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도쿄올림픽 연기 결정, 아베의 셈법] 경제적 피해 아프지만, 분위기 반전시 정치적 자산 

 

국제 여론 악화에 1년 연기… 개최 후 내수 살면 총재선거 해볼만

▎3월 23일 일본 참의원에 출석한 아베 신조 총리는 도쿄올림픽 개최 연기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간은 길을 잃었을 때 더 빨리 뛰어가는 유일한 동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의 말마따나 사람은 일이 계획대로 안 풀리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내면의 불안감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최근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며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음에도 도쿄올림픽을 일정대로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와서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예정대로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준비를 진행해 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툐올림픽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사회 여론이 연기 쪽으로 기울자 IOC는 올림픽 개최를 연기하기로 입장을 선회했고, 아베 총리도 “(IOC가) 완전한 형태로 실시하겠다는 방침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이라며 고집을 꺾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관중 경기는 상상하지 못한다. 도쿄올림픽 개최는 1년 연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우회적 압박도 영향을 끼쳤다. 아베 총리로서는 뼈 아픈 일이다. 도쿄올림픽은 단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정치·경제적 빅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의 아베’로 불린다. 2012년 민주당을 밀어내고 두 번째 총리에 오른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치른 다섯 차례 선거(중의원 두 번, 참의원 세 번)에서 모두 승리했다. 올해 9년 차에 접어든 아베 총리는 이미 지난해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베 총리가 2012년 취임 때부터 내건 슬로건은 ‘부흥’이었다. 1945년 패전한 국가의 멍에를 벗는 한편 1990년대 경제 버블 붕괴로 맞이한 잃어버린 20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을 지우고 다시 일어서자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시간의 역순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당장 시급한 동일본 대지진 문제 해결과 후쿠시마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동일본대지진 복구에 2011∼15년도 25조 엔(약 283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심각해 근본적 문제 해결에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겠다는 입장이나 국제 사회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해 의도적으로 태풍 하기비스에 후쿠시마 원전폐기물 자루를 유실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낳고 있다.

대지진-잃어버린20년-패전국 ‘트라우마’ 해소 천착


일본 정부는 더불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해외에 알리는 한편 수출을 재개하는 등 동일본 대지진 이전으로 회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규제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부흥 정책을 가로막는다고 판단해서다.

아베 총리는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취임한 이듬해인 2013년부터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무제한 양적 완화 방식에 나섰다. 아베 총리가 취임할 당시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요국들이 돈을 풀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근린국 궁핍화’ 경쟁이 치열했다. 아베 총리도 이에 동참해 일본중앙은행(BOJ)을 통해 장기 국채 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일본은행(BOJ)이 채권과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해 시장에 자금을 직접 공급했다.

또 실물 부문에서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는 한편 가정주부들의 사회진출 유도, 부업 허용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일본이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은 성별과 연령,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일하는 ‘1억 총활약 사회’가 목표다.

이와 함께 인문계 인원을 감축하고 현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이공계를 늘리는 대학 개혁도 단행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교육 정책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등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2014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내수 진작에도 나섰다. 더불어 확장적 재정정책과 부채 감축을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해 세수 확대에도 나섰다. ‘제3의 화살’로 불리는 이 같은 성장전략의 마지막에는 올림픽을 통한 내수 진작이 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국가 부흥 프로젝트의 백미는 개헌을 통해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는 일이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 규정을 풀어냄으로써 패전국 일본을 보통국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여야의 틀을 넘어 활발히 논의해 레이와(令和) 시대에 맞은 헌법 개정 원안 마련을 가속하겠다. 임기 중에 내 손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초 연두 소감에서도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 나라의 형태를 중심에 두고 큰 개혁을 추진하겠다. 그 앞에 있는 것이 헌법개정이다”이라며 개헌을 일본의 새해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가 연두 소감에서 개헌을 언급한 것은 2014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올해 도쿄올림픽은 동일본 대지진을 극복하고, 경제 부흥의 성과를 세계에 알리는 한편 보통국가로 나선다는 일종의 세러머니다. 내부적으로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재현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중장년층 표심을 사로잡아 정치적 자산을 키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를 발판 삼아 올 8월 이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다시 해 정권을 유지하는 한편 아베 총리의 취임 10년 차인 2021년 개헌에 나설 것이란 게 일본 정가의 대체적 전망이었다. 자민당은 지난해 말 임시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내년 총리 10년차, 올림픽 이후 개헌 가능성

아베 총리는 사실상 올해 헌법 개정이 어려워져 내년에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베 총리의 당 총재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이 때문에 올해 안에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으면 권력 누수(레임덕)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요미우리신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소속 정치인 중 차기 총리로 선호하는 인물 1위는 25%를 얻은 이시바 시게루가 꼽혔다. 이에 비해 아베 총리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로 언급한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5%의 선호도를 얻는 데 그쳤다.

