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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달러화는 금융위기 징후 판단 첨병 

 

원달러 환율 상승했지만, 금융위기 고점은 안 갈 듯
유럽 여행의 매력 중 하나는 사통팔달(四通八達) 요지를 연결해주는 철도 교통 덕에, 하나의 국가를 여행하듯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다. 1985년 5개국간에 맺어진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이 초석이 되었고, 현재는 비자 없이도 26개국의 국경을 오갈 수 있다. 이렇게 오픈된 유럽은 전염병이 확산되기도 쉬운 환경이다. 중국의 춘절 연휴를 맞아 이탈리아 밀라노로 입국한 중국 우한 출신의 관광객 부부가 1월 31일 로마의 병원에서 코로나19로 첫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바이러스는 들불 번지듯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바이러스는 유럽 대륙 곳곳에서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각국이 서둘러 빗장을 걸어 잠그고 말았다.


생활수준이 높아진 중국인들의 관광 범위가 주변국에서 유럽으로 넓어지면서, 로마의 유산과 명품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를 외면할 리 없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이탈리아 정부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시한 중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유럽 주요국 중 중국에 가장 열린 자세를 취했던 만큼, 중국발(發) 바이러스의 침투에 취약했다. 16세기에 융성했던 중앙아메리카의 아즈텍 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자 코르테스가 함께 들여온 천연두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을 떠올리면 비약일까. 동서양을 잇는 교두보에 위치한 이란도 코로나19에 고통 받고 있다. 지리적 위치로 인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이란은 핵 프로그램 때문에 미국과 대립하고 있어 기댈 곳은 중국 밖에 없었다.

中 금융시장 상대적 안정 보여


금융시장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주요국 정책당국들이 서둘러 긴급 경제 부양 조치들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감염의 두려움에 가계는 물론, 기업, 공공기관까지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감염을 통제하지 못하니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경제활동이 촉진되지 않으며,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높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선뜻 소비하지 못한다. 코로나 사태에 미국 연준이 전격적으로 제로 금리를 도입하고 국채 등 매입 프로그램인 양적완화를 재개하기로 했음에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경제 전망이 급격히 악화되자,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가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 증시 고공 행진을 북돋고 연준을 채찍질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울 경제 성과가 초라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미국 증시의 기록적인 폭락과 함께, 베팅 마켓에서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태연한 척 하며 ‘미국은 괜찮다’는 인상을 주는 동안 실기(失期)하는 우를 범했고, 그새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얼어붙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시점에 미국 주식시장과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11월 초의 대선 전에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충분히 살려낼 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되게 악재에 걸려든 것만은 틀림없다.

코로나19의 전개는 지역별로 시차도 있고 온도차도 있다. 중국은 확진자 수가 둔화되며 경제가 서서히 정상화 되고 있고 한국도 확진자 수 자체는 둔화세다. 빅 데이터(Big data) 분석에 의하면, 여전히 잰 걸음이긴 하지만 중국의 경제 활동이 회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인터넷은행의 선두 주자인 위뱅크(WeBank) AI가 도시 레벨에서 확인되는 모빌리티(mobility) 데이터를 활용, 생산 및 수요 측면의 경제 활동 등을 중국 주요 도시 50곳의 GDP로 가중 평균한 뒤 산출한 중국경제정상화지수(China Economic Recovery Index)는 3월 13일까지 77% 정상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시진핑 주석이 3월 10일에 우한을 방문한 것은 상징적 시그널이라며 이 데이터의 추세를 근거로 3월 말엽이면 중국의 경제 활동이 정상 수준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지역별로 편차는 있는데, 상대적으로 연안 지역의 회복이 빠르고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우한은 더디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쇼핑은 모빌리티 데이터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이 경제 정상화 지수는 오히려 실제보다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극심한 불안에도 중국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2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중국과 그 인접국에 국한된 전염병으로 인식된 반면, 2월 중순 이후에는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지역에서 통제 불가능한 대유행 조짐을 보이면서 중국 금융시장 안정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벌써, 이번 위기 국면의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들리기도 한다. 연초 이후, 3월 16일까지 유럽 증시(Stoxx Europe 600)는 31.6%, 일본 증시(Nikkei 225)는 28.1%, 미국 증시(S&P500)는 26.1%, 한국 증시(코스피200)는 20.7% 하락한데 비해 중국 증시(CSI300)는 낙폭이 9%로 제한됐다. 역외 위안화의 가치는 연초 대비 달러화에 대해 0.4% 하락하는 데 그쳤다.

혼란 속 상대적 안정찾은 중국 금융시장

금융시장의 극심한 위험회피 심리에 원달러 환율도 급기야 2016년 2월 고점인 1245.3원을 넘어섰다. 지난 3월 19일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1285원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296원까지 오르며 1300원선을 위협했다. 그러나, 중국 금융시장의 안정과 함께 위안화 약세가 제한되면서 원달러 환율의 상승 강도는 과거 금융위기 수준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외환시장에서는 원유 가격 등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받는 소위 원자재 통화 부류가 있는데, 최근 원유 가격 폭락에 원자재 통화들의 약세 현상이 극심하다. 대표적 원자재 통화들인 브라질 헤알화나 러시아 루블화는 달러화에 대해 3월 16일 현재 연초 대비 20% 가까이 하락했다.

향후 원달러 환율도 천장을 뚫고 오르기는 쉽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원달러 환율의 최고점은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였던 2010년 5월에 기록한 1277원이다. 신용경색이 극심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2009년 3월에는 장중 1597원이 고점이었다.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금융시스템의 건정성을 보면 최근 사태가 더욱 악화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점을 넘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는 다른 어떤 자산보다도 먼저 금융위기의 징후를 드러낸다. 원달러 환율의 안정 여부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으로 금융위기 징후를 판단해도 좋다. 달러화 움직임을 주시할 시기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27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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