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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화로 재조명 받는 원자력 발전] 건설비 적게 들고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 높아 

 

2050년 소형 원전 시장 규모 400조원 전망… 한국 정부도 수출 지원 나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한국형 소형 원전 ‘스마트(SMART)’. /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폐기물 처리와 방사능 오염 문제로 외면받아온 원자력 발전에 ‘소형 모듈 원전(이하 소형 원전)’이 새로운 성장판으로 주목 받고 있다. 원자력 업계는 하나의 용기 안에 모든 장비를 통합한 소형 원전이 지진이나 쓰나미 발생에도 방사성 오염 물질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일체형으로 생산한 소형 원자로를 필요한 곳에 설치하면 돼 부지 제약이 적고 폐기물 관리가 쉬운 것도 장점이다. 이에 세계 각국 원자력 업계는 냉각수 확보가 어려운 산악이나 내륙 중소 도시에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 소형 원전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50년 소형 원전 1000기 건설 전망


세계가 소형 원전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10여 개 이상 국가에서 약 60개 모델의 소형 원전을 개발 중이다. 특히 미국 원자력 발전 업계의 소형 원전 기술 선점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26년까지 미국 현지 유타주에 소형 원전 12기를 건설하기로 정하고 설계 검토에 나선 상태다. 소형 원전 업체 뉴스케일파워가 소형 원전을 개발을 맡았고, 미국 에너지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해당 소형 원전의 1기당 발전 용량은 50메가와트(㎿)로, 12기에서 총 600㎿ 전력을 생산할 전망이다.

오일머니 이후를 준비하는 중동 국가들도 소형 원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이다. 사우디는 100㎿급 소형 원전을 2020년쯤 사우디 현지에 건설·착공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인 설계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원전 기술로 유명한 한국과 소형 원전 관련 ‘연구개발 협력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사우디는 소형 원전 기술 개발 과정에서 한국원자력 연구원이 개발한 소형 원전인 ‘스마트(SMART)’의 사우디 건설을 허가, 사우디 내 원자력연구원 공동 설립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각국이 소형 원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소형 원전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있다.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비가 적게 드는 덕에 소형 원전 건설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용량이 10~300메가와트(㎿)면 소형 원전, 1000~1400㎿면 대형 원전으로 분류한다. 소형 원전은 원자로를 공장 내에서 조립해 건설 현장에서의 작업을 줄일 수 있고, 이것이 건설비 감소로 이어진다. 소형 원자로를 땅속에 묻거나 바다 또는 냉각수조 안에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고에 대비한 별도의 건설·안전대책 관련 비용이 적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소형 원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해 2030년 30~180여기, 2050년 400~1000여기가 건설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소형 원전 1000기의 시장 규모는 약 4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소형 원전은 외딴 섬이나 중소도시 등에 적합하다. 이에 기존 석유·석탄·가스를 사용한 300㎿ 이하 소형 발전소(약 12만2500기)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원전업계 한 전문가는 “소형 원전은 원자력 발전이 가진 위험성을 줄이고 원전의 장점만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기후위기 심화도 소형 원전의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적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실현을 위해서도 원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형 원전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 확대 속에서 안정적인 전력 수급 확보의 주요 수단으로 꼽힌다. 지난 12월 12일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 달성 목표에 전력 생산을 위한 ‘원자력 사용’을 합의문에 명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EU가 원자력을 사실상 친환경 에너지의 일부로 인정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일본은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의 대안으로 소형 원전을 채택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2040년 실용화를 목표로 차세대 소형 원전 개발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2011년 3월 터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여전히 방사능 유출 및 오염수 문제를 겪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적 약속인 ‘파리협약’의 실현을 위해서 소형 원전이 필요하다”면서 “대형 원전이 수명을 다한 후에도 일정 원전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소형 원전 건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들도 소형 원전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12월 7일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 업체인 영국의 롤스로이스는 2050년까지 총 288억 파운드(약 45조원)를 들여 소형 원전 16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롤스로이스는 소형 원전을 통해 향후 추진 예정인 차세대 제트기 엔진 연료 개발 과정의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워런 이스트 롤스로이스 최고경영자는 “소형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추출한 뒤, 수소와 탄소를 합성해 새로운 항공기용 합성 연료를 개발할 예정”이라며 “수소 추출에 필요한 많은 양의 전기를 자체 조달하기 위해 합성 연료 제조 공장마다 자체 소형 원전을 함께 건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원자력 관련 기업들은 소형 원전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있다. 원전 부문의 매출이 급감한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이다. 두산중공업은 미국의 원전 전문 업체인 뉴스케일파워에 대한 지분 투자를 마무리하고 원자로 모듈 및 기타 기기 공급 계약을 했다. 두산중공업은 이번 사업 참여로 최소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 이상의 소형 원전 기자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기용 두산중공업 원자력BG장은 “소형 원전은 중국·러시아·중동 등에서도 건설을 추진 중일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탈원전 내세운 정부, 소형 원전 수출 의지 표명

신고리 5·6호기를 끝으로 국내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한 정부도 소형 원전 수출에는 힘을 보태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소형 원전 기술 현황을 검토하고 나선 데 더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소형 원전 기술 개발 및 수출 의지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미옥 과기정통부 1차관은 지난 11월 제13차 국제원자력협력체제(IFNEC) 집행위원회 콘퍼런스에서 참석해 “주요 국가들이 안전성이 강화된 소형 원전의 미래 가치에 주목, 개발·상용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미래 글로벌 소형 원전 시장에서 강자가 될 수 있도록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17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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