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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없는 성장, 성장 없는 고용 

 

‘고용 없는 성장’은 부의 편재를 초래해 중장기 사회 수용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보다 더 무서운 ‘성장 없는 고용’은 성장잠재력을 급격히 훼손시키며 나라살림을 빚더미에 앉게 할 위험이 크다. 그리스의 경험처럼 성장 없는 고용이 이어지다보면 국민경제는 어느덧 무기력 증상에 빠질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성장과 고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면 성장잠재력이 잠식됨에 따라 급기야는 고용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기능을 통한 성장과 고용의 균형, 더 나아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지속성장과 고용 안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한국 경제는 한때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을 겪으면서 빈부격차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가속화되면서 더 적은 인력으로도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공급 과잉 현상에 따른 ‘영광 속의 상처’다. 여기에 더해 자본축적으로 돈이 돈을 버는 환경까지 조성돼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생각건대, 어느 정도의 고용 없는 성장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피하기 어려운 필요악이다. 특히 대내외 경쟁이 심화된 4차 산업혁명기에는 더 심해질 게다.

최근에는 부가가치 창출 없는 ‘유사고용(imitation employment)’이 늘어나는 ‘성장 없는 고용’ 시대가 진행되며 성장잠재력이 깎이고 있다.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아니고, 재정 투입으로 만든 수많은 임시 노인 일자리가 고용시장 착시현상을 빚고 있다. 예컨대 10월 통계청 고용동향을 보면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지표는 크게 향상돼 23년 만에 최고인 61.7%로 호전(?)된 반면 경제 허리 기능을 하는 30~40대 일자리는 21개월째 감소하는 ‘상처뿐인 영광’이 나타나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상반되지 않고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어떤 때는 성장에 방점을 찍다가 때로는 분배만을 강조하다 보면 ‘고용 없는 성장’과 ‘성장 없는 고용’이 교차되며 불확실성이 증폭된다. 경제순환 과정에서 성장에 따른 공급능력과 분배에 따른 유효수요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아서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쪽까지 비틀거리게 마련이다. 총생산을 늘리는 성장은 경제활동의 중간목표이며, 총효용을 크게 하는 분배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서 경제생활의 최종목표가 된다. 최종목표와 중간목표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나눌 것을 먼저 만들어내야 나눌 수 있고, 만든 것을 나누어야만 소비수요가 창출돼 생산도 다시 늘어가는 인과관계, 상관관계다.

성장과 고용 편향은 대부분 1차 분배와 2차 분배를 혼동하면서 비롯된다. 1차 분배는 토지·노동·자본 같은 생산 요소들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이다. 1차 분배가 경쟁시장에서 외부 개입 없이 이행될 때 효율적 자원배분과 함께 성장동력을 북돋아 시장경제의 축복을 이끈다. 생산성, 즉 능력에 따라 대가가 지불되므로 소득불균등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데, 합리적 불균등이 오히려 경제적 동기를 유발해 생산능력을 확충한다. 생산능력을 증대시키는 길이 경제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지름길이다.

2차 분배는 조세, 사회보장기구, 자선단체 등에 의한 보정적 분배다. 그 경제적 순기능은 ▶소비수요 안정을 통해 재생산이 촉진될 수 있고 ▶빈곤선(poverty line)을 완화해 사회 갈등을 해소해 사회 수용능력을 크게 하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에서 ‘자칫하면 누구나 경제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기능을 하고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할 경우의 불안심리를 줄여 과잉경쟁, 부당경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사이비 성장론자들은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시장을 억누르거나 끌어당기는 것이 마치 성장을 위한 일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금리와 환율, 임금 등의 생산요소를 보다 싼 값으로 공급할 경우 생산단가가 줄어드는 등 일시적으로 반짝 효과는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왜곡되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나고 기술 개발을 등한히해서 성장잠재력을 저해한다. 어설픈 분배론자들은 생산성을 초과하는 고임금을 ‘분배 정의’인 것처럼 착각하고 무턱대고 임금을 인상하라고 억지를 부린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상당수 새싹기업은 빛을 보기 어렵고 한계기업들은 퇴출당했는지 모른다.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분배하다 보면 계속기업으로서 가치가 불투명해져 일자리가 더 없어지는 현실을 직시하자. 성장위주 정책이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해치고 분배위주 투쟁이 오히려 분배를 해칠 수 있다. 경제적 후생, 즉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수치로 나타낼 수 없지만 성장은 통계적 수치로 나타낼 수 있어서 전시효과를 중시하다 보면, 분배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성장 수치에 매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1차 분배의 결과 소득과 소유 격차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못할 경우에는 조세, 기부금 같은 2차 분배, 즉 보정분배(corrective distribution)를 통한 꾸준한 교정 노력이 필요하다. 빈부격차 확대로 발생하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완화시켜 경제순환을 순조롭게 해야 지속적 성장과 발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잉) 사회안전망은 공짜 심리를 유발해 가난에서 벗어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어, 삶의 근거를 뿌리째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이 그저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미국 일부 도시빈민들의 모습을 ‘근거 상실(losing ground)’로 표현하기도 한다. 재정적자를 동반하는 모조 일자리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면 결국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위험까지 도사린다. 특히 재정적자는 적자를 초래한 인사들이 책임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표면화되기 전에는 심각성을 외면하려 든다.

현실에서는 시장기능이 발달해 1차 분배가 합리적으로 잘되는 나라일수록 2차 분배도 활발한 모습이 뚜렷하다. 예컨대 상속세 폐지 반대에 앞장서고 재산의 90%를 기부한 워런 버핏을 비롯한 북미와 서유럽의 일부 부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빈부격차가 극심한 남미 국가들의 경우 기부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사람들은 사회 전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배려를 가지지만,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거저 돈을 번 사람들일수록 더 인색한 천민자본주의 행태가 생성된다.

시장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게 하는 1차 분배시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1차 분배시장이 공정해야 근로의욕과 기업가정신을 배양시키고 결과적으로 생산이 늘어나 2차 분배 또한 활발해진다. 1차 분배시장이 왜곡되는 사회에서 정의를 논의하는 것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1513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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