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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 노리는 중국 자본] 미국 압박 부담, 해외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 활용 

 

홍콩·싱가포르서 사모펀드 조성해 자금 유입되기도… 경영 주도권, 미·중갈등 역풍 주의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기업에 있어 인수·합병(M&A)은 성장사다리다. 타사가 가진 기술력과 인재·시장·네트워크를 단숨에 차지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M&A를 펼친다. 마블과 루카스필름·21세기폭스를 인수한 디즈니, 안드로이드·유튜브·더블클릭 등을 인수한 구글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넘보고 있다. 굵직한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신기술 기업에 투자 의사를 내비치며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다.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투자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전에는 중국 시장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거나 기술력 있는 한국 회사를 쇼핑백에 담았다면 최근엔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이 돼 줄 기업을 물색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상황에 부닥치자 한국을 교두보 삼아 해외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판로 개척 위해 의료·AI 기업 투자처 물색


벤처캐피탈(VC)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한 유통 대기업이 투자를 염두에 두고 국내 의약품 유통 스타트업 물색에 나섰다.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중국에서 생산한 마스크·소독제 등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서다.

최근 외교적 동향을 살펴보면 중국 기업이 이렇게 움직이는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태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며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이다. 중국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마스크·소독제·진단키트·보호복 부족에 시달렸으나, 2월부터 생산력을 총동원해 현재는 해외에 의료물자를 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미 인도적 차원으로 이란과 이라크에 의료진과 의료용품을 보낸 상태며, 아프리카와 피지 같은 태평양 섬나라들에도 의료 지원을 약속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이탈리아에도 코로나19 퇴치 경험과 의료진·의료물자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코로나19 발병국이란 오명을 벗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영향권의 중동·아프리카·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남아시아 지역 기업에 투자해 자국 제품의 해외 시장 수출을 도모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을 만드는 중국 대기업 A사도 지난해 말 한국에 진출했는데, 관련 국내 중소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AI·로봇을 개발하는 국내 대기업과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해 해외시장을 노크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한 AI 교육 스타트업도 현재 알리바바와 투자 집행을 논의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 이후 중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 및 투자가 어려워졌으며 중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도 생겼다”며 “한국을 경유해 해외 판로를 개척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 M&A는 미·중 무역분쟁 이후 크게 쪼그라들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 M&A는 245억 달러(약 30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2% 급감했다. 중국 기업의 해외 M&A가 가장 활발했던 2016년 상반기의 20%에도 못 미친다. 건수로는 251건으로 5년 만에 가장 적었다. 미국 당국이 중국 자본의 M&A 심사에 신중한 잣대를 들이미는 한편, 중국 당국도 자본 유출을 경계해 대형 M&A가 줄었다고 딜로직은 분석했다.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Y)의 M&A 담당자는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M&A, 특히 국유 기업 인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8월 안보 강화를 위해 ‘대미외국투자위원회(CFIUS)’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와 정보통신, 군사 등 27개 산업에 소액 투자를 하는 경우에도 당국에 사전신고를 의무화했다. M&A가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금지를 권고할 수 있으며,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통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에 제동을 건 바 있다. 이런 조치로 중국의 미국 기업 M&A는 지난 3년간 87%, 유럽 기업 M&A는 91% 감소했다.

중국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막대한 자본력으로 과감히 M&A에 나서며 성장한 측면이 크다. 중국 국영 자동차기업 베이징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의 지분을 확보했고, 유니그룹도 프랑스의 부품 제조사 린센스를 26억 달러에 인수했다. 4~5년 전부터 글로벌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BOE도 한국 하이디스를 인수한 덕에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로 퍼진 가운데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며 M&A를 통한 중국의 성장 전략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미국은 지난 2월 13일부터 ‘외국인 투자위험 심사 현대화법(FIRRMA)’을 도입해 미국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은 무조건 심사를 받게 하는 등 날로 M&A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기술 기업은 물론 개인정보, 군사시설과 가까운 부동산 취득 등도 심사 대상에 추가해 안전보장의 해석을 확대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얹어 동남아·중동 투자 늘리기도

이에 중국이 꺼내 든 전략적 카드는 한국과 동남아 진출이다. 중국의 한 투자사 관계자는 “한국과 동남아는 AI 등 신기술 분야에서도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며 “일본은 미국의 파이브아이즈에 포함돼 현실적으로 M&A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방식도 과거 중국 기업이 직접 자금을 투입하던 것과는 달리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조성한 사모펀드(PEF)로 투자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또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러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신도시 건설 등 광역경제권 구상에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얹어 사업 공동 개발에 나서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중국의 국영 통신회사 차이나텔레콤은 4월에 필리핀 통신사업에 54억 달러(약 6조7500억원)를 투자할 계획으로, 베트남·미얀마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다만 중국 투자는 양날의 검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초기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는 한편 중국 시장을 확보할 기회지만, 중국 측에 경영 주도권을 뺏기거나 미국 등 서구 시장 진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사모펀드 대표는 “중국 시장을 노리고 중국 자본과 손잡고 바이오 스타트업에 합작 투자했으나, 핵심기술만 노출하고 실패한 바 있다”며 “중국 자본은 펀드와 기업의 운영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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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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