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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대책 불똥 튄 전세시장] 고가 아파트 매매 막으니 전세값 풍선효과 

 

강남·목동 등 학군 좋은 단지 급등 우려… 전세 불안 확산될 가능성 커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종합상가 내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전세 전단지가 붙어있다. / 사진:연합뉴스
12·1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나온지 보름 넘게 지났다.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강화하는 한편 종부세율을 올렸다. 청약부터 대출·세금까지 모두 망라한 규제다. 전세대출을 받은 뒤 시가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사면 대출을 회수하는 조치도 들어갔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이른바 ‘갭투자’까지 틀어막은 것이다.

대책 발표 후 재건축 아파트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거래가가 21억원을 넘었던 잠실주공5단지(전용 76㎡)는 19억원대 매물이 나왔다. 22억원을 호가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84㎡)는 19억5000만원짜리 급매물도 나왔다. 강남 아파트들도 상승세가 꺾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2월 13일 21억7000만원에 거래됐던 잠실엘스(84㎡)는 16일에는 1층이지만 17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호가는 2억원 정도 내렸다. 최고 31억원에 거래됐던 반포 래미안퍼스티지(84㎡)는 12월 27일 실거래가가 27억원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고는 집주인들이 전반적으로 호가를 낮추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이 부동산 중개업체들의 이야기다.

강남 고가 아파트 가격 하락

12·16 대책의 불똥은 전세시장으로 튀었다. 래미안대치팰리스(85㎡)는 전세값이 15억원으로 6개월만에 3억원 올랐다. 12·16 대책 이후에는 호가가 17억원까지 나왔다. 양천구 목동5단지의 경우 7억원 안팎이던 35평은 8억원, 8억5000만원 안팎이던 45평은 10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와 잠실엘스 등도 최근 한달 동안 전용 85㎡ 기준으로 1억원 가까이 전세값이 올랐다. 양천구 W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주로 찾는 20평대는 아예 매물이 없어 거래가 안되고, 중대형 평수도 최소 5000만원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과 양천 중심으로 시작된 전세 불안이 앞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일단 전세 수요가 많다. 집값이 급등한 데다 대출은 죄고 있어 당분간 전세를 살면서 청약을 기대하거나, 아예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전·월세로 남으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목고 폐지도 학군 수요를 부추긴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은 강남 부동산 시장에 핵폭탄급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입 정시 확대와 특목고 폐지로 학군 좋은 이른바 ‘사교육 1번지’로 수요가 몰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세가율 추이를 보면 당분간 전세 강세를 예상할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53%로 2013년(52.6%) 수준에 근접했다. 고점이던 2015년(70%)에 비하면 17%포인트 낮아졌다.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이다. 집값이 안정된 기간에는 높아지다가 집값이 급등하면 낮아지는 특성이 있다. 집값이 급등하던 2001~2006년 사이 40% 선까지 내려갔던 서울의 전세가율은 2015년 70%를 넘어섰다가 다시 낮아지고 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전세가율이 낮을수록 매매로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이 늘어 내 집 마련 수요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전세수요가 늘면서 전세값이 오를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실제로 잠실엘스 60㎡의 경우 전세가율이 83%로 가장 높았던 2016년 3월의 경우 전세값 7억원에 1억3000만원만 더하면 살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 갭이 9억5000만원으로 벌어졌다.

통화주의를 집대성한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화폐 공급량이 단기적인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물 경제에 별 영향이 없고 인플레이션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중시하는 케인스 식 총수요 관리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이 이론을 원용하면 서울의 아파트값도 화폐적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협의통화(M1)는 2009년 357조원에서 지난해 885조원으로 늘었다. 거의 2.5배로 된 셈이다. M1은 현금과 요구불예금을 합친 것이다. M1에 정기예금,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합친 광의통화(M2)는 같은 기간 1508조원에서 2874조으로 증가했다. 서울 염리동 마포자이(85㎡) 가격은 2009년 7억원 안팎에서 최근 14억원 수준으로, 잠실엘스(85㎡)는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올랐다. 돈값이 떨어진만큼 오른 셈이다. 문제는 2016년 상반기까지 안정적이던 아파트값이 2016년 하반기 이후 급등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아파트값 상승이 투기의 결과로 본다.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투기수요 차단’이다. 김현미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수요 차단, 공평과세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2·16 대책을 시행했고, 공시가격 현실화를 본격화했다”고 밝혔다. 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8·2 대책(2017년), 9·13 대책(2018년), 12·16 대책(2019년)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새 아파트를 지으면 집값이 오른다며 재건축을 막고, 양도세·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대출을 조였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렀다. 2017년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을 내놓았다가 매출이 잠기면서 아파트값이 급등했고, 9·13 대책 이후 주춤했지만 아파트 청약을 가점제 중심으로 바꾸면서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 30대들이 기존 아파트 매수에 나서면서 다시 올랐다.

정부는 “지난 정부의 과도한 규제 완화 탓”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12·16 대책으로 아파트값 상승세는 일단 꺾일 전망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하락세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가율 낮아 전세 수요 늘어날 가능성

역설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가져왔다. 집 가진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서 좋고, 집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집 가진 사람을 적폐라고 대신 때려주니 대리만족한다. 정부는 세금이 늘어나니 즐겁다.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기다리며 다른 아파트를 한채 샀다가 해마다 수천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 일부 다주택자나 청약 당첨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부 젊은층은 ‘무고한 희생(콜래트럴 데미지)’일 뿐이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15억원을 넘는 고가 주택은 서울 아파트의 7분의 1 정도만 해당되고, 전국적으로는 공동 주택의 1.2%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전세 급등이나 몇년 후 공급 부족에 따른 매매가 급등 우려를 모를 턱이 없다”며 “집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안 된다는 신념이 너무 강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알면서도 당장 정치적으로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1517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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