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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앞둔 회계업계 지형도] ‘새 시장이 열렸다’ 지정제 시행에 바빠진 회계업계 

 

대표 상장사 감사시 해당 업계 신뢰 확보… 대형 회계법인 간 주고받기로 손익은 글쎄

▎사진:© gettyimagesbank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으로 국내 주요 상장사와 회계 업계 간 지형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정하던 회사들 가운데 일부가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으로 감사인을 교체했다. 회계업계에서는 일단 업종별 대표 상장사의 감사인으로 지정되면 해당 업종 전반에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8년 ‘신(新) 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 회계 사건에서처럼 특정 회계법인에 외부 감사를 맡겨 발생하는 감사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안진회계법인에게 외부 감사를 받았다. 신 외감법 적용 이전에는 관리종목에 포함되거나 횡령·배임 등이 발생한 상장사, 감사인 선임절차를 위반한 상장사 등이 직전 지정 대상에 올라 금융 당국이 외부 감사인을 지정했다. 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상장사들은 계속해서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아래서 상장사들이 외부 감사를 맡을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6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후 3년은 금융감독원에서 감사인을 지정한다.

지난해 10월 220곳에 지정 감사인 사전 통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으로 올해 감사인을 교체해야 하는 상장사는 220곳 가량이다. 금융감독원에서는 지난해 10월 중순 이들 회사와 외부 감사인에게 사전 지정 결과를 통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신한금융지주 등 업종별 대표 기업 대부분이 감사인 교체 대상에 포함됐다. 제도 시행에 따른 영향은 규모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일단 대형 회계법인의 일감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대형사들의 감사를 맡을 수 있는 회계법인은 국내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한영·안진)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감사인 지정 대상 기업과 회계법인을 5단계로 나누고 있다. 감사를 받는 상장사는 자산 규모에 따라, 회계법인은 소속 회계사 수가 등급을 가르는 기준이다. 그리고 등급에 따라 감사를 맡을 수 있는 회계법인과 상장사간에 제한이 생긴다. 예를 들어 자산 규모 4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 수준의 상장사라면 다 등급에 포함되는데, 같은 다 등급 이상의 회계법인에서만 감사를 받을 수 있다.

회계법인은 소속 회계사 수 규모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소속 회계사가 600명 이상이면 가 등급, 120명 이상은 나 등급, 60명 이상은 다 등급, 30명 이상은 라 등급, 30명 미만은 마 등급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인 가 등급 상장사의 감사를 맡을 수 있는 회계사 600명 이상 회계법인은 4대 회계법인 뿐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 대상에 오른 회사 가운데 대기업 감사를 두고 “대형 회계법인에서 또 다른 대형 회계법인으로 변경되는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속 회계사가 많을 수록 감사 계약을 맡을 수 있는 상장사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회계법인들은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등록 회계사수 40명 이상 회계법인의 증가세가 부각된다. 등록 회계사 40명 미만 회계법인은 지방 소재 기업에 대해서만 외부 감사 업무를 맡을 수 있어 사실상 상장사 외부 감사 업무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6월말 기준 등록 회계사수 60명 이상 회계법인은 9곳, 40명 이상 회계법인은 2곳이었으나 2019년 12월말에는 각각 13곳과 15곳으로 급증했다. 반면 등록 회계사수 600명 이상 회계법인과 120명 이상 회계법인은 각각 4곳과 5곳에서 변화가 없었다.

대형 회계법인 사이에서 어느 곳이 수혜를 입을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일단 업종별 대표 상장사의 감사를 맡을 경우 해당 업종 상장사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감사인을 맡아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 이후 40년 이상 삼일PwC(삼일)에만 감사를 맡겨왔으나 2020년에는 딜로이트안진(안진)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신한금융지주는 18년간 감사를 맡았던 삼정KPMG(삼정)를 대신해 삼일이 맡는다.

감사 마쳐야 손익 계산 가능


대형 상장사의 감사를 맡게된 회계법인은 이전 회계법인과 비교가 부담이다. 필요 인력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상하기 어려워서다. 예를 들어 2018년 삼성전자 감사를 맡았던 삼일은 공인회계사 37명과 수습회계사 24명을 포함해 총 126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252개의 종속기업과 45개의 관계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만큼 투입 인력 역시 국내 최대 규모다. 따라서 안진이 40년 이상 삼성전자를 맡았던 삼일과 동일한 인력만으로 동일한 감사 품질을 보장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첫해인 만큼 삼일이 투입했던 인력보다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회계업계에서는 장기 고객을 넘겨줘야만 하는 회계법인도 무조건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신 외감법에서는 감사인의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자문 서비스 및 컨설팅을 동일한 회계법인이 맡지 못하게 하고 있다. 독립성을 훼손시킬 만한 사유가 있다면 감사 계약 전에 해소해야 하며, 불가능하다면 재지정 받아야 한다. 실제로 KB금융지주는 예비 지정 단계에서 감사인으로 한영을 배정받았으나 이해상충 가능성을 들어 재지정을 요청했고 삼정으로 변경됐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감사 수수료가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문 수수료가 높은 경우가 많다”며 “감사인에 지정되지 않더라도 무조건 손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20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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