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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호랑이 등에 올라탄 베트남] 성장 기대 크지만 중국 의존도 너무 높아 

 

중국 대체하는 생산거점으로 매력 넘쳐… 베트남 동화,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좌우

한국 자본이 베트남으로 몰려가고 있다. 2018년까지 베트남에 누적으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를 국적별로 분류하면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단연 1위이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을 대체하는 글로벌 생산거점으로서 베트남의 매력에 주목했다. 또 베트남(1억 명)을 포함해 5억 인구의 아세안 회원국 간 관세면제 협정에 올라타기 위한 전초기지로 베트남에 진출하거나 투자를 늘렸다. 베트남이 발빠르게 체결한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도 생산기지로서 베트남의 매력을 더했다.

베트남의 외국인직접투자 한국이 1위


베트남은 한국과 역사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중국의 인접국으로서 중화 문명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중국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듯, 베트남도 중국의 역대 왕조로부터 고초를 겪으며 장장 1000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베트남도 남북 분단을 겪었고, 남과 북이 벌인 전쟁에 미국이 참전했으며 이 전쟁에서 중국의 존재가 미국에게 좌절을 안겼다. 한국이 신흥 공업국으로서 먼저 발을 뗐지만, 베트남이 후발 신흥 공업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휘둘릴 수 있는 입장도 우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중국의 부상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자, 이를 볼모로 역내 지배력 강화를 꾀하는 중국으로부터 순응할 것을 강요받을 것이다. 2014년 중국과 베트남 간 해양 영토권 분쟁 때 통상보복으로 번졌고 이를 극복한 전례가 있긴 하나, 점점 더 높아지는 대(對) 중국 경제 의존도 탓에 베트남의 운신의 폭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트럼프 정부로부터 방위비 증액,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 배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등의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과는 다르지만 베트남도 무역 측면에서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베트남 통화인 동화 가치의 약세가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으로의 베트남 수출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지난 5월 미국의 환율관찰대상국 리스트에 올랐다. 미국은 한국보다 베트남에서 더 큰 폭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했던 시대가 저물자 베트남은 이 틈을 파고 들었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접점에 자리해 중국·아세안, 인도차이나 반도를 잇는 교두보라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자유무역협정을 적극적으로 체결하며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 경쟁국 대비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비가 매력을 더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거점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동하는 배경이다. 2018년 중반에 본격화된 미중 무역분쟁은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중국에서 직접 미국으로 수출 때 부과되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을 최종 선적지로 하는 글로벌 가치사슬이 만들어졌다.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지만, 최대 무역상대방은 중국이다. 2018년 기준 수출과 수입을 합산한 무역액 기준으로 대 중국 비중이 25%나 된다. 2위와 3위 무역상대국인 한국과 미국의 무역액을 합해야 중국 한곳과 비슷해진다. 베트남의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는 빠르게 증가했고, 주로 중국에서 중간재나 부품 등을 수입해 베트남에서 최종 가공한 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구조가 전형적이다. 이렇게 중국 경제에 의존한 성장은 무역의 이익을 향유하는 이점이 있으나, 중국에 경제를 인질로 잡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한국이 겪은 사드(THAAD) 후폭풍을 언젠가 베트남도 경험할지 모른다.

높은 중국 경제 의존도 영향은 베트남 동화 환율로도 이어진다. 베트남 동화는 최대 교역상대방인 중국의 위안화 환율 움직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 국가 통화의 가치는 무역의존도가 높을수록 최대 무역상대방 통화가치의 움직임에 밀접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수출 중심 경제인 한국보다 베트남은 무역의존도가 훨씬 높다. 수출의존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나든다. 따라서 베트남의 동화도 한국의 원화와 마찬가지로 위안화의 영향권에 있다.

관리변동환율제의 베트남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한 한국과 달리, 베트남과 같이 신흥 공업국으로서 자본시장이 아직 충분히 선진화되지 않은 국가들은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이 그렇고 중국도 아직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매일 기준환율을 고시하고,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은 일정 범위 내에서만 거래되도록 관리하는 방식이다. 중앙은행이 매일 고시하는 기준환율을 기준으로 베트남은 ±3% 이내, 중국은 ±2% 이내에서 거래된다.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관리 하에 있는 통화의 환율은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원화처럼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한 통화를 상대로 한 환율에서 일정한 특징이 생긴다. 바로 해당 통화(베트남 동화, 위안화 등)보다는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좌우되는 경향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 외환시장은 달러화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는 국가들도 그 기준은 달러화가 되고, 달러화에 대한 해당 통화의 환율을 관리한다. 중국은 이제 자본시장의 선진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2015년 말 이후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무역상대국 통화들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중국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원화에 대한 베트남 동화 환율 움직임은 원·달러 환율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최근 홍콩사태로 금융시장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홍콩달러 환율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홍콩의 금융시장은 선진화되어 있지만, 홍콩달러는 명목상 관리변동환율제이고, 사실상 고정환율제나 마찬가지다. 1달러당 홍콩달러는 7.8을 기준으로 ±0.05이내에서 관리된다. 즉, 미국 달러는 7.75~7.85 홍콩달러 수준에서 환율이 형성된다. 따라서 원화에 대한 홍콩달러의 환율도 원·달러 환율에 좌우되는 특징이 강하다.

또 한가지, 베트남처럼 자본시장이 선진화되지 않은 국가들은 한국에 비해 자본유출입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작다. 따라서 자본유출입보다 무역수지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수출·수입이 환율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물론 관리변동환율제이기 때문에 외환당국의 영향력도 크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이코노미스트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13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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