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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화한 ‘고가 주택’] 기준 높여 대출·세금 동맥경화 풀어야 

 

수영장 딸린 저택에서 원룸 아파트까지 9억 넘으면 모두 해당… 고가 주택 개념 새로 규정 목소리

▎정부가 세제, 대출 등에서 강도 높은 규제를 하는 ‘고가 주택’의 원조는 수영장 등이 딸린 ‘고급 주택’이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고가 주택이 흔해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27㎡. 방이 하나인 12평형 아파트다. 거래가격이 지난해 9억원대에 올라선 뒤 9월 10억원을 돌파해 최고치 10억2000만원을 찍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1단지 전용 31㎡(14평형)는 11억원을 넘어 지난해 11월 11억4500만원까지 거래됐다. 시세가 9억원이 넘으면 ‘고가 주택’으로 분류돼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를 받는다. 정부가 세제·대출 등으로 전방위에서 압박하며 매수를 억제하는 집이다.

과거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하던 ‘그들만의’ 저택에서 이제는 10평대 초소형 아파트로까지 고가 주택이 흔해졌다. 국민은행 월간주택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1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중간값)이 9억원을 넘었다(9억1216만원). 집값이 날아다니는데 정부의 고가 주택 기준 조정은 걸음마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전방위 규제 기준인 고가 주택이 희소성이 없어지고 대중화하면서 주택시장 경색 우려가 크다.

‘고가 주택’ 원조는 취득세 중과한 ‘고급 주택’

‘고가 주택’ 원조는 1974년 정부가 ‘사치성 재산’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취득세를 중과한 ‘고급 주택’이다. 고급 주택 취득세율은 일반 주택의 3배였다. 당시 정부가 규정한 고급주택은 연면적 330㎡(100평)·가격 1000만원 초과, 대지면적 990㎡(300평)·건물가격 500만원 초과,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나 66㎡(20평) 이상의 수영장 구비, 230㎡(70평) 초과 아파트였다.

3년 뒤인 1977년에 ‘고급 주택’이란 이름으로 양도세로 옮겨와 지금의 고가 주택으로 이어졌다. 실수요 보호를 위해 혜택을 주던 1세대 1주택 양도세 비과세에서 호화스런 주택을 제외하기로 하고 그 대상을 고급 주택으로 정했다. 이 때 고급주택 정의는 주택 연면적과 대지면적이 각각 330㎡, 660㎡(200평) 이상, 연면적 330㎡ 이상인 아파트로 가격이 5000만원 이상이었다. 취득세 고급 주택보다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

당시 서울에서 아파트가 전체 주택 10가구 중 하나도 되지 못할 정도로 귀했고(8%, 1975년 기준) 100평 이상은 거의 없었다. 연면적 100평 이상은 주로 단독주택에 있었는데 2890가구로 전체 74만4274가구의 0.4%에 불과했다. 5000만원이면 서울 최고급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1977년 당시 가장 비싼 여의도 한성 아파트 분양가가 3.3㎡(평)당 40만원 정도로 전용 141㎡(51평형)가 2000만원이었다. 최초의 고가 주택은 전체 주택에서 1%도 차지하지 못한 셈이다.

1988년 올림픽 이후 집값이 뛰자 정부는 고급 주택 범위를 넓혔다. 주택 규모에 따른 세 부담 형평성을 높이고 대형 고급 주택 선호도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1989년 고급 주택 규모를 단독주택 연면적 264㎡(80평) 이상이나 대지면적 495㎡(150평) 이상, 아파트 165㎡(50평) 이상으로 줄였다. 가격은 1억8000만원으로 3배 가까이 올라갔다. 그 사이 서울 땅값은 10배 넘게 뛰었다. 여기다 금액에 상관 없이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나 66㎡(20평) 이상 수영장을 갖춘 집을 추가했다. 1989년 1억8000만원은 인기 아파트 40평대 가격 수준이다. 서울 서초동 우성1차(현 래미안리더스원) 43평형이 2억원 안팎이었고, 여의도 40평대가 2억원대 초반이었다.

올림픽 후 집값 급등세가 이어져 1991년 고급주택 기준 가격이 2년 만에 다시 3배에 가까운 5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1989~90년 2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64%에 달했다. 역대 최고의 집값 폭등기였다. 1989년 초 1억7000만원 정도이던 서울 여의도 전용 139㎡(48평형)가 2년 새 5억~6억원대로 치솟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저앉았던 집값은 1999년 다시 꿈틀댔다. 정부는 “고액 자산가에 대한 적정한 세 부담을 실현한다”는 이유로 고급주택 양도세 과세 기준을 기준시가(현 공시가격)에서 실거래가격으로 바꾸고 고급주택 기준 가격을 6억원 초과로 조정했다.

곧이어 2003년 고급 주택이 '고가 주택'으로 거듭났다. 2002년 집값이 뛰면서 6억원을 초과하는 149㎡ 이하 아파트가 잇따라 나왔다. 연면적·시설 등은 집값에 반영되기 때문에 따로 기준을 둘 필요가 없다고 본 정부는 고급 주택 기준을 집값(6억원 초과)으로 통일했다. 그러면서 명칭도 고급 주택에서 고가 주택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9억원 초과 부동산 거래 29%

2000년대 초·중반 집값 급등기 동안 고가 주택 기준에 변동이 없다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그해 10월 9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 정부는 6억원을 정한 1999년 이후 집값 상승률 58.8%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9억원 초과 고가 주택 기준은 12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다. 그 사이 서울 아파트값이 25.4%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 기준으로 2008년 6억원 초과 아파트는 전체의 13%, 9억원 초과는 4%였다. 지난해엔 9억원 초과가 2008년 6억원 초과 비율보다도 훨씬 많은 29%를 차지했다.

극소수였던 고가 주택이 크게 늘면 주택시장에 ‘동맥 경화’가 나타난다. 고가 주택은 분양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하고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이 제한된다. 취득세율이 최고로, 6억원 이하(1%)의 3배인 3%다. 양도세 1주택자 비과세 대상이 줄고 종부세(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이 늘어난다. 세제가 강화되지 않아도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고가 주택은 사기 어렵고 팔기도 쉽지 않은 데다 갖고 있으면 부담스러운 존재여서 시장 흐름을 막는 셈이다. 실수요 피해도 크다. 기준을 높여 고가 주택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고가 주택 기준 가격을 어느 정도로 올려야 할까. 지난해 공시가격 9억원에 해당하는 13억원대 이상 거래 비율이 14%였다. 정부는 12·16대책에서 ‘초고가주택’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선보였다.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이다. 지난해 15억원 초과의 거래량은 전체의 11%였다. 18억원 초과 비율은 6%다. 2008년 9억원 초과 수준에 맞춘다면 18억원 이상은 돼야 하는 셈이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1521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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