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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양상 보인 ‘OPEC+’] 사우디·러시아, 석유 감산 합의는 했지만 ‘동상이몽’ 

 

사우디, 장기간 감산하며 유가 상승 노려… 러시아 국가 재정 악화로 당장 급전 필요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 14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가 12월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열고 내년에 하루 50만 배럴을 추가로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 사진:연합뉴스리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중심의 비OPEC 산유국 모임인 OPEC+가 12월 5~6일(현지시간) 열린 총회에서 추가 감산에 합의했다. OPEC+는 현재 하루 120만 배럴 감산 합의를 준수하고 있는데, 적용 기한은 내년 3월까지이다. 이번 합의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되므로 이후부터 OPEC+ 감산 규모는 하루 170만 배럴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2020년 세계 수요 예상치의 약 1.7%에 상응하는 수준이다. ‘OPEC+’로 표기하는 OPEC 플러스 연합체는 알제리·앙골라·에콰도르·적도기니·가봉·이란·이라크·쿠웨이트·리비아·나이지리아·콩고공화국·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베네수엘라 등 14개 OPEC 회원국과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비회원국 산유국의 협력체다. OPEC은 세계 원유 생산량의 42%와 매장량의 73%를 차지하고 있어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요 석유 생산국인 러시아까지 힘을 합쳐 석유 카르텔을 형성하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OPEC+ 연합체 관련국들은 석유 감산으로 국제유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로 힘을 합쳐왔다.

OPEC과 러시아는 하루 산유량을 지난해 10월 수준에서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는 방안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지난 9월 12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OPEC+ 석유장관 회의를 할 때 이를 확인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석유장관과 러시아의 알렉산데르 노바크 석유장관이 별도로 만나 OPEC+가 주도하는 원유 감산에 모든 관련 국가가 호응해줄 것을 호소했을 정도였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석유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형이다.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 전체가 2020년 6월까지 감산 조치를 연장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여기에 이견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동상이몽이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지분 5%를 국내외 증시에 상장해 1000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석유 감산으로 유가 유지


문제는 아람코의 가치 평가에서 발생했다. 정부는 애초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2조 달러로 예상했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1조7000억 달러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 리야드 주식시장(타다울)에 상장된 아람코 주식은 12월 13일 장중 한때 기업 가치가 2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으나 1조9000억 달러에 머물고 있다. 아람코의 저평가에는 저유가가 큰 요인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람코 상장으로 예상한 만큼의 자금을 확보하려면 유가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는 계속 저유가를 유지하고 있어 사우디로선 유가 상승이 절박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람코 상장을 여러 차례 미루다가 일단 12월에 국내의 타다울 증시에 지분 1.5%를 우선 상장했다. 아람코를 사우디 국내 증시에 상장해서 주가를 어느 정도 띄운 뒤에 이를 해외 증시에도 상장한다는 복안이다.

아람코의 상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국가개조 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는데 필수적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를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사막지대에 초대형 주거 및 비즈니스용 친환경 신도시인 네옴을 건설할 예정이다. 네옴은 2만6500㎢의 엄청난 면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의 이집트·요르단 접경 지역과 홍해에 걸쳐 건설될 계획이다. 아람코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과 국내외에서 받은 투자를 바탕으로 네움을 개발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사회 개혁 조치인 ‘비전 2030’도 강력하게 추진할 예정이다. 그야말로 ‘로열 프로젝트’다. 무함마드 빈 살만가 국왕이 될 경우 사우드 왕가에서 첫 3세대 군주가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초대 국왕인 압둘아지즈에 이어 그의 아들들이 형제 상속을 계속하며 왕위를 계승해왔다. 3세대 군주의 안정적인 등극을 위해서 이런 국가 프로젝트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러시아가 추가 감산에 소극적이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속을 끓게 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단 이번 회의에서 감산 연장안에 찬성했지만 OPEC+의 합의 틀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석유수요 증가를 이끌던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더뎌졌다는 사실이다. 중국 국가통계국(NBS)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05년 11.4%로 경제성장률의 정점을 찍었으며 2010년에는 10.6%를 기록했다. 성장률의 상승세가 주춤했으나 그래도 10%대는 지켰다. 하지만 성장의 불꽃은 그리 오래 타지 못했다. 2011년부터는 성장률이 두 자리로 떨어졌다. 2011년엔 9.5%를 기록하면서 그나마 선방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2년에는 7.9%로 뚝 떨어졌으며 2013년 7.8%, 2014년 7.3%로 7% 성장을 기록했다. 중국 경제가 매년 10%씩 성장하던 고성장 시대도, 석유 소비도 그렇게 증가하던 석유 호황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만큼 석유 수요 성장도 주춤해지게 마련이다. 중국은 자국산 원유 생산의 감소와 전략적 비축물량의 증가로 원유 수입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소비 증가세가 주춤할 수밖에 없다.

