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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에 맥 못추는 벤츠 전기차] 1억 넘는 EQC 겨울철 1회 충전에 171km 주행? 

 

벤츠 “난방 성능 높아서 불리”… 히터 설정값 동일한 BMW·재규어는 문제 없어

▎마크 레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제품&마케팅 부문 부사장이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메르세데스-벤츠 ‘EQ-Future’ 전시관에서 열린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EQC 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메르세데스 벤츠의 첫 전기차 EQC는 국내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국내 수입차 시장 1위인 벤츠가 고급 전기차 시장까지 잠식할 것으로 보였지만 보조금 수령 문턱을 넘기도 전에 제동이 걸렸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EQC의 보조금 신청을 고민했지만 결국 (신청하지) 않기로 최근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벤츠 EQC는 보조금을 안 받는 게 아니라 사실상 못 받는다. EQC의 저온(영하 7도) 주행거리가 상온(영상 20~30도)의 60%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조금 지급 대상에 들지 못한다는 얘기다. 2017년 개정돼 올해 8월 시행된 전기차 보조금 규정에 따르면 영하 7도에서 진행되는 저온 주행테스트에서 상온 대비 60% 이상의 주행거리를 인증 받아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전기차의 겨울철 주행거리가 과도히 줄어드는 것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이 커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전기차는 통상 겨울이 되면 차량의 배터리 사용이 늘어나며 평소보다 주행거리가 20~30%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을 사용해 난방을 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엔진이 없어 전기온풍기 등 별도의 난방장치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배터리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면 효율이 떨어지고 충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배터리 히팅’이 필요하다. 여기에도 전기가 꽤 소모된다.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비율 60% 밑돌아


교통환경연구소에 따르면 벤츠의 EQC400 4MATIC은 저온일 때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171㎞로 상온 309㎞의 55.3%에 불과했다. 주행거리 인증을 받은 후 국내에 시판된 전기차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차값이 1억원이 넘는 고가인 데도 겨울철 주행가능거리가 보조금 지급 기준에도 미달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출시돼 보조금을 받는 차는 대부분 저온에서도 60% 이상의 주행거리를 유지한다. 환경부 등록 자료에 따르면 차량 트림별로 현대차 코나는 74~76%, 니로는 78~90%의 주행거리를 유지한다. 테슬라는 모델S가 82~89%, 모델3는 60~61%를 인증 받았다. 재규어 I페이스도 68% 수준이다. 심지어 EQC의 상온 주행가능거리(309km)도 비슷한 가격대의 경쟁 모델보다 낮은 편이다. 테슬라 모델S는 480~487km, 모델X는 421~438km, 재규어 I 페이스는 333km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벤츠라도 비싼 돈 들여가며 주행거리가 짧은 차를 살 고객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상온 대비 저온 주행가능거리 비율이 60%를 밑도는 차량이 벤츠 EQC만 있는 것은 아니다. 르노삼성 SM3 Z.E는 57.9%, BMW i3 94Ah는 58.8%에 그쳤다. 다만 두 차량은 보조금을 받는다. 환경부 대기환경과 관계자는 “개정 시행령은 8월 1일부터 시행됐는데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 때문에 두 차량은 보조금 지급 대상”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보조금을 받지 않는 전기차가 EQC뿐인 것도 아니다. 예컨대 테슬라의 모델X도 대상이 아니다. 다만 테슬라는 보조금 자격을 충족했는데도 지급 신청을 하지 않았다. 테슬라 ‘모델X 퍼포먼스’의 경우 국내에서 상온 주행거리 421km, 저온 340.7km를 인증 받아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비율이 81%에 이른다. 이 차량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시간이 2.1초에 불과하다. 고성능 모델이 저온 측정에서 불리하다고 세간의 속설을 뒤집은 것이다.

한국의 전기차 소비자들은 주행거리를 중시한다. SK엔카 닷컴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EV포스트’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 4023명 중 49.5%가 전기차를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배터리 완충 주행가능거리’를 꼽았다. 차량을 구입할 때 가격도 당연히 주요 결정 요인인데, EQC는 이 대목에서도 흠집이 났다. EQC의 국내 판매 가격은 옵션에 따라 다른데 1억500만원부터다. 미국에서는 가장 싼 프로그레시브 트림이 6만7900달러(약 8102만원), 어드밴스 7만6620달러이고 최대 7만9875달러(약 9530만원)다. 독일에서는 부가가치세 포함 7만1281유로(약 9436만원)부터다. 국내 판매가격이 유럽·미국보다 비싼 가운데 전기차 보조금(최대 1900만원)마저 못 받는 것이다.

