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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로저스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 “북한은 몇 남지 않은 매력적 투자처” 

 

내년 말까지 남북 교류 본격화 기대… 전설적 투자가의 첫 한국어 출간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첫 한국어 출간본인 이 책에서 “늦어도 내년 말 남북 교류 본격화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이름을 날렸던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다. 특히 경제 관점에서 북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북한 통화를 사들인다면 언젠가 모두 부자가 될 것이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 움직임은 투자자들에게 굉장한 기회다.” 그가 수년간 공식 인터뷰에서 수차례 주장한 내용들이다. 심지어 “통일된 한반도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지난 7월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휴전선에서 무장 병력이 철수하고 있는 등 남북한 국경은 이미 개방되기 시작했다”며 “내년 말이면 남북 간 교류가 본격화할 것”으로 낙관했다.

근거가 뭘까. 낙관할 만하다면, 앞으로 북한엔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이 책은 명투자가의 심중을 일부 확인하면서 가까운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신간이다. 그가 낸 첫 한국어 출간본이기도 하다. 언론인 출신의 백우진 번역가가 공저자로서 가독성 있게 담아냈다. 책에서 로저스는 대중이 궁금해 하는, 그가 ‘대북 투자론’을 계속 설파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2007년과 2014년 직접 북한을 방문했던 일, 그 내부에서 시장경제 체제로의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확인한 일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특히 2011년 말 김정일이 사망하고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과거 물밑에서 흐르던 체제 전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2014년 북한 재방문에서 영감


▎짐 로저스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 / 짐 로저스, 백우진 지음 / 비즈니스북스, 287쪽 / 가격 1만7000원
함경북도 나진-선봉을 시작으로 13개 자유무역지구에서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으로 상거래가 진행됐다. 투자 규모는 제한적이고 거래량은 적었지만 로저스는 여기에 주목했다. 비공식적 이야기도 들려왔다. 2014년 북한 재방문 때 그는 확신했다. ‘7년 전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역동적인 기운이 넘쳐흘렀다.’ 경제특구에 대한 외자 유치를 적극 꾀하고 있었고, 여행객은 자전거 투어나 영화 투어도 할 수 있었다. 마주친 북한 주민의 20%가량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 중이었다. 과거 폐쇄적이던 북한 관리들도 태도가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북한은 문을 열 준비가 됐다. 동시에 전 세계에 남은 몇 안 되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지리적 이점을 지닌 나진항 같은 곳은 아시아 최대 항구인 싱가포르의 뒤를 이을 만한 잠재력을 갖췄다. 이곳을 통하면 아시아 생산품을 열차에 실어 독일 베를린으로 지금보다 2주나 앞당겨 보낼 수 있다. 결국 빠른 투자로 선점 효과를 거두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진행 중이다. 북한의 금과 은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북한의 금·은화는 본연의 가치 외에 희소성도 지녔다. 지금 사야 가장 싸다. 만일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북한의 금·은화는 세계 곳곳의 수집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된다.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이다. 잘 알려진 철도와 천연자원도 매력적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투자 중이다. 제재가 풀리고 교류가 활성화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로저스와 공저자는 북한 달러화 시장의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진단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달러를 좋아하는데, 경제 개발이 미흡하고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데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로 자국 화폐를 더 불신하게 돼서다. 전문가들이 북한을 ‘달러화 경제(총통화에서 달러화 등 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넘는 경제)’로 분류하는 이유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북한 내 달러화 등 외화 비중이 6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올해 2월 기준). 이에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가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 속칭 ‘돈주(돈의 주인을 뜻하는 북한 신조어)’라고 하는, 달러를 많이 보유한 계층도 부각돼 예의 주시하게 만든다.

로저스는 늦어도 내년 말 남북 교류 본격화를 예상하는 이유도 책에서 전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DMZ)의 일부 관측 초소 시범 철수와 지뢰 제거가 시작됐고, 우호적인 외교 환경이 꾸준히 조성되고 있다. 다만 그는 남북한 정부가 경제 개발을 위해 정부 주도로 협력을 추구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전제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투자자들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것 외에 직접 개입은 좋지 않아서다. 종전 선언 후 민간 주도로 경제 교류를 본격화하면서 북한 내 인프라 건설 등에 매진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 이전엔 남북한 모두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으로선 각종 규제와 행정법 완화 및 개선, 외부 자본의 적극 활용이 필요하다.

개성공단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공저자는 “중국이나 한국보다 생산 효율과 품질이 우수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화장품 용기 생산 업체인 태성산업이 한 예다. 태성산업은 중국 칭다오에 신규 공장을 짓기로 추진하다가 2005년 개성공단에 제2공장을 짓고 가동했다. 2006년부터 이익이 꾸준히 났다. 2005년 483명이던 고용 인원이 2014년 873명으로 늘어났다. 2014년 공저자와 대화한 오성창 전 태성하타(태성산업과 일본 기업 하타가 합작으로 설립한 개성공단 제2공장 법인) 법인장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10년 가까이 같은 작업을 하다 보니 숙련공이 된 데 비해 남쪽 노동자는 대부분 외국인으로 이직이 잦아 생산성이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입주기업의 92%는 개성공단이 해외는 물론 국내 공단보다 경쟁력이 매우 높거나 다소 높다고 응답했다. 현재 개성공단은 폐쇄된 상태이지만,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 확인했던 중요한 경험이므로 미래에 잘 살려야 한다고 분석한다.

북한 ‘장마당’과 개성공단 경험에 주목

이 외에 이 책은 북한에서 90년대부터 생겨난 ‘장마당’에 왜 주목해야 하는지,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것인지 등을 짚었다. 장마당은 허가를 받지 않은 비공식 시장인데, 북한 정부의 배급 시스템이 무너지자 북한 사람들은 자생적으로 이런 시장을 만들어냈다. 2003년 종합시장으로 합법화하면서 지역 특성에 따라 전문화하고 있다. 이미 국영 매장에선 휴대전화 등 고급 소비재가 거래될 정도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400여 곳의 종합시장이 존재하는데 상인만 최소 110만 명이다. 또 전체 인구 2500만 명 중에 18%가량은 이 종합시장에 생계를 직접 의지한다. 북한 경제의 핏줄인 셈이다. 북핵 문제는 좀 까다롭다. 장기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로저스의 분석이다. 주한 미군이 변수인 가운데 노련한 협상 전문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의 ‘빅딜’이 중요해졌다.

1942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로저스는 예일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배일리얼컬리지에서 역사학·철학·정치학·경제학을 두루 공부했다. 어린 시절 땅콩을 팔고 야구장에서 빈병을 모아 돈을 번 일화로 유명하다. 나이 스물둘에 미국 금융계의 심장 월스트리트에 진입해 1969년 소로스와 함께 헤지펀드 투자 회사 퀀텀펀드를 설립했다. 퀀텀펀드는 10년간 4200%의 전무후무한 수익률을 기록해 월가가 발칵 뒤집혔다. 1979년 월가에서 떠난 그는 후학 양성과 두 차례의 세계 일주로 견문을 쌓은 뒤 명사로서 독자적 투자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512호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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