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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3) 위기 때 리더가 갖춰야 할 5가지] 내부의 적 ‘불안’을 먼저 제거하라 

 

자아·조직 흔드는 바이러스 찾은 뒤 팀원에게 대응방안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친분이 있는 가톨릭 신부와 유대교 성직자 랍비가 격투기를 보러 갔다. 신부의 성당에 다니는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그 선수는 시합을 하기 전 경건하게 성호를 그었다. 그것을 본 랍비가 신부에게 물었다. “저렇게 성호를 그으면 이길 수 있나?” 신부가 뭐라고 했을까? “실력이 없으면 꽝이야!”

정확한 상황·역량 판단이 위기 대응 첫걸음

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다. 경기에 나선 격투기 선수는 실력이 좋아야 이길 수 있고, 요즘 같은 위기 상황을 맞은 리더 역시 능력이 있어야 거친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다. 위기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일을 잘해 그 자리에 올랐든, 굵은 동아줄을 잡은 덕분에 그 자리에 앉았든 위기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태풍이 튼튼하지 못한 것들을 남김없이 골라내듯 위기 역시 리더의 약점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리더들의 불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전 회에서 말했듯 불안은 생존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본능이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되레 생존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이중적인 특성이 있다. 리더가 불안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휘둘리게 되면 불안은 바이러스처럼 조직 속으로 퍼져 나가 소리 없이 조직을 흔든다. 그렇게 조직의 마음을 흔들어 파국으로 몰고 간다. 세상의 불확실성이 불안을 만들고, 불안이 다시 더 큰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시작한다. 이런 소용돌이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 리더들이 자신과 조직의 마음에 스며드는 불안의 실체를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면 요즘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리더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각 집단마다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해결책도 그렇겠지만 어느 조직이든 리더가 가져야 할 공통적인 조건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위기 대처에 실패하는 리더들의 특징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상황 판단에 실패한다. 이 상황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상황을 모르니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자신이 하려고 하거나 해야 하는 일이 자신의 역량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고, 해야 하니까, 또는 하라고 하니까 한다. 할 수 없는 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손실을 막대하게 키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흔드는 불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거나 실패에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가 되어, 자신의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들거나 스스로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소심한 마음을 만들어 실패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속 불안 또한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 불안은 해소해야 하는 것이지 외면하는 게 아닌데 이렇게 하다 보니 갈수록 자신의 무능과 구성원들의 불만을 키운다.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개선에 집중하기에 바라는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듯 상황 판단에 실패하는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불을 지르는 게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거나 불안에 휘둘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다.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건 능력의 부족에서 오는 불안을 지위, 그러니까 ‘내가 위고 너는 내 밑’이라는 상하 개념으로 막으려는 방어심리에서 나온다. 급변하는 상황일수록 리더는 위에 있는 사람이기보다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하다 보니 이 역시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데 이런 이들은 대체로 주변의 성공 사례를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따라 하기 위해서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역량도 다른데 그걸 공식으로 여기고 무조건 도입하니 성과가 나올 리 없고, 또 다른 공식을 도입하려 하니 자신은 물론 조직도 헤매게 된다. 부모가 예측 불허의 행동을 계속하면 아이들의 정신 구조가 불안정해지듯 조직도 마찬가지다.

상황·원인 단순화해 구성원이 할 일 명확히 제시


▎사진:© gettyimagesbank
리더도 인간인 이상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리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조직은 더 흔들린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찬찬히 읽어 볼수록 느껴지는 게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심란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젠가 경남 통영에 있는 한산도 수루에 가 본 적이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로 유명한 그 수루(망루)다. 수루에 올라가면 한산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적이 없을 때 그곳에 앉아보니 왜 그런 마음을 읊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바다로 밀려올 막강한 왜군과 중과부적으로 싸워야 하는 현실이 그의 마음을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불안을 혼자 삭힌 후, 병사들에겐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병사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줄 존재는 자신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폭풍이 몰려올 때 선장은 폭풍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선원들의 불안을 줄일 수는 있다. 조직의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조직을 흔드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한 후, 원인과 현황을 구성원들에게 설명하는 것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제시해야 한다. 상황 파악에는 평정심과 보는 눈(전문성)이 필요하다. 코로나19사태가 일어났을 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대응이 모범적이다. 그는 상황을 솔직하고 소상하게 밝혔을 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질문에 안정적이고도 막힘 없이 대답했다. 그가 대답할 실력이 안 돼 질문을 받지 않았거나 미흡하게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불안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덕분에(?) 그는 매일 국민에게 브리핑을 해야 했고, 눈에 띄게 늘어난 흰머리와 수척해진 모습도 같이 보여야 했다. 전문성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관료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줄 수 없어서였다. 얼마 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정 본부장을 영웅으로 꼽은 것도 이런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불안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만 해도 상당 부분 누그러진다.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 걸림돌인지 알 때 불안을 도전하는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입을 막고 숨긴다고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그럴수록 어딘가에 쌓여 있다 터지지 말아야 할 때 꼭 터져 상황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다.

