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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오픈마켓으로 진화한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 수요 예측, 테스트 베드 역할에 대기업도 눈독 

 

패션업계 등 시장 반응 살피는 전략 활용... 중국산이 자체개발로 둔갑하기도

▎사진:© gettyimagesbank
크라우드 펀딩이 새로운 온라인 오픈마켓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군중(crowd)으로부터 자금조달(funding)을 받는다는 의미로 후원, 기부, 대출, 투자 등을 목적으로 웹이나 모바일 네트워크 등을 통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소셜 펀딩이라고도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혹은 아티스트들이 투자 혹은 후원의 대상이다. 은행 등 기존 금융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통로가 되면서 ‘대안 금융’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크게 대출형, 투자형, 후원형(보상형), 기부형으로 나눌 수 있다.

노트북 개발 펀딩에 30억원 모이기도


현실에서 크라우드 펀딩이 자리 잡는 방식은 자금 제공의 의미인 ‘펀딩’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된 영국, 가장 큰 시장을 가진 미국에서는 리워드형(보상형) 펀딩이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금전적 대가를 받는 투자형과는 달리 ‘후원’을 하고 소정의 ‘보상’을 받는 형태다. 후발주자인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6년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는 법이 개정됐지만 투자금액이나 펀딩 성공 건수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정작 큰 성장을 보이는 것은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이다. 사실상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유통업계는 이를 ‘주문 생산 구조’의 새로운 오픈마켓으로 여긴다. 크라우드 펀딩이 가진 장점이 온라인 판매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크라우드 펀딩 시장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2016년 승인을 받은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지만, 더욱 큰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역시 보상형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승인 현황을 집계하는 투자형과 달리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은 전체 규모 통계가 집계되지 않는다. 국내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업체인 와디즈의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 규모는 2019년 기준 1051억원에 달한다. 전년(392억원) 대비 약 2.5배 성장한 수치이며 2016년(36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30배나 늘어났다. 지난해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 규모가 384억원으로 전년(209억원) 대비 두 배 정도, 2016년(70억원) 대비 5배 정도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성장의 폭이 훨씬 가파르고, 규모도 크다. 지난해 와디즈가 모집금액 기준 한국 전체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의 82%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보상형과 투자형 시장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은 투자형과 달리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는 형태다. 개념상으로는 ‘후원’ 이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온라인 전자상거래’의 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본이 필요한 기업이 시제품을 선보이면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물건값에 해당하는 만큼의 투자를 진행하고,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제품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직접 기획한 신제품이나 국내 단독총판 라이센스를 보유한 수입제품에 한해 펀딩이 가능하고 금액을 생산 이전의 시점에서 지불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돈을 내고 물건을 수령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자상거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같은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은 지난해 여러 대박 상품을 낳았다. 10억원이 넘는 자금을 모은 상품도 여럿이다. 지난해 와디즈에서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펀딩한 노트북 ‘베이직 북’은 9400여명이 펀딩에 참여해 30억원 이상을 모았다. 역대 크라우드펀딩 최대 펀드 모집 기록이다. ‘국민 라이더 자켓’이란 이름으로 양가죽 바이커 재킷을 내놓은 ‘에이징CCC’도 지난해 3월과 8월 프로젝트를 진행해 1만464명으로부터 15억원을 모았다. 다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과 유튜버 ‘크림히어로즈’가 함께 진행한 굿즈 프로젝트도 우산 상품에만 3억원을 모집하는 등 총 20억원이 모였다.

크라우드 펀딩의 연이은 히트로 온라인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판매하려는 판매자는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을 주목한다. 스타트업,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중견기업도 참여한다. 단기간에 수요를 예측하고 시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개발 단계에서도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어 대기업의 크라우드 펀딩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패션업계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벤처인 플립(Flip)은 소비자에게서 받은 아이디어로 만든 ‘구스다운’의 판매처로 와디즈를 선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측은 “소비자와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생산한 만큼 유통도 소비자와 직접 만나서 하고자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펀딩 성공에 신이 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3월엔 보브, 스튜디오 톰보이 브랜드로 출시한 트렌치코트 역시 크라우드 펀딩으로 선보였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보상형 클라우드 펀딩은 향후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소니는 2014년 스마트워치 FES를 처음 출시할 때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했다. 직접 운용 중인 ‘퍼스트 플라이트’라는 플랫폼을 통해서다. 2016년 후속 제품을 처음 내놓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니 크라우드 펀딩 담당자는 “자금 조달이 목적이 아니라, 제품 출시 전 얼리어답터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시장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권리 인정되려면 법적 적립 필요해

다만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 시장이 커지면서 문제도 나타난다. 자체개발한 신제품이 아니라 중국에서 이미 판매되는 값싼 물품이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 시장에서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홍보문구를 사용하는 펀딩 모집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한 유튜버가 와디즈에서 펀딩을 모집한 사업자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문제의식이 확산됐다. 많은 투자자들은 보상으로 받은 상품에 대한 품질 문제와 사후서비스(AS) 등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에 와디즈는 펀딩 심사기준을 개선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소비자들이 전자상거래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는 사실상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의 인식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법적으로는 소비자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자상거래법을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연구용역에 나선 바 있다. 결과는 ‘크라우드 펀딩은 불특정성을 내포하고 있어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 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였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크라우드 펀딩은 거래 구조상 정보 비대칭성이 극대화되는 구조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소비자 등 당사자의 피해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보상형 크라우드 펀딩은 조건의 성취가 있어야 계약이 체결되기 때문에 ‘조건성취식 통신판매’로 정의하는 등 법적 적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20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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