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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26) 리더가 꼭 보여주어야 할 5가지 능력] 몸으로 보여주고 함께 하고 맨 앞에 서라 

 

목표 향한 비전·방법 제시해야… 작은 성공 만들어 자신감 심어줄 필요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곧잘 자신이 강한 남자임을 과시하는 ‘터프 가이 쇼’를 선보여 ‘알파 독(힘센 수컷 우두머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곧잘 깜짝쇼를 벌인다.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에게 마취총을 쏴 위치추적기를 다는가 하면, 마취 상태인 북극곰에게 위치추적기를 부착한다면서 품에 안고 입을 맞춘 적도 있다. 추운 날 웃통을 벗고 낚시를 하거나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건 예삿일이고, 2012년에는 행글라이더를 타고 겨울 서식지로 이동하는 흰두루미를 ‘안내’하기도 했다. 물론 혼자 조용히 치르지 않는다. 할 때마다 주요 언론을 동원, 전국 방방곡곡에 알린다.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란 뜻이다. 또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한다는 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해외 언론들은 자신이 강한 남자임을 과시하는 ‘터프 가이 쇼’라며 ‘알파 독(힘센 수컷 우두머리)’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푸틴의 깜짝쇼를 권력 차원에서 보면 좀 더 ‘고차원적인’ 노림수가 숨어 있다.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강한 사람=강한 지도자’라는 오래된 등식이 있는데 이걸 자신에게 적용시키려는, 이미지 만들기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진짜 이런 마음이 있을까, 싶다면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신화를 떠올려 보면 된다. 거의 모든 신화에는 공통적으로 괴물과 싸우는 영웅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괴물과 싸워 이긴 영웅의 이후 행적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다. 환호 속에 귀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농경문화에서는 신화가 약간 변형된다. 이런 곳에서는 괴물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기에 황소를 한손으로 때려 잡거나 호랑이를 화살 한대로 명중시키는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리더의 몸짓 하나하나가 메시지


▎영국의 처칠은 선천적으로 영어 ‘S’ 발음이 되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걸 독특한 매력으로 만드는 데 성공, 자신에게 리더의 자격이 있음을 입증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과학의 발달로 무시무시한 괴물이 없다는 게 확실해지자 새로운 괴물이 나타나고 있다. 저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외계인이 그들이다. 맞서 싸우는 ‘어벤저스’는 현대판 영웅이고 말이다. 이런 영화가 히트하는 건 이런 마음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푸틴의 생색 내기가 지나친 것 같지만, 그는 한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권력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일리 있는 일이라는 것을.

독재자들만 이런 이미지 만들기에 애쓰는 게 아니다. 형식과 정도는 다르지만 다들 마찬가지다. 강력한 힘을 가진 곳이거나 그런 힘을 지향하는 리더들은 기자회견 같은 공식행사를 할 때 연단에 혼자 서지 않는다. 좌우에 힘 있는 부하들을 병풍처럼 세운다. ‘내가 이런 대단한 전문가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크고 멋진 차와 집에서 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의도에서 나온다. ‘내게는 이런 힘이 있고, 그래서 세상을 이끌어 갈 자격(능력·자질)이 있다’는 것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건 이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리더가 물리적 힘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영국의 처칠은 최고 리더들에게 필수적인 연설에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영어 ‘S’ 발음이 안 됐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걸 독특한 매력으로 만드는 데 성공, 자신에게 자격이 있음을 입증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처칠처럼 물리적인 힘보다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매력으로 리더가 되는 경향이 강하다. 매력이란 누구나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인 까닭이다.

