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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0 참관기]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390여 개 한국업체 참가… 자유롭게 협업·융합하는 해외환경 부러워

▎에르 바스티안 델타항공 CEO(오른쪽) 담화 모습 / 사진:연합뉴스
2013년부터 1~2년에 한번씩 CES에 참석하고 있다. 이번이 5번째 참가다. 매번 엄청난 규모에 압도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17만명이 방문했다고 하고, CES가 열리는 유레카파크엔 스타트업 숫자가 더 늘었다.

IT와 무관할 것 같은 기업의 참여 열정 뜨거워


▎CES 2020에서 델타항공이 선보인 웨어러블 로봇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CES의 오랜 단골이며 가장 중요한 업체답게 손색이 없는 훌륭한 부스를 꾸몄다. 특히 LG는 OLED 스크린 200여장을 구불구불 접히는 곡선 모양으로 천정에 붙인 조형물로 관람객을 압도했다. 키노트 연설에서 화제를 모은 졸졸 쫓아다니는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볼 로봇 ‘볼리’라든지, 인공지능을 적용한 LG의 가전제품이라든지 두 회사의 부스는 볼거리가 많아 큰 인기를 끌었다.

유레카파크에서는 스타트업의 국가대항전이 펼쳐졌다. 항상 ‘프렌치테크’라는 인상적인 로고와 함께 프랑스 스타트업이 기세를 올리지만 올해엔 한국 스타트업도 못지않게 많았다. 이스라엘, 대만 등은 매년 국가관을 설치하고 있고 올해는 이탈리아, 홍콩,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이 국가관을 업그레이드해서 나타났다. 일본도 ‘J스타트업’이란 로고를 만들고 다양한 스타트업을 선보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도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그들 역시 “인도 스타트업이 CES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태국 스타트업도 보였고, 세네갈 등 아프리카 국가 스타트업도 눈에 띄었다.

CES 현장은 한국 사람으로 차고 넘쳤다. 특히 유레카파크에서는 열걸음 정도 걸을 때마다 아는 사람과 만날 정도였다. 고개만 돌리면 한국 사람이고, 사방에서 한국말이 들릴 정도였다. 이번 CES로 라스베가스를 방문한 한국인은 1만명으로, 중국인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이번 CES에서 ‘이제 테크는 전자업체나 IT업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기업이 열심히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테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 기업이 CES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CES에서는 이례적으로 델타항공의 에드 바스티안 CEO가 기조연설을 맡았다. 삼성전자나 인텔 등 전자회사, IT회사의 수장이 발표하던 기조연설이 몇 년 전부터 자동차회사 CEO의 몫이 되기도 했지만 항공사 CEO의 출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바스티안 CEO의 발표를 현장에서 듣고 감탄했다. 그는 “항공권을 사고, 공항으로 향하고, 짐을 부치며 체크인 하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고객의 여행경험 전체에 IT 기술을 접목해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델타앱을 통해 쉽게 항공권을 사고, 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을 자동으로 수배해서 적당한 시간에 보내주고, 공항에서 생체인증을 통해 쉽게 체크인을 하고, 탑승할 차례가 되면 자동으로 알려줘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게 하고, 비행 중에는 델타앱을 통해 각종 흥미로운 영화 콘텐트를 즐기고, 내려서도 차량을 배차해 고객이 편히 집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델타가 적극적으로 관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제휴하거나 투자해서 빠른 실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델타는 지상에서 고객의 이동을 연결하기 위해 승차공유서비스인 리프트와 제휴했다. 델타항공의 고객은 마일리지를 이용해 리프트 차량을 불러서 이용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한다든지 육체노동이 많은 직원들을 위해 입으면 아이언맨처럼 일할 수 있는 로봇수트를 도입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팸퍼스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 생활용품 대기업 P&G는 기저귀에 센서를 붙여 부모가 아기의 배변 주기와 패턴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사내벤처에서 개발해 상품화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오래된 농기계 대기업 존 디어는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능 등을 이용해 대형 농장의 생산성을 대폭 올릴 수 있는 제품을 내놨다. 올해 처음으로 부스를 내고 참가한 두산 역시 미국의 자회사인 밥캣의 중장비에 같은 첨단 기능을 탑재해 선보였다.

자동차회사는 자동차만 만들고, 전자회사는 전자제품만 만든다는 기존 관념을 깨는 발표도 많았다. 도요타의 미디어 발표회에 갔더니 도요타 아키오 회장은 자동차 얘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고 후지산 기슭에 건설할 스마트시티 계획을 발표했다. 직물처럼 촘촘하게 짠 우븐(Woven)시티라고 한다. 그 곳이 도요타의 자율주행셔틀인 이팔레트가 활약할 무대가 된다는 설명이다. 한 시간 뒤 현대차의 미디어 발표회에서는 하늘을 날으는 도심형 항공 플라잉카와 자율주행 캡슐형 차량 그리고 이를 이용한 스마트시티 계획이 나왔다. 그래서 현대차의 부스에도 차량이 없었다. 반대로 일본의 소니는 전기 콘셉트카를 발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제 모든 것이 융합되고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했다.

확실히 중국 업체의 참가는 줄었다. 하이얼, TCL, 창홍, 콘카, 스카이워스 등 주요 중국 가전업체의 부스는 건재했고 DJI, 유비테크 등 중국 선전지역의 다양한 드론, 로봇업체들이 나오기는 했다. 줄었다지만 1300여 중국업체가 참가했다. 하지만 썰렁한 화웨이의 부스에서 보듯 뭔가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 중국업체들의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통일된 국가 브랜드 없는 산발적 전시 아쉬워

이번 CES에서 한국은 엄청난 세를 과시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지난해 보다 30% 늘어난 390여 개의 한국 업체가 CES에 참가한 것은 정부기관, 지자체, 협회 등 무려 28개 기관에서 참여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리아’라는 통일된 브랜드를 선보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들쭉날쭉, 산발적으로 전시를 진행했다. 나름 국가 이미지에 맞는 산뜻한 로고와 부스 디자인으로 통일한 프랑스, 네덜란드, 이스라엘, 일본 등과는 대조적이었다.

또 하나는 자율주행차와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에 있어서 모빌리티 스타트업과 제휴가 필수인데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델타항공이 리프트와 제휴하고, 현대차가 플라잉 카를 위해 우버와 제휴한다. 도시의 혈맥처럼 작동하며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켜주는 이런 모빌리티 서비스와 협업하지 않으면 자율주행차 개발도, 고객만족도 쉽지 않은 시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로 인해 이것이 쉽지 않다. ‘이 분야의 한국 기업은 결국 다 해외로 나가서 개발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1518호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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