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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리, 비철금속 동반 상승 왜] 경기불안·실물회복 속, 상승세 이어질 듯 

 

구리·니켈·금·팔라듐 금융 상품에 자금 유입… 전선 등 중간재 기업엔 호재, 완제품 기업은 부담 커질 듯

최근 금융시장에서 상식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무제한 양적완화(QE), 장기 저금리, 현대통화이론(MMT) 등이 대두하며 전통적 프레임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비철금속을 중심으로 한 원자재 시장이 대표적이다. 경기가 불안할 때 강세를 보이는 안전자산 금, 실물경기 회복 때 상승하는 구리 등의 가격이 함께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국제 금 시세는 1월 14일(현지시간) 기준 트로이온스당 1542.4달러(약 178만원)를 기록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지난해 4월 1200달러대에서 급등하기 시작해 주요국 채권 금리의 마이너스 전환, 중국 경제 성장률 둔화 우려, 미국-이란 갈등 등에 큰 폭으로 상승했다. 금은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할 때 가격이 오른다.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미국 증시가 꺼질 것이란 비관론과 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 국제 정세 불안 등이 최근 금값 상승을 부추겼다.

이런 가운데 일반적으로 금값과 반대로 움직이는 구리·니켈 등 원자재 가격도 함께 오르고 있다. 구리·니켈은 건물·선박·전자기기 등에 많이 쓰이는 원자재로 통상 실물 경기가 회복될 때 오르고, 경기가 불안할 때 떨어진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국제 구리 가격은 1월 14일(현지시간) 기준 t당 6247달러로 지난해 10월 5684달러 대비 10% 가까이 상승했다. 연고점을 기록했던 지난해 3월 6572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구리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실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전기차 등 미래형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대당 20배 정도의 구리가 더 필요하다. 중국 내수 경기 부양 기대감도 구리 수요를 키우고 있다.

니켈 가격도 t당 1만3680달러(14일 기준)로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상승했다. 연고점인 지난해 9월(1만8330달러)에 비하면 낮지만 큰 폭으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구리·니켈 등은 경기 변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실물 경기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꼽힌다. 경기 선행지표로 3~6개월 뒤 경기를 선반영한다. 이 때문에 구리의 경우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팔라듐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5일(현지시간) 기준 팔라듐 가격은 트라이 온스 당 2176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00달러 올랐다. 3년 전과 비교하면 3배, 10년 전보다는 6배 상승했다. 큰 가격 상승세를 그리며 금값을 추월했다. 팔라듐은 자동차 매연을 줄이는 촉 매변환기에 주로 쓰인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등 환경 정책 강화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또 수소차 연료전지의 산화 환원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제로도 사용돼 앞으로 쓰임새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팔라듐 공급량 제한적, 추가 상승 기대감

팔라듐은 구리·니켈·백금 등을 채굴·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기 때문에 공급이 비탄력적이다. 수요가 늘어나는 데 비해 공급이 일정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를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금을 대체하는 안전자산으로서도 주목받고 있어 투자 수요도 몰릴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팔라듐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며, 현 추세대로라면 가격이 연내 25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재 가운데 안전성을 대표하는 금과 실물경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구리, 두 성격을 함께 가진 팔라듐 가격의 동반 상승은 최근 투자자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로 금융시장이 변동성에 취약해진 가운데 미 증시가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독일 국채금리 급락,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 악재가 주기적으로 터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경기 부양에 따른 실물경기 회복 기대감, 유럽 경제 회복, 미·중 관계 개선 등 호재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시장에 호재와 악재가 뒤섞이면서 갈 길 잃은 자금이 원자재 시장 전반에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금과 구리 가격은 동반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불확실성 완화, 부양적 통화정책 기조, 경기회복 기대감 등이 반영돼 원자재 가격이 꿈틀대고 있다”며 “구리 가격은 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귀금속 중에서는 은 가격 상승이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원자재 리서치 헤드는 금 가격에 대해 “당분간 1600달러 선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걸프 전쟁 초기와 9·11 테러가 벌어졌을 때도 금이 올랐듯 현재보다 더 상승할 수 있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원자재 가격에 대한 비관론도 적지 않다. 지난 2~3년간 상승세가 가팔라 이제 종착지에 다다랐고, 실물 경기 회복세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가격이 되레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구리 파생상품 1개월 수익률 5% 넘기도

엇갈리는 전망 속에 시중 자금은 여전히 원자재로 몰리고 있다. KG제로인에 따르면 ‘삼성KODEX구리선물특별자산상장지수[구리-파생](H)’는 최근 1개월 수익률이 5%가 넘고, ‘미래에셋TIGER구리실물특별자산상장지수(금속)’도 3%대 상승했다. 최근 3개월 수익률은 각각 8%, 6%에 달한다. 금 관련 펀드의 1개월 평균 수익률도 5%대에 달하고 있다.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한국투자KINDEX골드선물레버리지특별자산’의 경우 1개월 수익률 13%대에 달했다.

이런 원자재 가격 변동은 국내 산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구리 가격 상승은 전선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대한전선·LS전선 등 국내 전선 공급 사업자의 수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구리는 전선 원가의 50~6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또 가격 상승을 우려한 전선 납품 업체들이 선주문에 나설 경우 공급량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전선을 납품받아 완제품을 생산하는 전기·전자·통신·자동차 등 업종은 소재·부품 가격 상승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소재·부품에 많이 쓰이는 금·팔라듐 가격 상승 역시 중간재 제조사에는 긍정적이나, 최종 생산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19호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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