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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美 전격적 금리인하 ‘약빨’ 안 든 이유는? 

 

오랜 저금리, 이미 꺾인 주가에 ‘반전 카드’만 소모… 미국 증시 하락 부담감 여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심리지표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예상대로 국가와 질병 확산속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먼저 2월 글로벌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가 47.2로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1월 대비 하락폭이 2.8포인트로 이 역시 2009년 5월 이후 가장 컸다. 심리적인 충격이 금융위기 때에 필적하는 수준이라 풀이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표 하락이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2월 중국의 제조업 PMI는 1월 51.1에서 40.3으로 급락했다. 춘절 연휴 연장과 공장폐쇄로 가동률이 낮은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심리 위축이 겹쳐 지표가 급격한 하락이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우리나라와 대만이 각각 1.1포인트와 1.9포인트 하락해 영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반면 유로존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2월 유럽 제조업 PMI는 독일이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과 함께 1월보다 1.3포인트 상승했다. 소비자심리지수도 비슷한 모습이다. 다만 유럽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진 시기가 2월말 이후인 만큼 추이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고용지표는 여전히 좋았다. 2월 비농업 부문 고용 증가가 시장 예상치 17만5000명을 크게 웃도는 27만3000명을 기록했다. 실업률도 1월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한 3.5%로 지난 50년 가운데 최저치를 유지했다.

코로나19에 엇갈리는 경제 지표


양호한 고용 지표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하락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2~3주간 미국 시장이 요동쳤다. 다우지수는 나흘간 매일 1000포인트 가까이 오르고 내릴 정도였다. 금융위기 때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지만 당시는 일방적인 하락세였다. 반면 이번에는 상승 하락이 반복돼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급격한 등락의 반복이 나타난 이유는 우선 금리 인하 때문이다. 3월 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를 2주 앞둔 상태에서 연준이 갑자기 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이 조치로 금융완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고 3월 19일 FOMC에서 한번 더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시장의 기대에 부합한다면 한 달 사이에 금리를 0.75~1.0%포인트나 낮추는 셈이 된다. 연준이 금리를 이렇게 빨리 낮춘 것은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금리 인하 이전에 주요7개국(G7) 중앙은행장 및 재무장관 전화회담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정책 공조도 예상할 수 있다. 이번 달 12일과 19일에 유럽은행(ECB)과 일본은행에서 정책 결정 회의가 열린다. 시장은 여기서 또 다른 금융완화 정책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금리 인하는 시장이 좋아할만한 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발표가 전격적이었고 인하 폭이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래도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금리 인하는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로 바뀌었다. 오랜 저금리로 금리 인하의 효과가 떨어진 상태에서 다른 선진국도 정책 동조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은 미국이 왜 금리 인하를 단행했는지 의문을 갖는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는 게 목표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금리 인하 직전에 미국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의도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금리를 내린 후에 주가가 하락하자 카드만 소모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G7회담에서 다른 나라의 명시적인 동조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도 문제가 됐다. 유럽이나 일본의 금리가 0% 인걸 감안하면 다른 나라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다.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크게 가져갈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양적 완화 같은 유동성 공급을 하지 않기로 한 만큼 실제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모습은 추가 대책의 한계로 비춰지면서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떨어졌다.

미국 민주당 경선으로 주가가 오른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슈퍼 화요일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승리해 민주당 대선후보에 지명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 시장이 크게 상승했다. 조 바이든이 진보좌파인 샌더스보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시장이 재료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 부시와 엘고어가 맞붙었던 대선에서 두 달 동안 승자가 정해지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주가는 그다지 하락하지 않았다. 이런 전례와 달리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느냐가 주가에 영향을 줬다는 건 작위적인 해석이다. 높은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끌어대고 있는 형국이란 걸 사람들에게 알려줬고 그 결과 주가가 하락했다.

마지막은 높은 주가다.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하락이 나오기 전까지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높은 주가가 사라지지 않기에 부담 되는 상황이다. 앞으로 미국 시장이 어떻게 될까? 미국시장은 우리는 물론 전세계 주식시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곳이다. 과거에도 미국 시장이 단기에 급락한 적이 몇 번 있었고 그 때마다 우리시장도 요동을 쳤다. 이번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세부적인 형태는 조금 달랐다. 과거 하락은 대부분 한 번 주가가 내려가고 끝났다. 2015년이 대표적이다. S&P의 국가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계기로 미국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했지만 이내 급반등해 V자 형태를 만들었다. 2011년이나 2018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이미 주가가 낮아진 한국 시장

이번은 과거와 달리 반등 이후 두 번째 하락이 진행되고 있다. 이럴 경우 첫 번째보다 두 번째 하락이 더 문제가 된다. 1차 하락은 시장이 쇼크를 받아 급락하기 때문에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매수가 들어와 빨리 해소되지만 2차 하락은 그렇지 않다. 하루 등락이 1차보다 작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형태로 바뀐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미래의 경기와 기업실적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데, 주가 변동성이 줄면서 급락을 노려 매수하려는 수요까지 줄어 급반등이 잘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두 번째 하락 때 우리 시장은 미국보다 하락폭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주가가 상승한 게 없어서다. 코스피가 2000에 접근할 때 이미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 1차 하락은 단기에 급락하기 때문에 국내외 시장 모두가 비슷한 모습이 되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각자의 사정을 반영해 주가가 결정되므로 국가별로 천차만별이 된다. 이미 큰 폭의 하락을 경험한 우리 시장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긴 하지만 미국 주가 하락이 심하면 그 또한 작동하지 않는다.

-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

1526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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