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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1) 법망 피해 ‘유한책임회사’ 꼼수 전환] 이베이코리아·DH, 돈만 벌고 정보 공개는 거부하는 회사들 

 

유한책임회사 전환 기업 늘 것 예상되지만 현행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어

이베이코리아와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의 구체적인 재무상태 등을 확인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회사와 배달앱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회사들이 유한책임회사로 법인을 전환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한책임회사는 조합과 유사한 구조의 회사를 말한다. 외부감사를 받거나 경영상태를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

DH, 법망 피하려 유한책임회사 꼼수 전환


이들 회사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특히 DH가 그렇다. DH는 원래 유한회사였다. 국내에는 주식회사만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규정이 있어 ‘유한회사’였던 기업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논란이 되자 국회는 지난 2017년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감사를 받게 하는 ‘외부감사법’을 개정했다. 올해 1월부터는 유한회사도 외부에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자 DH는 정보공개 책임을 지지 않는 ‘유한책임회사’로 법인을 전환했다. 국내법상 유한회사는 바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전환할 수 있었던 배경엔 ‘우회 전환’이라는 꼼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유한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꾼 뒤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변신했다.

DH의 등기내역을 보면 2019년 11월 19일 ‘유한회사 딜리버리히어코리아’를 조직 변경해 ‘주식회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로 바꾼다. 그런데 이틀 뒤인 11월 21일 주식회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를 다시 ‘유한책임회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로 조직 변경하고 약 한 달 뒤인 12월 24일 등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유한회사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주식회사를 징검다리 삼아 꼼수를 부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베이코리아는 최근까지 주식회사 형태를 고수해왔다가 지난해 12월 24일 유한책임회사로 법인 성격을 변경했다.

정보공개를 거부해온 외국계 기업 한국법인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유한회사라는 명목으로 회사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해외에 상장된 기업들도 내부 감사를 통해 재무정보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한국 내 영업 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매출, 세금 규모 등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영업기밀이라 공개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비난을 받았지만,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았다. ‘유한회사’라는 방패막이를 없앤 것도 이런 상황을 십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DH가 ‘유한책임회사’라는 도피처로 숨기 위해 우회 전환이라는 꼼수를 아무렇지 않게 이용했고, 이베이코리아도 비슷한 길을 걸은 셈이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국내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DH는 지난해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며 사실상 국내 배달앱 시장을 장악한 회사다. 배달의민족의 지난해 매출액은 5654억원을 기록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에 따르면 앱을 통해 주문되는 거래액은 8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DH는 요기요와 배달통의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배달앱 시장을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배달통이 90% 이상 장악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3사를 통한 거래액은 약 16조~2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런 시장에서 향후 ‘깜깜이 경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DH 관계자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가 국내에서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향후 배달의민족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배달의민족은 DH가 아닌 ‘DH우아아시아’ 소속 회사가 되는 것이고, DH와는 경쟁 관계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오픈마켓 중심 이커머스 기업으로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2018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9811억원, 48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동안 약 3000억원을 ‘영국 이베이(eBay KTA UK)’에 배당했다. 영국 이베이는 ‘미국 이베이 본사’의 자회사이면서 이베이코리아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최근 이베이코리아는 매각설이 나오고 있다. 매각을 앞두고 한국 법인에서 배당을 확대해 현금을 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데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면 외부에서는 이런 내역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밖에 국내 유한책임회사로는 아디다스코리아, 마이크로소프트5673코리아 등이 있다.

한국 법인 글로벌 유한회사도 규제 피할 가능성 우려

일각에서는 다른 외국계 유한회사들도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DH처럼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유한책임회사로 돌리는 방법도 있고, 유한책임회사를 새로 만든 뒤 기존 회사의 사업을 양도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2018년 박선숙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은 3월에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유한회사들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 법을 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며 “외감법 개정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대책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한회사로 운영되는 유명 외국계 회사들로는 구글코리아, 애플코리아, 테슬라코리아, 알리바바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루이비통코리아, 샤넬 등이 있다. 국내 한 회계업계는 “글로벌 기업 다수는 국내에서 감사를 받지 않았는데, 재무정보 등 민감한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게 사실”이라며 “향후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국민 정서나 기업의 책임 경영을 생각하면 문제가 있지만, 사실상 현행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29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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