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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vs 재무적투자자 갈등 어디까지] 노조에서 임원 2명 고발… 꼬이고 또 꼬여 

 

“어피너티·안진과 짜고 신창재 속여” 주장… 풋옵션 행사가 두고 갈등 여전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60년 전통의 민족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처했다.” 교보생명 노동조합은 12월 5일 서울중앙지검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했다. 교보생명의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과 안진 회계법인이 미리 짜고 교보생명 풋옵션 행사가격을 부풀려 산정했다며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교보생명 노조는 풋옵션 가격 산정과 관련해 자사 임원 2명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FI와 짜고 풋옵션 행사가가 합리적으로 책정된 것으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속여 합의를 끌어냈고, 그 결과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풋옵션 행가가 부풀렸다” 수사 촉구


이처럼 교보생명은 노조까지 나서서 사측에 힘을 보탤 정도로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교보생명은 자산 기준으로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생명보험사다. 그럼에도 보험 업황 악화와 증시 부진 속에 FI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노조가 자사 임원까지 고발하는 이전투구가 벌어진 계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영 개선에 나서던 대우 인터내셔널은 보유 중이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시장에 내놨다. 신창재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이 내놓은 지분 비율이 워낙 커 자칫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우호적 FI를 끌어모았고,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어피너티가 컨소시엄을 구성에 지분을 인수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IMM PE·베어링 PE·SC PE·싱가포르 투자청 등 굵직한 투자자가 모였다. 2015년 말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으면 신 회장이 이 지분을 매입하는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교보생명은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상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국내 증시 부진과 보험업 경영환경 악화 등으로 상장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특히 국내 공모시장 규모가 작아 대어(大魚)인 교보생명의 흥행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하고 홍콩·싱가포르 등 해외 증시 상장도 염두에 둬왔다. 그러나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배당을 늘리는 등의 당근책을 써가며 시간을 벌었다. 이에 지친 FI들은 자칫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말 풋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 신 회장이 풋옵션 행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양측의 갈등이 불거졌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자신의 지분(특수관계인 포함 36.91%)과 FI 보유지분(29.34%)을 공동 매각하자고 제안했다. 금융시장에 양측의 지분을 함께 내놔 적대적 M&A를 차단하고, 자신의 지분 매각 이익으로 다시 FI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신 회장 측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 이행 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3월에 공동 매각안을 철회하고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이라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교보생명이 특수 목적법인을 세워 FI의 주식을 담보로 ABS를 발행하고, 이 법인이 ABS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담보로 잡힌 FI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다만 가격에 대한 견해차가 컸다. 신 회장 측은 매입가를 2012년 FI들이 교보생명 지분을 인수했을 때의 매입 원가인 24만5000원을 제시했다. 지난 7년 새 생명보험 업종의 성장성에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FI들이 안진 등 외부 평가기관을 통해 산정한 풋옵션 행사가인 40만9000원과는 차이가 컸다.

특히 FI들이 풋옵션을 행사한 순간 이미 신 회장과 FI 간에 주식매매계약(SPA)이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FI들이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을 담보로 ABS를 발행할 수 있느냐는 법적 논란도 있었다. 이에 FI들은 중재를 신청했고, 양측은 현재 중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보생명과 노조 측은 자사 임원 2명과 어피너티·안진회계법인이 공모해 풋옵션 행사가를 2배 이상 부풀려 책정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의 가치를 산정할 때는 주가순자산비율(PBR)로 따진다. 이에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의 PBR을 책정할 때 상장사인 삼성생명·한화생명·오렌지라이프 등 3사의 PBR과 비교했다.

현재 삼성생명의 PBR은 0.44배, 한화생명은 0.17배 수준이다. 교보생명 측은 ‘안진회계법인이 비교한 이들 3사의 PBR은 2017년부터 1년간을 기준으로 삼았고, 교보생명은 2018년 3분기 재무제표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해 2분기 만을 기준으로 작성했다’고 문제를 삼고 있다.

실제 2018년 하반기부터 보험사들의 실적과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비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2017~18년 상반기는 보험 업계의 경영 환경이 좋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에 채권 운용 수익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당시 보험사 주가가 올랐다.

2018년 초 삼성생명 주가는 역대 최고 수준인 13만7000원, 한화생명은 8000원, 오렌지라이프는 5만8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이들 세 회사의 주가는 현재 각각 7만5000원, 2300원, 2만9000원으로 주저앉았다.

교보생명으로서는 보험사들의 가치가 한창 높을 때 산정한 풋옵션 가격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저금리가 사실상 굳어졌고, 한국 사회의 심각한 노령화 등으로 보험 산업이 더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앞선다. 금융당국은 보험료율을 높이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언 발에오줌 누기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 회계기준 도입 두고 고민 커져


교보생명 FI들도 이런 보험업의 한계가 투자금 회수에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교보생명 주장대로 교보생명 임원들과 어피너티·안진회계법인이 사전에 공모한 정황이 드러나면 중재 소송이나 FI들의 협상에서 유리한 쪽으로 끌어갈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이들 임원은 물론 최종 결재권자인 신 회장도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이 배당을 늘리는 등 그간 FI들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지만, FI들의 자금 회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본금을 확충해야 하는 교보생명으로서는 FI들의 반발에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교보생명은 2022년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적용을 앞두고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입장이다. IFRS17를 도입하면 기존에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 부채를 매 결산기 시장금리 등을 반영한 시가로 평가해야 해서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이 하락한다. 이에 보험사들로서는 자본 변동성 확대 등 위험 요인을 반영해 자본금을 확충하는 등 지급 여력을 높여야 한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16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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