아베 총리로서는 자신의 임기 연장 구상을 추진하지 않고 퇴임하면 후임 자민당 총재가 다음 총선을 지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베 총리는 본인 임기 때 개헌을 성사시키는 한편 정치적 자산을 승계하기 위한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중의원 해산 시점을 11월 14~15일 여는 추수감사 제사 ‘다이조사이(大嘗祭)’가 끝난 뒤로 예상하기도 한다. 올해 다이조사이가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후 처음 갖는 행사라서다.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을 일정대로 열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은 경제적 고려도 있다. 도쿄올림픽이 취소되거나 일정대로 열리지 않으면 수조~수십조 원대 경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일본 간사이대 수리경제학 명예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1년 연기하면 6400억 엔(약 7조2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구체적으로는 대회운영비와 입장료, TV 광고비 등이 사라지고 관광객 유입 등의 2차 효과가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또 선수 재선발 및 홍보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올림픽이 취소되면 소비지출과 관광 진흥, 문화활동 등 효과가 사라져 4조5151억 엔(약 51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일본 국내총생산(GDP) 4조9709억 달러의 10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연기해도 GDP의 0.7~1%가량의 피해가 생긴다. 분양·임대된 선수촌 아파트 입주 지연, 전철 역사 변경 등에 따른 경제 손실과 올림픽 관련 물자 납품, 인력 채용이 사라져 소득과 고용에도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나가하마 도시히로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도쿄올림픽 취소 시 2020년 한 해에만 발생하는 경제 손실이 3조2000억 엔(약 36조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또 도쿄올림픽 준비를 위한 경기장·선수촌 등 건설 경기 부양으로 그간 경제성장률을 떠받쳤고, 2018~19년 소비를 진작한 점을 고려하면 경제 충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소비세 인상으로 내수가 위축된 상황이라 소비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올림픽 선수촌에서 수소에너지를 사용하는 구상을 내놓는 등 올림픽은 신기술과 서비스를 세계에 선보이는 귀중한 기회”라며 “연기 혹은 취소된다면 신기술 보급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올림픽 개최를 위해 쓴 여태까지 쓴 돈도 모두 매몰 비용이 될 수 있다. 도쿄올림픽 주최 측은 개최 비용을 총 1조3500억 엔(약 15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도쿄도가 5970억 엔, 일본 올림픽조직위원회가 6030억 엔, 중앙정부가 1500억 엔씩 각각 비용을 부담한다.

내년 임기말에 올림픽 개최하면 오히려 지지율 상승

그러나 간접적으로 발생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일본 정부는 2013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된 이후 2018년까지 1조6000억 엔을 지출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AFP는 보도했다. 올림픽 후원사인 일본 대기업 도요타·브리지스톤·파나소닉 등도 3480억 엔을 후원 행사 등에 사용했다. 이는 IOC와 체결한 올림픽 후원금과는 별도로 쓴 돈이다.

이 같은 피해예상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확산과 국제사회의 비판으로 국내 여론까지 올림픽 연기로 기울자 아베 총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을 한 셈이다. 요미우리신문 설문조사에서 일본 국민 69%가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연기하는 쪽이 좋다’는 의견을 냈고, ‘예정대로 개최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은 17%에 그쳤다.

그러나 아베 총리로서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없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와 10월 중의원 임기 만료를 앞둔 7~8월께 올림픽을 열면 지지율 상승이 있을 거란 관측에서다. 일본 경제산업성 출신 정치경제평론가 고가 시게아키는 주간 아사히 기고에서 “올림픽 분위기에 지지율이 오르면 아베 총리가 기세를 올려 당 총재 4선에 도전하거나 차기 총재를 지명하는 킹메이커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아베 총리도 국내 연기 여론의 상승과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도쿄올림픽 개최 연기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도쿄올림픽 연기 피해 예상
메인프레스센터·국제방송센터 임대 보상
선수촌 확보 및 임대·분양인과의 갈등
조직위원회 인력 유지 및 자원봉사자 재편
올림픽 입장권 수입 확보
내수 부진
고용 악화
관광객 유입 감소
TV 광고비 위축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28호 (2020.04.0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