사람을 이끄는 리더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근육의 힘이 필요했지만 갈수록 머리를 쓰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리더는 이 힘을 갖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보여주어서 힘(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꼭 보여야 할까? 안 보이면 안 될까? 안 된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우리의 감각체계는 시각을 우선한다. 우리 뇌의 3분의 2 이상이 시각에 투자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고 보아야 믿는다는 말은 그래서 언제나 진리다. 정치가에게 연설이 중요하고, 경영자에게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한 건 보여지는 능력이 필수인 까닭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이 한 이 말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미디어라는 전달 수단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매클루언은 언론매체만을 미디어라고 하지 않았다. 그가 쓴 책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이란 이름 그대로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는 것을 미디어라고 했다. 책은 눈을 확장한 것이고, 옷은 피부를, 바퀴는 다리를 확장한 것이다. 이 말은 리더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리더가 짓는 눈읏음, 표정, 옷, 걸음걸이 같은 몸짓들이 다 미디어이고 메시지다. 열심히 보고를 하고 있는데 보고 받는 상사가 미간을 살짝 찌뿌린다. 무슨 뜻일까?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말로 하는 것만이 메시지는 아니다.

“임원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됐어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내 몸이라고 마음대로 쓰면 도대체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납니다. 구성원들이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열배 이상이었어요. 진작 알았더라면 그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다국적 기업에서 고위 임원으로 있었던 사람의 말이다. 이 사람의 말처럼 해 봐야 비로소 실감하는, 몸으로 보여주는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내가 상사이니 당연히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고 착각이다. 사람은 보이는 걸 먼저 보고, 대부분 그것만 본다. 그러니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내가 리더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리더십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리더들이 꼭 보여주어야 할 능력은 이 외에도 네 가지가 더 있다.

포르쉐를 부활시킨 비결


▎고선지는 서역을 정벌할 때 작은 승리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당나라 영토를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역까지 확장했다. KBS [다큐멘터리 고선지 루트]의 한 장면.
위기라는 수렁에 빠진 독일의 스포츠카 포르쉐를 구원하기 위해 1981년 피터 슈츠가 부임했을 때다. 막상 부임해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나빴다. 직전 해 최초의 적자를 기록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푹 가라앉아 있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슈츠는 어느 날 연구소로 가서 회의를 소집했다. 임원을 소집한 게 아니었다.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알렸다. “자동차 경주와 관련된 아무나 10시에 식당에서 모일 것!” CEO의 파격적인 알림에 납품 업체 직원들까지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할 수 있다”고 역설하자 다들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회사 사정을 알고나 하는 말이야?’ 그래서 물었다.

“올해 가장 중요한 경주가 뭡니까?”

“그야 물론 프랑스의 르망 24시간 경주입니다. 오늘부터 62일 후면 시작합니다.”

“이길 수 있습니까?”

“글쎄요, 사장님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어요. 프로덕션 차종(일반 승용차를 경주용으로 개조한 것)이라 가능성이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양산차 등급에서는 이길지도 모르지만 완전히 경주용으로 제작된 차량들과는 경주가 안 됩니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뭔가 바꿔보려는 리더에게는 이때가 결정적 순간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잘 모르시는 것 같다’는 기존의 사고방식이 개혁 의지와 부딪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후 많은 상황이 좌우된다. 밀리면 국면 전환은 물 건너가는 것이나 다름 없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슈츠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 있는 한, 우리는 어느 경주에서도 승리한다는 목표 없이는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가 모르니 모두들 내일 오전 10시까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제게 말해주세요. 어떻게 그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말하든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제가 여기 있는 한 이기지 못할 경기에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겁니다.”

CEO가 스스로 칼날 위에 서자 미덥지 않게 바라보던 직원들이 하나 둘 그를 따라 칼날 위에 서기 시작했다. 그해 포르쉐는 르망에서 종합 우승을 했고, 여세를 몰아 이후 6년 동안 연속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승만 했겠는가? 슈츠는 이 돌파구를 통해 회사 내에 가득한 ‘안 된다’는 생각을 몰아냈다.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1981년 2만7983대였던 판매량이 1985년 4만9365대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고선지 장군의 승리법

