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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영 선포한 CJ의 선택과 집중] 식품·물류·미디어 주력사업 집중, 인수·합병은 스톱 

 

경영 패러다임 전환… 글로벌 시장 넓히기에서 기존 투자 시장 안정화 집중으로

▎서울 중구에 위치한 CJ그룹 사옥 전경.
2018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30년까지 3개 이상의 사업에서 글로벌 1등을 만들고자 하는 ‘월드베스트 CJ’ 전략을 발표했다. 2020년 매출 100조 원, 이중 해외매출 70%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이전의 ‘그레이트 CJ’ 사업 비전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CJ는 큼직한 인수·합병(M&A)을 과감하게 진행했다. 2017년 브라질 사료업체 셀렉타를 3600억원에, 2018년에는 미국 식품 업체 쉬안스컴퍼니를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인 2조원을 들여 인수했다. 베트남 민닷푸드, 러시아 라비올리, 미국 카히키, 독일 마인프로스트 등도 잇따라 사들였다.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재무 부담 가중


그러나 성과는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고, 재무적 부담은 가중됐다. 결국 CJ그룹은 지난해 연말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했다. 경영 패러다임을 ‘글로벌 사업 확장’에서 ‘인수·합병 지양’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에 따라 큰 규모의 투자와 인수·합병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기존 주력사업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앞서 진행한 글로벌 인수·합병에 대해 안정적 다지기 단계에 돌입할 계획이다.

선택과 집중에 꼽히는 자회사는 CJ그룹 내 매출이 큰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 ENM 등이다. 2019년 3분기 기준 매출을 보면 CJ제일제당은 3조4461억원, CJ대한통운은 2조6218억원, CJ ENM은 1조1531억원을 기록했다. 세 기업 모두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CJ제일제당은 슈완스컴퍼니 인수로 비용 지출이 컸고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영향으로 영업이익도 감소했다. CJ ENM은 CJ헬로 매각으로 연결이익이 빠졌고 TV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사건에 연루돼 브랜드 신뢰성마저 떨어졌다.

올해 CJ제일제당은 슈완스컴퍼니 인수·합병 효과로 글로벌 가공식품 시장 잡기에 적극 나서고, CJ ENM은 미디어 신시장 개척에 주력하면서 수익성 극대화의 돌파구를 찾을 전망이다. 택배 가격의 정상화(판가 인상) 및 수주 확대 등으로 유일하게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기록한 CJ대한통운은 그 흐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지난해 연말 정기 임원 인사에도 ‘효율성’이 적용됐다. 신임 임원은 총 19명으로 2018년 35명의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조직 슬림화’가 진행된 가운데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ENM의 각 사 핵심 임원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의 ‘키맨(Key man)’으로 불리는 강신호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박근희 CJ그룹 부회장이자 CJ대한통운 대표이사,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딸이자 CJ ENM 브랜드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이경후 상무다.

디지털·글로벌 시장 확대 |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담당 상무


2018년 CJ오쇼핑이 CJ E&M을 합병하면서 지금의 CJ ENM이 세워졌다. 합병과 동시에 CJ ENM에는 강력한 경영진이 등장했다. 바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35)상무다. 브랜드 전략을 담당하는 임원인 그는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과 함께 의결권 있는 주식을 보유한 다섯 임원 중 하나다. 명실상부 CJ ENM의 ‘경영 실세’다.

이 상무 뒤에는 든든한 조력자도 있다. 허민회, 허민호 CJ ENM 대표다. 두 대표는 모두 이재현 회장 일가의 최측근으로, 소매유통·홈쇼핑 계열사이던 CJ오쇼핑과 방송·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진행하던 CJ E&M의 합병을 설계하고 주도한 핵심 경영진이다.