미국 원유 생산 늘려


게다가 같은 시기 미국의 원유 생산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기술발달과 비용 감소로 셰일 원유 생산이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너지관리청(EIA)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2016년 890만 배럴 수준에서 2017년 940만 배럴, 2018년 1090만 배럴로 증가했다. 2019년 들어서는 일일 12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한다. 미국에 원유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다국적 에너지 업체 에니(Eni)가 2018년 6월에 펴낸 ‘세계 석유 리뷰 2018’에 따르면 2018년 일일 원유 생산량은 미국(1319만 배럴, 세계 14.2%), 사우디아라비아(1196만 배럴, 12.9%), 러시아(1135만 배럴, 12.3%) 순이다. 이 세 나라가 세계 원유 공급을 주도한다. 그 뒤로 캐나다(481만 배럴, 5.2%), 이란(470만 배럴, 5.1%), 이라크(456만 배럴, 4.9%), 중국(387만 배럴, 4.2%), 아랍에미리트(UAE, 377만 배럴, 4.1%), 쿠웨이트(301만 배럴, 3.3%), 브라질(273만 배럴, 3.0%)이 따르고 있다. 미국은 확고부동한 세계1위의 원유 생산국이다. 올해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정책을 주도하면서 일일 원유 생산량이 970만 배럴로 줄었다.

2017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확인 매장량은 베네수엘라(3028억 배럴, 세계 18.0%), 사우디아라비아(2662억 배럴, 15.8%), 캐나다(1979억 배럴, 11.8%), 이란(1556억 배럴, 9.3%), 이라크(1472억 배럴, 8.8%), 쿠웨이트(1015억 배럴, 6.0%), 아랍에미리트(UAE, 978억 배럴, 5.8%), 러시아(800억 배럴, 4.8%), 리비아(483억 배럴, 2.9%), 나이지리아(374억 배럴, 2.3%) 순이다. 미국은 더는 중동을 비롯한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서 석유를 수입해올 필요가 없어진 것은 물론 오히려 자국산 원유의 수출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미국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2016년 원유 수출을 허용했다. 수출량은 꾸준히 늘어 일일 생산량의 3분의 1 수준인 일일 360만 배럴 이상을 기록한다. 미국산 석유는 이웃 캐나다는 물론 중국·한국·영국·이탈리아·인도·네덜란드·대만·싱가포르·태국 등으로 수출된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함께 세계석유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주요 산유국이자 석유 수출국이 됐다.

OPEC 미래 밝지만은 않아


▎러시아의 한 유전. / 사진:© gettyimagesbank
이런 상황에서 유가는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는 중동산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2018년 11월부터 지난 9월까지 배럴당 70.9달러(2018년 4월)에서 59.1달러(2019년 8월) 사이를 오가고 있다. 같은 기간 영국 북해산 브랜트유도 배럴당 57.2달러(2018년 12월)에서 71.6달러(2019년 4월) 사이를 유지해왔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경질유도 49달러(2018년 12월)에서 63.9달러(2019년 4월) 사이를 오락가락해왔다. OPEC으로서는 감산으로 유가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고 보유 자원도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OPEC는 물론 비회원국인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까지 손을 잡고 OPEC+차원의 감산에 나선 이유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몸이 달았다. 석유를 내세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도 문제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실적 쌓기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 유가 상승이 필요하다. 감산 연장은 사실상 ‘왕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원유 생산 감소로 저유가가 계속될 경우 국가 재정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국내에선 연금 개혁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원유를 더 많이 내다 팔아 나라 곳간을 채워야 하는 처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지난해 일일 원유 생산량은 1196만 배럴과 1135만 배럴로 비슷하지만 인구는 3341만 명과 3341만 명으로 차이가 크다. 미국 에너지관리청에 따르면 인구 100만 명당 일일 원유 생산은 사우디아라비아가 32만4866배럴인 반면 러시아는 7만3292배럴이다. 사우디아라비아로선 느긋하게 장기간 감산하며 유가 상승을 노릴 수 있지만 러시아는 시간은 많지 않고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더 이상의 감산이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저유가가 오래 지속되면 자국의 경제력 부족으로 국제사회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도 가질 수가 있다. 러시아의 GDP는 명목금액 기준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로 1조6378억9200만 달러로 세계11위다. 1조6295억3200만 달러인 한국보다 약간 앞섰을 뿐이다. 그것도 2015~2017년 한국에 밀려 12위였다가 2018년 간신히 11위로 올라섰다. 러시아가 미국에 맞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석유는 러시아에 힘을 공급하는 자양분이며, 저유가는 러시아에 빈혈을 유발한다. 러시아는 저유가를 미국의 음모라고 여러 차례 주장해오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이견은 유가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OPEC이나 OPEC+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유가 카르텔 자체가 ‘죄수의 딜레마’와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약속을 지키면 이익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약속을 깨면 나만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이에 따라 먼저 배신한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각국이 지향하는 방향과 내부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OPEC+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은 이유는 참으로 많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14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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