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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권익 높인 결정적 순간] “녹즙 투입구 좁혀서 안전성 높이고, 청소기 문제 제기해 헤파 필터 달았죠” 

 

1970년 1월 20일 창립한 한국소비자연맹… 국내 첫 소비자운동 전문 민간단체

▎지난 2월 4일 서울 용산구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강정화 회장. / 사진:김현동 기자
똑똑한 소비자, ‘스마트 컨슈머’가 대중화됐다. 현대인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상품 정보를 찾고, 다른 사람들과 쇼핑 정보를 공유하며,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산다. 스마트 컨슈머의 등장으로 소비자의 힘은 커졌고 소비자 권익에 대한 인식도 더 확산됐다.

50년 전 모습은 어땠을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련되고, 국가적으로 기업 규모 키우기에 집중하던 시절이다. 국민에게는 국산품 애용이 독려 됐고, 경제 성장 시기였던 당시에는 상품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다. 이 때문에 늘 기업이 강자, 소비자는 약자로 존재했다. 기업이 생산하면 소비자는 비교, 분석 없이 무조건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게 다반사였던 시절이다.

기업과 소비자 관계 개선하고자 창립


▎1994년 녹즙기 손가락 절단 사고 이후, 기기 안전성에 대해 테스트하고 있는 한국소비자연맹 사람들 / 사진:한국소비자연맹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이런 잘못된 구조의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현상도 일어났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규제를 만들었고, 민간에서는 부당함을 느낀 소비자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 1970년 1월 20일 한국소비자연맹도 이같은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비자운동만을 목적으로 생긴 전문 민간단체다.

지난 2월 4일 서울 용산구 한국소비자연맹 회의실에서 만난 강정화(63) 회장은 지난 50년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경제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펼쳐왔다. 소비자는 투표하듯 상품을 선택하는 주권자”라고 말했다. 1987년 연맹에 합류한 그는 2013년 1월부터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연맹 사무총장 시절인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장을 겸임하며 전자상거래 사기쇼핑몰 감시체계를 만드는 등 온라인 소비자 보호활동에 주력했다. 2015년 3월에는 연맹 내에 소비자공익소송센터를 설립해 사법적 수단을 통한 소비자운동 전개라는 새 장을 열었다. 다음은 강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50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녹즙기 투입구 규제를 만든 것이 생각난다. 1990년대 초 한 아이가 녹즙기 투입구에 야채를 넣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났다. 연맹은 문제를 조사했다. 단지 한 명의 피해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대형 병원의 응급실에 비슷한 사고 내용을 확인해 보니 수십여 명이 같은 이유로 응급실을 찾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에 녹즙기 투입구는 식재료를 쉽게 넣을 수 있도록 길이가 짧고 폭이 넓었다. 투입구 크기 기준은 없었다. 연맹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제기했고, 이후 녹즙기 투입구는 길이 10cm 이상, 폭 5cm 이하로 안전 기준이 설정됐다. 탈수기에 중간 뚜껑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연맹이다. 멈춘 버튼을 눌러도 원심력 때문에 기기가 계속 돌아가서, 이를 모르고 빨래를 꺼내려고 한 소비자들이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간 뚜껑 제작 단가는 1000원 정도였다. 적은 비용으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호응이 좋았다.”

제품 기술력을 향상한 사례도 있던데.

“맞다. 옛 가정용 청소기를 지금 보면 대부분 사용을 꺼릴 것이다. 청소기 작동 중에 작은 먼지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청소하는 부모 뒤를 따라다니며 먼지를 흡입한다는 신고를 받고 조사했다. 청소기 이음새가 부실하고 필터 기능이 떨어져 이 같은 문제가 생겼다. 이를 꾸준히 문제 제기했고, 그 결과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산 청소기에 헤파 필터가 달리기 시작했다. 헤파 필터는 미세 먼지가 방출을 최소화했다. 현재는 시중에 판매하는 대부분의 청소기에 헤파 필터가 있지만, 당시에는 외국에서 제조하는 몇몇 제품에만 있었다.”

온라인거래에서 소비자 피해 급증


▎1984년 세탁기 제조업체 직원과 소비자가 세탁기 세척성능을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 사진:한국소비자연맹
피해 사건이 접수된 후 한국소비자연맹이 펼치는 활동은 다양하다. 관련 피해 진상을 파악하고, 개인이 진행하기 어려운 단체 소송을 준비하거나 제품의 안전 문제라면 기업 관계자와 만나 간담회를 열어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 후 제품 관련 정부부처와 논의해 제품 안전 기준을 더하는 활동도 추진한다.

요즘은 어떤 피해 사례가 많나.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관련 피해 접수가 많다. 특히 교환, 반품 등의 항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 생긴 피해가 많다. 예를 들어 값비싼 안마의자를 사면서 환불 조건을 제대로 보지 않아, 환불할 때 추가 배달 비용 등을 내는 피해가 최근 많이 접수 되고 있다. 계약 단계, 거래 단계에서 관련 내용을 미리 꼭 챙겨 봐야 한다. 아직까지도 소비자가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많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온라인 거래를 넘어 오프라인 거래에도 중요하다. 은행에서 은행원이 서명하라고 형광펜으로 표시해주면 읽지도 않고 서명하기 쉬운데, 모두 확인하는 것이 맞다. 이 때문에 어린 자녀에게 상품 계약 또는 구매 전에 관련 약관을 반드시 확인하고 결정할 것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도 배우지만, 답을 찾기 위한 공부가 아닌 실생활에서 익숙하게 나올 수 있도록 부모가 훈련 시키는 것이 좋다“

최근에 진행한 활동 중 의미 있었던 사례를 꼽자면.

“15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된 항공사를 상대로 승소한 것이다. 60여 명의 승객에게 각각 2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수백억, 수천억원 규모의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늘 몬트리올협약 등 국제규약을 들먹이며 피해 보상을 피해가던 항공사에 처음으로 단체 소송이 승소한 경우다. 재판부는 지연 출발에 있어서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국제규약엔 나와 있지 않은 정신적 고통 등을 고려해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국제규약 뒤에 숨어서 소비자 피해를 남몰라 하던 항공 기업의 방어막을 깬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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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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