이 상무 이력은 CJ ENM에서 발표한 2020년도 사업전략 중 ‘디지털·글로벌 시장 확대’와도 맞아 떨어진다. 이 상무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하고 CJ주식회사 사업팀 대리, CJ오쇼핑 상품개발·방송기획 등을 거쳐 2016년부터 CJ 미국 지역본부에서 근무했다. 미국지역본부에서 상무대우로 첫 임원이 됐고 그 후 8개월 만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하면서 CJ 북미사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전략을 짰다. 이처럼 미국 시장을 경험한 이 상무는 CJ ENM 글로벌 시장 확대 방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CJ ENM의 2019년 3분기 매출은 1조1531억원으로 전년 대비 6.9% 상승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6.3% 감소한 641억원에 그쳤다. 이는 CJ헬로를 LG유플러스에 매각하면서 CJ헬로 연결이익 167억원이 감소한 결과이기도 하다. CJ헬로 매각 후 자금운영에 숨통이 트인 CJ ENM은 수신료, 광고, 콘텐트 흥행 등 기존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넷플릭스, 티빙과 같은 디지털 사업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MCN, 티빙과 같은 콘텐트 관련 디지털 매출은 종전까지만 해도 CJ ENM 전체 매출 중 10% 중반, 많아야 10% 후반을 차지하는 작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디지털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CJ ENM은 콘텐트 판매 이익뿐 아니라 유통 수수료 매출도 별도로 얻을 수 있어 이익 레버리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는 중국 유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한중관계 완화 분위기로 중국에 미디어가 유통되면 새로운 통로의 수출 수익도 생긴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 분야에서 지난해보다 높은 수익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슬롯 추가가 없고 영화는 이벤트성 콘텐트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전략 담당을 맡고 있는 이 상무는 지난해 불거진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으로 실추된 기업 이미지 재 설정에도 힘써야 한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번 이익과 향후 발생할 이익 모두 K팝 발전을 위해 기금 또는 펀드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지만, ‘조작’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 실추가 매출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원은 “애초에 음악 부분 매출은 CJ ENM 매출에서 3~4% 정도 수준이다. 물론 기업 성장 동력을 잃은 건 맞지만 전체 실적이 흔들릴 만큼 큰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 진출 굳히기 |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CJ그룹 부회장)


2019년 3분기에 역대 분기별 최고 영업이익을 낸 CJ대한통운에는 2018년 삼성에서 영입한 박근희(67) 부회장이 있다. 그는 CJ그룹 전면에서 지주사를 이끄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충청북도 청원 출신인 박 부회장은 1978년 삼성SDI 공채로 입사한 일명 ‘40년지기 삼성맨’이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장 전무, 삼성카드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글로벌 사업 경력도 눈에 띈다.

그는 2005년부터 삼성그룹 중국 본사 사장 겸 삼성전자 중국총괄 사장 등을 6년간 맡으며 삼성의 중국사업을 견인했다. 이 같은 경력이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CJ대한통운의 새 수장으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실제 CJ대한통운은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미국, 베트남 등에 패밀리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국 진출이 활발하다. CJ로킨을 비롯해 세계 3대 가전기업인 중국 TCL과 합작해 세운 CJ스피덱스 등이 대표 중국 진출 기업이다. 성과도 좋다. 중국 물류연구기관인 운연연구원에서 내놓은 ‘2019 중국계약물류 50대 기업 랭킹’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종합 8위에 해당한다. 중국 시장을 키우는데 박 대표의 중국 시장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사업부문별 매출에서도 글로벌 부문이 가장 큰 액수를 차지한다. 2019년 3분기 기준으로 글로벌 부문 1조1485억원, 택배 6643억원, CL 6403억원, 건설 1687억원 순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70%에 육박할 정도로 물류 사업이 중요한 나라다. 이중 중국은 국내 수출·수입 25%를 차지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CJ대한통운이 중국에 집중해 시장을 진출을 확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며 “하지만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중국 경제는 전세계 10%일뿐인데 중국만 믿었다가는 중국 경제가 흔들릴 때 함께 휘청거리기 쉽다. 페덱스와 DHL처럼 세계 전체에 물류망을 설치하고 다방면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수·합병 효과 극대화 | 강신호 CJ제일제당 대표


CJ제일제당에서 단독 대표이사가 등장했다. 강신호(59) 대표다. 지난해까지 CJ제일제당은 공동대표 체제였다. 신현재 전 대표가 바이오 사업 부문 및 CJ제일제당 대표였고, 강신호 대표는 식품사업부문 대표였다. 지난 연말 인사에서 신현재 전 대표는 CJ기술원장으로 배치되고 강신호 대표는 부문 구분없이 CJ제일제당 전체 대표이사가 됐다.

강 대표는 1988년 CJ제일제당으로 입사한 후 CJ주식회사 인사팀장, 사업1팀장, CJ프레시웨이 대표 등을 거치는 등 차근차근 승진 코스를 밟아왔다. 그가 맡은 기업의 실적은 눈에 띄게 올랐다.

CJ프레시웨이 대표 시절, 사업구조를 개선해 영업이익을 3배 올리고 140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흑자로 전환한 바 있다. 2018년부터 맡은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로서의 평가도 좋다. 강 대표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데 일조하면서 CJ제일제당을 글로벌 식문화 선도하는 기업으로 견인했다. 이 때문에 그는 ‘K푸드의 주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를 앞세워 세계 만두 시장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2021년까지 비비고 만두 매출을 1조원으로 올리고 이중 70%를 해외시장에서 거두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강 대표에게 남겨진 과제도 있다. 2조 원을 투자해서 인수·합병한 쉬안스컴퍼니의 안정적인 운영이다. 거액을 주고 인수·합병했지만 CJ제일제당의 미국 진출은 아직까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월마트, 크로거와 같은 유통 채널과 협의해 CJ제일제당 제품을 판매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제품이 미국 물류 거점에 유통, 판매된 후에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숙제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20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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