리더가 보여주어야 할 두 번째 능력은 조직이 가야 할 곳과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모래알이 되고 콩가루가 되어가는 조직을 하나로 모으는 건 큰 소리나 지시가 아니다. 가능한 비전과 방법을 제시하면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신임 리더라면 보통 100일 안에 이걸 제시해야 한다. 100일이란 구성원들이 리더를 탐색할 겸 기다려주는 시간이다. 더불어 이 비전이 진짜 가능하다는 걸 조만간 보여주어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이다.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 장군이 된 고선지가 서역을 정벌할 때의 일이다. 서역은 지금의 중앙아시아인데, 당시 당나라에서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티벳이 있는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했다. 한니발과 나폴레옹이 넘었다는 알프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산길이었다. 당연히 온갖 불만이 새어나왔다. 고산병과 부상 등으로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자, 가야 할 곳은 먼데 불만이 차 오르는 이럴 때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적군이 출현했다. 병사들은 후퇴할 수 없었기에 죽기 살기로 싸워 이길 수 있었다. 이상한 건 그 다음이었다. 공격을 받았는데 사기가 올라갔다. 싸워 보니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산맥을 넘어 당나라 영토를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역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패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받았던 공격은 적군의 공격이 아니었다. 고선지 장군이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일부러 의도한 것이었다.

탁월한 리더들은 이렇듯 작은 승리를 통해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게 한다. 자신감이란 가지라고 해서 가져지지 않는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 더구나 이런 승리가 이어지면 리더가 가자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간다. 빨리 갈수록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반대로 조직 개혁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할 때는 한번에 바로 들여 오기보다 민감도가 낮고,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불안감을 낮출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리더가 보여주어야 하는 또 다른 능력이 있다. 함께 하는 능력이다. 옛날 중국의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두려움 없이 적진으로 뛰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했다.

“장수는 추운 겨울철에도 혼자 털가죽 옷을 입지 않고, 무더운 여름철에도 혼자 부채를 잡지 않으며, 비가 내리더라도 혼자 우산을 펼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예의 바른 장수(禮將)라 합니다. 좁고 험한 길을 행군하거나 진흙탕을 거쳐 가야 할 때는 반드시 수레나 말에서 내려 함께 걸으며 병사들과 더불어 괴로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를 힘을 같이 하는 장수(力將)라 합니다. 군사들이 앉기 전에 먼저 앉지 말고, 군사들이 먹기 전에는 먹지 말 것이며, 추위와 더위를 군사들과 반드시 같이 해야 합니다. 이를 욕심을 절제하는 장수(止欲將)라 합니다.”(육도삼략)

누구나 본능적으로 누리고 싶은 걸 참고 함께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병사들은 장군이 자신들을 존중해주고 있으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여긴다. 쉽게 말해 하나가 된다.

구글 CEO가 1년 일정을 공개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리더는 조직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맨 앞에 서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한양의 궁궐이 불탔다. 누가 불을 질렀을까? 왜군이? 불은 한양의 백성들이 질렀다. 위기 해결에 앞장 서야 할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몰래 도망가자 분노한 백성들이 왕의 상징을 태워버렸다.

위기란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모두의 삶이 위험해지는 순간이다. 이럴 때 리더는 맨 앞에 서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조직이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솔선수범은 언제나 리더의 필수 조건이지만 이때만큼 중요한 때는 없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CEO들이 1년 일정을 전체 조직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건 그들의 리더가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이 시장의 불확실성과 만날 때 CEO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만나는 최전선에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리더를 믿는 마음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위기 상황인 데도 부하들에게 해결책을 찾아보라고 하는 리더는 그들을 맨 앞으로 세우고 그 뒤에 숨는 것이나 다름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자”가 아니라 “일단 해 봐”라고 하는 리더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이런 리더를 못 미더워 하는 건 자신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일에 부하의 등을 떠미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리더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 대체로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해버린다. 이런 리더는 오래 가지 못한다. 리더에게 위기가 생겼을 때, 리더가 그랬던 것처럼 구성원들도 그런 리더를 못 본 척한다. 외풍이 팀의 사기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데 모른 척하는 리더도 마찬가지다.

리더십이란 구성원들이 리더를 믿고, 리더 또한 구성원들을 믿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이 잘 되는 조직이 어디 있겠는가. 보여주는 능력이 중요한 건 이것들이 바로 믿음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구성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명령하고 지시한다고 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믿음직하다고 여길 때 생긴다. 리더와 구성원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면 조직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인다. 가장 좋은 동기유발 방법인 것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12호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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