예의를 중시하셨고 집에서 큰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본래 성격과 달리 얌전한 아이로 자랐죠. 그래서 언젠가 드럼을 배우고 싶어요.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시민운동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 같아요.”

지금이 나의 인생 황금기

그는 남편이 동네에서 스크린골프를 치는 동안 카페에서 목격한 광경을 들려줬다. 골프장이기는 했지만 삼성에서 임원으로 퇴직한 시니어들이 온통 골프 얘기뿐이었다. 그렇게 소일하는 게 안타까웠다. 저런 세컨드 라이프가 과연 행복할까? “그 대단하신 분들이 지도층으로서 사회 봉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를 하면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죠. 우리 포럼 회원들이 증명합니다. 어르신들이 ”이 나이에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공공기관이 자원봉사센터를 두고 자원봉사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노인도 삶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변주했다. “노인이니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청소년도 대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존경을 받고 대접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1511호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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