특히 두 번째 단계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할 때, 유념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황을 단순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복잡한 상황을 ‘이건 이것이다’라고 단순화해 보여줄수록 조직의 상황 이해도가 높아져 힘을 허튼 곳에 쓰지 않을 수 있다. 뛰어난 리더일수록 카피라이터 같은 멋진 어록을 남기는 이유다. 이걸 못하면 헤매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리더)가 될 사람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행동해야 할 이유다.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은데 언젠가 한 자동차 판매회사의 2세 경영자가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갈수록 매출은 떨어지는데 간부들조차 저를 따르지 않는 난관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토로에 이나모리 회장이 이런 조언을 했다. “단순히 명령만 하는 게 아니라 왜 지금 이것을 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알아듣게 설득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모두 ‘그렇구나. 그럼 나도 한 번 해봐야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설득한 뒤에 명령해야 합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경영을 묻다] , 비즈니스북스)

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쉽게 인지한다. 하지만 ‘왜’를 깊이 있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눈앞의 급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반응하는 성향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수백만 년의 진화과정 동안 ‘왜’를 따질 필요가 거의 없었다. 저 앞에 있는 사냥감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기보다 잡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요즘 위기는 단순한 상황 대응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유를 알아야 헤쳐나갈 수 있다. 복잡성이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더구나 혼자 싸울 수도 없어 구성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군대와 그냥 잘 싸우라는 지시를 받은 군대, 어느 쪽이 더 잘 싸울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애매한 상황에도 합리적·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유도

셋째는 구체성이다. 1964년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 내에 달에서 쓸 차량을 만드는 팀이 있었다. 팀은 곧 곤란한 문제에 부딪쳤다. 달 표면 상태를 알아야 그에 맞는 차량을 만들 수 있는데 알 수가 없었다. 의견은 둘로 갈렸다. 수백만 년 동안 수많은 혜성에 부딪쳐서 사막의 모래처럼 부드러운 가루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날카로운 바위 및 골짜기로 돼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지금처럼 관측력이 좋지 않았기에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난관에 부딪쳐 오도가도 못 할 때 팀장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지구 황무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 맞게 차량을 제작하자고 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팀장은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엔지니어는 명확한 상황이 주어져야 일을 할 수 있다. 합리적인 구체성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줘야 엔지니어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가보니 실제로 그가 추론한 것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리더라는 자리는 이런 걸 하는 곳이다.

몇 년 전 방한한 미국 UCLA대학 앤더슨 경영대학원 리처드 루멜트 교수는 이 사례를 말하며 자신이 바로 이 팀에서 그 상사와 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어떻게든 갈 수 있게 만들라’라고 하는 건 제대로 된 리더십이 아니다. 어렵고 애매한 상황을 조금 더 명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리더십이다. 물론 100%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지는 것도 리더십이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은 게 이 구체성이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고 당황스러운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상황을 보는 눈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다. 알아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는 눈이 부족하다면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은 팀원과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 된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나누는 순간 리더십이 구멍이 생긴다. 이런 고민은 리더에게 숙명 같은 것이기에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걸 미리 고민해 적절한 시점에 알려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건 구성원들이 리더의 말보다 행동을 믿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 표정은 조직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려주는 상황판이나 마찬가지여서 리더가 아무리 ‘괜찮다’ 해도 표정이 일그러져 있으면 조직은 표정을 믿는다. 자신도 모르는 표정이 조직에는 어떤 신호로 전달된다. 상황이 심각할수록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다.

조직의 불안을 줄이는 세 번째 조건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상황이 급박하고 어려울수록 리더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능한 한 구성원들이 보이는 곳에 있을수록 좋고, 구성원들이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좋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맨 앞에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리더를 기준점으로 삼아 허튼 곳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의 CEO들이 웬만하면 자신들의 일정을 조직 내에 알리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들을 이끄는 리더가 뭘 하는지 알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뭘 해야 할 지 더 잘 알게 된다.

소모적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방안 찾는데 집중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네 번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요즘 위기는 복잡해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구성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지시할 때와 의견을 물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생각을 모아야 할 때는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의 절반 정도만 하는 게 좋다. 말할 때 모래시계나 시계를 놓고 시간을 재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불안을 만들어내는 내부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상황이든 사람이든 제거해야 한다면 가차 없이 그렇게 해야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디파이언스(Difiance)’는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에 대항해 싸운 벨라루스 유태인 이야기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렇듯 이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시작된다. 일단의 무리가 권력을 잡아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다.

이때 주인공 투비아 비엘스키는 주동자가 공개적으로 도전하자, 고민 끝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살해버린 것이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길 책임지는 동안은 내 명령을 따르도록 한다. 불평한다거나 딴 마음 품을 생각은 하지도 마.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다른 데로 가고 싶은 사람 있으면 지금이 기회야. (누가 있겠는가? 이 추운 겨울에!) 이 놈 몸뚱이는 숲 속에 던져서 늑대 밥으로 줘버려. 지금 당장!”

어떻게 됐을까? 분란은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비엘스키가 한 행동이 최선은 아닐 수 있지만 때로는 차선이 필요할 때도 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30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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