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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자산배분의 강력한 수단, ETF의 시대가 열렸다 

 

저금리·저성장 시대, 배당 재투자로 복리구조 만들어야

▎사진:© gettyimagesbank
자산운용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운용 방식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어진 몇 가지 사건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인덱스(Index) 펀드의 등장이다. 인덱스 펀드는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전문가(펀드매니저)가 운용한다는 전통적인 펀드와 달리 낮은 수수료로 지수를 모방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핵폭탄급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5년 월가의 성인이라 불리는 존 보글이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출시한 이래 자산운용업은 기존의 액티브(Active)와 패시브(Passive) 펀드의 양대 산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사건은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이다. 1990년 해리 마코위츠는 현대 투자이론의 기초를 이루는 포트폴리오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자산간의 상관계수를 분석해 서로 상관계수가 낮은 자산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보다 낮은 위험을 감내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투자현장에서 자산배분의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논문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의 일이다. 몇몇 연구자들이 기관투자가들의 운용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종목선택, 마켓타이밍, 자산배분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존의 통념과 달리 종목선택이나 마켓타이밍보다 자산배분이 투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배분, 마켓타이밍, 종목선택


일부 연구자들은 무려 투자성과의 90% 정도를 자산배분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후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 세계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종목선택이나 마켓타이밍에 앞서 자산배분 전략을 수립하는 게 일반화됐다. 그러나 자산배분 아이디어는 기관투자가들의 영역에서만 한정됐을 뿐 개인투자자들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투자 수단(Vehicle)에 대한 접근 가능성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주식과 채권과 같은 전통자산 이외의 헤지펀드나 부동산과 같은 대체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드물었다. 수천억 원 혹은 수조 원을 운용하는 기관투자들이나 거액 자산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자산을 투자 자금에 구애 받지 않고 살 수 있었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해외투자도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해외투자가 용이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일부 외국계 운용회사들이 판매했던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밖에 없었다. 글로벌 차원의 자산배분도, 다양한 자산 클래스(Class)에 접근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변화를 준 것은 ETF(상장지수펀드)다. ETF가 등장하면서 일반투자자에게 걸렸던 제약은 거의 사라졌다. ETF는 인덱스 펀드를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서 출발한다. 1990년대 초 혜성처럼 등장한 ETF는 ‘지난 30년 사이 금융투자산업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의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서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액티브 공모 펀드는 6590억 달러가 순유출된 반면, 인덱스 펀드에는 1조160억 달러가 유입됐다. 인덱스 펀드로 유입된 자금 가운데 65%는 ETF 시장으로 들어왔다. 한국의 ETF 시장은 2019년 12월 23일 자산규모 50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2002년 시장 개설 이후 17년 만인 150배 성장한 셈이다. ETF는 처음에는 기관 투자가들이 자산배분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지금은 개인투자자들도 저비용으로 자산배분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

최근에도 ETF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바로 스마트베타의 등장이다. 전통적인 인덱스 펀드는 단순히 시장 수익률 만을 추구하는 반면 스마트베타는 시장 수익률 이상을 추구하는 전략을 내재하고 있다. 전략도 다양하다. 매월 배당금을 노후생활비로 활용하기 원하는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월지급식 ETF도 있고, 클라우드나 전기자동차처럼 성장 분야에 초점을 맞춘 ETF도 있다. 포트폴리오에 부동산 자산을 편입하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리츠 ETF도 나왔다. 아예 자산배분을 알아서 해주는 ETF도 있다. 자산배분 비율이 변하면 일정 시점마다 리밸런싱도 자동으로 해 준다.

그렇다면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 ETF를 활용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적립식 투자다. 분할 매수로 매수 가격을 평균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자산배분이다. 투자경험이 많은 이들은 스스로 자산배분을 하면 되지만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나름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개인투자자들은 수익도 수익이지만 손실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도록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손실 방어가 가능한 대표적인 자산으로는 배당이나 이자 소득처럼 일정한 현금흐름이 나오는 자산이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발발 당시 25년 이상 연속으로 배당금을 늘린 배당귀족주들(Dividend Aristocrat)은 S&P 500 보다 하락폭이 적었다. S&P500이 38% 하락했지만 배당 귀족주로 만든 인덱스는 같은 기간 22% 떨어졌다.

ETF를 통한 자산배분

성장 개념이 들어간 ETF에도 자산을 배분해야 한다.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클라우드, 핀테크, 바이오 산업 등을 꼽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시장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최후의 승자를 판별해 내기 쉽지 않다. 따라서 성장 테마별 ETF를 활용하면 이런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 한 종목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투자하기 때문에 중간에 탈락한 기업이 있더라도 위험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문제는 변동성이다. 성장 분야는 투자자들의 희망이 투사되어 있어 쉽게 달아 오르고 쉽게 식는다. 따라서 변동성 관리를 위한 스스로의 투자 원칙이나 방법을 사전에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적립식으로 투자하거나 하락 때마다 추가 매수하는 전략을 섞는 식이다. 투자방법은 쉬운 게 가장 좋은 법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26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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