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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을 가르는 숫자] ‘한 끝’ 차이로 엇갈리는 희비 

 

같은 크기에도 2층은 대출 ‘불가’, 1층은 ‘가능’... 과세 기준 금액 올려야

▎주택시장을 규제하는 ‘숫자'가 늘고, 같은 숫자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대출에선 기존 9억원을 넘어 15억원이 중요한 잣대가 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권 아파트. /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e편한세상신촌 전용 84㎡를 사기 위해 알아보던 박모(48)씨. 같은 84㎡ 중 마음에 드는 타입을 포기하고 다른 타입으로 매수해야 할 상황이다. 대출 때문이다. 사고 싶은 타입의 시세가 15억원이 넘고 다른 타입 시세는 근소하게 15억원 미만이다. 지난해 12·16부동산대책에 따라 15억원 초과 주택의 담보대출이 금지됐다. 박씨는 “은행 상담에서 원하는 타입의 시세가 15억500만원이어서 500만원 차이로 대출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다”며 씁쓸해했다.

숫자 1. 1,500,000,000

주택시장에 ‘숫자’ 희비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시장을 죄면서 규제의 기준이 되는 숫자의 힘이 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가 달라지거나 같은 숫자의 제한 범위가 넓어지고 강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주택시장이 숫자에 촉각이 곤두서고,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대출과 세금·분양을 좌우하는 숫자가 뭘까. 지난해 12·16대책에 등장해 현재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큰 숫자다. 이 숫자를 넘으면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는 ‘초고가 주택’ 시세 금액이 된다. 시세 15억원을 기준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돈 4억8000만원(15억원 대출 한도)이 왔다갔다 한다.

같은 주택형도 층에 따라 대출 여부가 달라진다. 국민은행과 한국감정원 시세가 ‘하한가’ ‘평균가’로 나뉘는데 1층엔 하한가를 적용하고 2층 이상은 평균가 대상이다. 위의 사례에서 박씨가 찾던 타입 1층 시세는 14억5000만원이어서 대출이 가능하다.

주택담보대출의 운명을 가르는 또 다른 숫자가 ‘9억’이다. 소득세에서 ‘고가주택’으로 부르는 기준 금액이다. 정부는 2018년 9·13대책에서 9억원 초과에 대출 제한을 도입했다. 이어서 지난해 12·16대책에선 9억원 초과분의 대출한도를 LTV(담보인정비율) 40%에서 20%로 낮췄다. 9억 기준도 강화했다. 공시가격에서 시세로 바꿨다. 공시가격 9억원이면 시세가 13억원 정도다. 대출 제한 대상이 13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확대된 셈이다.

‘9억원’은 과세의 주요 잣대이기도 하다.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이 금액이 넘으면 취득세에 3%의 최고 세율을 적용한다. 9억원이 넘으면 종합부동산세의 1주택자 과세 대상이 된다. 이때는 공시가격이다. 양도세에선 1주택자 비과세 기준이다. 9억원이 넘는 ‘고가주택’은 비과세에서 제외한다.

세 부담을 가르는 주요 숫자로 6억도 있다. 9억원 이전 고가 주택 기준 가격이기도 하다. 다주택자 종부세 대상 공시가격이고, 취득세 세율을 나누는 금액(6억원 이하 1%)이다. 배우자에게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는 한도금액이 6억원이다.

숫자 2. 85

‘로또’ 열기가 뜨거운 분양시장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숫자다. 가장 오래된 주택시장 숫자로, 국민주택 규모 기준이다. 전용 85㎡ 이하가 국민주택이다. 주택 공급을 다루는 주택법이 1972년 말 ‘주택건설법’으로 제정됐을 때부터 정해진 숫자다. 국민주택 규모는 시행령에 85㎡ 이하로 명시됐다. 이때 ‘국민주택 규모=전용 85㎡’라는 등식이 만들어진 셈이다. 2005년 전용 85㎡는 국민주택 규모로 아예 법에 못 박혔다. 국민주택 규모가 정부의 주택정책을 수립, 집행하는데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법에 명시해 둬야 한다는 이유였다.

국민주택 개념이 서민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주택이다 보니 국민주택 규모를 기준으로 주택공급제도가 달라진다. 국민주택 규모 이하에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민간보다 싸게 공급하는 공공주택은 전용 85㎡ 이하만 있다. 분양가를 원가 기준으로 낮춘 분양가 상한제가 전용 85㎡ 이하부터 시작됐다. 분양할 때 전량 무주택 세대주에 우선 공급한다. 전용 85㎡ 초과에서는 무주택 세대주 우선공급분이 50%다.

전용 85㎡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과거엔 공공택지 공급가격을 조성원가 기준으로 책정했다. 85㎡ 초과는 감정평가 금액이었다. 2015년 이후 전용 85㎡ 이하 용지도 감정평가 금액으로 바뀌면서 택지 공급가격 혜택이 사라졌다. 정부는 전용 85㎡ 이하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공공택지의 전용 85㎡ 초과 용지를 3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같은 정비사업에 주택 규모별 건설비율을 둬 전용 85㎡ 이하를 재개발은 80% 이상, 재건축에 60% 이상 짓도록 했다. 과세에선 취득세가 국민주택 규모 여부를 따진다. 전용 85㎡ 초과엔 농어촌특별세(0.2%)가 추가돼 전용 85㎡ 이하 세율이 0.2%포인트 낮다.

국민주택의 정반대에 ‘고급주택’이 있다. 전용 245㎡ 초과다. 이 정도면 대개 공급면적 100평형 주택이다. 100평형이 넘으면 아주 고급스러운 집으로 본 것이다. 고급주택은 공급과 청약에선 제약이 없지만 ‘사치성 재산’으로 간주해 세금이 무겁다. 취득세가 12%다. 일반 주택 최고 세율(3%)의 네 배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전용 244.749㎡가 84억원에 거래됐다. 취득세가 2억5200만원이다. 이 집 규모가 방석 크기 정도만 더 커져 전용 255㎡를 넘는다면 취득세가 10억800만원으로 7억원이 훌쩍 더해진다.

이는 국내 아파트가 아무리 크더라도 대부분 전용면적 크기가 ‘244.***’로 ‘245’를 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아이파크 등에 고급주택이 많은데, 해운대 아이파크는 전용 285.86㎡다. 이외에도 전용 245㎡ 초과 아파트가 있지만 복층형이어서 고급주택에서 빠진다. 전용 245㎡가 넘더라도 복층형이면 전용 274㎡까지는 고급주택으로 보지 않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갤러리아포레 전용 271㎡,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269㎡ 등이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숫자

과세 등의 기준 금액인 6억원, 9억원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값이 크게 올랐지만 기준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사실상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대상이 많아진 데 따른 증세 효과다. 고가주택 기준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조정된 2008년에 거래가격 6억원 초과가 전체의 13%, 9억원 초과 4%였다. 지난해는 각각 56%, 29%다. 더 높은 취득세율을 적용받거나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에서 제외되는 주택이 그만큼 늘어났다. 지난해 15억원 초과 거래(11%)가 2008년 9억원 초과(4%)보다 훨씬 많았다.

소득 증가, 크게 늘어난 주택 공급, 1인당 주거면적 증가 등의 이유로 국민주택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인당 주거면적이 1985년 11.2㎡에서 2017년 31.2㎡로 2배가량 더 넓어졌다. 물론 가구원 수가 줄기 때문에 더 넓힐 필요 없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가 1970년 5.2명에서 2018년 기준 2.4명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1526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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