배터리운용시스템이나 설계 최적화 문제 가능성

EQC의 저온 주행가능거리가 급감하는 주요 원인은 ‘난방’ 때문이라는 게 벤츠 코리아 측의 설명이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온도와 공조 단계를 최대로 올리고 주행거리를 테스트하는데, 극한의 추위에서도 난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EQC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히터를 최대치로 가동하고 측정하는 저온 주행거리 평가방식은 히터 성능이 뛰어난 차에 오히려 불리하다”며 “저온 주행가능거리가 떨어진다고 기술력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 등 국내 브랜드는 전기차의 히터 최대값을 27도로 설계했다. 이와 달리 벤츠 EQC는 내연기관 차량과 마찬가지로 32도다.

다만 BMW와 재규어 등의 브랜드에서도 전기차 히터값을 32도로 설계한다. EQC가 BMW와 재규어의 전기차보다 저온 주행가능거리가 더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게 난방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조재필 UNIST 2차전지센터장(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은 “상온 대비 저온에서 효율이 50% 가까이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배터리운용시스템(BMS)이나 자동차 설계 과정에서 최적화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세계적으로 배터리 셀 기술력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배터리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EQC에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이 배터리 셀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츠의 경우 도이치 어큐모티브라는 자회사에서 배터리 패키징을 하고 배터리운용시스템(BMS)을 다룬다. 이 대목에서 기술력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다.

벤츠 측이 한국 정부의 저온 주행가능거리 규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정황도 있다. 벤츠 코리아 측은 EQC 출시를 알릴 당시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기대했다. 마크 레인 벤츠 코리아 제품 및 마케팅 총괄 부사장은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EQ Future’ 전시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EQC 출시를 알리면서 “구매 보조금 부분 관련 테스트 단계에 들어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EQC의 주행거리 인증은 이미 8월에 완료됐고, 이 무렵에는 보조금을 받기 어렵다는 결론을 받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11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EQC를 시장에 내놨다. 전기차 충전서비스 업체 차지인의 최영석 대표(선문대 스마트자동차공학부 겸임교수)는 “벤츠가 EQC를 들여오기 전에 한국 전기차 시장에 대한 기출문제를 들여다 보지 않고 바로 시험을 본 격”이라고 지적했다.

저온 주행가능거리 평가 기준 더욱 까다로워져

EQC와 같은 이유로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전기차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저온 주행가능거리 평가 기준이 더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1회 충전 주행거리 200~300km 차종에 대해 상온 주행 대비 65%의 저온 주행가능거리를 요구하고, 2021년부터는 주행거리 300km 이상인 전기차도 65%를 충족해야 한다.

때문에 업체별로 강화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한창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배터리나 인버터에서 적게나마 발생하는 폐열을 난방에 공급하는 ‘히트펌프’ 등을 옵션으로 제공한다. 기아차 니로EV에 히트펌프를 탑재한 모델은 상온에서 385km, 저온에서 348.5km의 주행가능거리를 인증 받아 저온에서도 상온 대비 90%의 효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히트펌프 방식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히트펌프의 난방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존재할 수 있고, 벤츠 EQC의 경우 히트펌프로 난방을 보조하도록 했는 데도 저온에서 효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결국 유럽 업체들도 최대 난방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내년부터 전기차 충전료 오른다는데 - 특례할인 일몰되면 충전료 두 배로

내년부터 전기차 충전료가 오를 예정이어서 전기차의 효율을 뜻하는 ‘전비’의 중요성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기차 충전용 전기는 특례 요금이 적용돼 다른 전기보다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는데, 2017년 도입된 이 제도가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한국전력이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제도를 연장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환경부가 운영 중인 전기차 급속 충전기의 충전 요금은 1kWh당 173.8원이다. 특례 할인이 적용되지 않았던 2016년에는 1kWh 당 충전요금이 313.1원이었다. 별도의 전기료 인상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특례할인이 끝나면 현재의 1.5~2배로 오르게 된다.

환경부의 계산에 따르면 현대차 아이오닉을 기준으로 연간 1만3724km를 주행했을 때 드는 연료비는 특례할인을 적용했을 때 38만원이며, 특례할인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68만원이다. 특례할인이 끝난다고 해도 기존의 내연기관차(아반떼 기준 가솔린 157만원, 디젤 100만원)보다는 여전히 저렴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특히 아이오닉은 현재 국내 보조금 대상 전기차 중 가장 높은 전비(6.3km/kWh)를 인증 받은 차다. 자동차의 전비가 나쁘다면 충전료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그간 전기차 사용자들은 충전료 할인으로 연료비 부담이 사실상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전비가 좋지 않더라도 배터리 용량이 큰 차, 즉 ‘1회 충전 최대 주행거리’가 긴 차를 선호했다”며 “특례 할인이 끝나게 되면 특히 저가형 모델에서는 전비가 구매에 앞서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14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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