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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 조선사 매각 나선 국책은행] 수주 급감, 고사 위기에도 “일단 털고 보자” 

 

한진중공업 수주 0, 대선조선은 목표치 미달… “매각, 조선업 위기로 이어질 것” 지적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본점 전경.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중형 조선사 매각 추진에 나섰다.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을, 한국수출입은행은 대선조선을 각각 매물로 내놓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특히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 매각을 시작으로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물론 대선조선의 선박 수주가 메말랐고, 코로나19 사태와 유가 하락까지 겹쳐 있어 매각 성사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바빠진 국책은행이 중형 조선사 털기에 나선 것”이라며 “매각보다 경쟁력 강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중형 조선사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22일 한진중공업 주주협의회(국내 채권 금융기관)가 보유한 출자 전환 주식에 대해 공동매각 추진 방침을 정했다. 매각 대상 주식은 국내 주주협의회와 필리핀은행 등이 가진 한진중공업 보통주 6949만3949주로 총 지분율은 83.45%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매도자 실사 등을 거쳐 올해 하반기 매각 작업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던 한진중공업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 출자 전환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 지 1년여 만에 매각 절차를 밟게 됐다.

선박 수주 말랐지만, 실적 좋으니 매각?


수출입은행은 중형 조선사 대선조선 매각을 이미 구체화했다. 수출입은행은 대선조선 매각 주관사로 회계법인 삼일PwC를 선정, 지난 4월 초부터 매각 정보를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조선업 유관업종 전략적투자자(SI)에 보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5월 중 매각 관련 입찰공고를 내고 입찰 제안서를 받는다는 방침이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말 성동조선해양 매각을 마무리한 만큼 대선조선 매각을 통해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을 끝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IB) 관계자는 “외국 업체로의 매각도 열어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의 실적 개선이 국책은행이 매각을 추진하는 근거가 됐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 771억원을 기록하며 2018년 660억원 영업손실을 낸 지 1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뤘다. 수출입은행이 관리해 온 대선조선은 2017년 279억원 영업적자에서 2018년 41억원, 2019년 113억원으로 흑자전환을 이룬 것으로 집계됐다. 국책은행 내 기업 구조조정 관계자는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어 매각을 추진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면서 “언제까지고 국책은행 아래 둘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국책은행의 중형 조선사 매각 추진 뒤에 중형 조선사 털어내기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적 개선에 따른 매각 추진이라는 국책은행의 설명과 달리 실제 상황은 다르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진중공업 조선부문은 2018년 3897억원 적자를 냈고 지난해 재차 18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향후 매출 기반이 되는 선박 수주는 더 심각하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중형 조선사 물량으로 잡히는 길이 100m 이상이나 10000DWT(재화중량톤수, 선박이 실을 수 있는 화물 중량)급 이상 또는 이에 상응하는 강선 수주를 따내지 못했고, 해군 고속상륙정 등 특수선 수주에 머물렀다.

대선조선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선조선은 수출입은행 관리 8년 만인 2018년에야 흑자로 전환했다. 그러나 신규 수주 물량이 확보되지 않아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대선조선 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조선은 목표 수주량(12척)에 못 미치는 5척 수주에 그쳤다. 대선조선 노동조합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은 선박을 수주할 때 특정 금액 이하로는 받지 못하게 해 수주 자체를 어렵게 했다”면서 “최소 10척 이상은 수주해야 운영이 가능한 데 당장 숫자가 좋아졌다는 이유만으로 매각을 추진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의 중형 조선사 매각에 따른 조선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선박 수주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중형 조선사 인수가 선박 건조 지속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어서다. 예컨대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 부지 개발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앞서 산업은행이 한진중공업 매각을 공식화하자 시장 관심은 보유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다. 과거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 부지 매각을 검토하기도 했다. 김영훈 경남대 교수(조선해양IT공학과)는 “영도조선소 개발 논의는 꾸준했다”면서 “현 상황에서의 매각은 부동산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불거진 코로나19 사태도 조선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유가 하락까지 겹치며 수주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위원은 “지난해 전세계 중형 선박 발주량이 전년대비 46.7% 감소한 속에서 중형 조선사를 인수해 선박 건조만을 바라볼 곳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233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배의 화물 총중량에 여러 가지 선종별 계수를 곱하여 선박 건조량을 나타내는 톤수)로 전년의 810만 CGT 대비 70%가 줄었다.

경쟁력 악화 우려 속 정부와 엇박자까지


국책은행의 중형 조선사 매각에 참여해 조선업을 지속할 수 있는 선박 건조 주력 업체도 거의 없는 상태다. 국내 빅3 조선사 중 2곳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합병에 집중하고 있고, 삼성중공업은 코로나19로 불거진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유가가 하락하면 원유 생산을 위한 해양플랜트와 원유·가스를 시추하는 드릴십(원유시추선) 등의 발주가 줄어든다. 실제 지난 2015년 저유가 기조로 연평균 330억 달러 규모였던 해양플랜트 시장이 52억 달러로 대폭 줄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이 드릴십 재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국책은행의 이번 매각 추진은 정부와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부터 중형 조선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금융 지원 등을 담은 연구용역 결과는 올해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용역에 참여하고 있는 한 조선업계 전문가는 “정부 차원의 중형 조선사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정부가 소유한 국책은행은 매각을 추진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중형 조선사는 국내 조선산업 허리로 중형 조선사 붕괴는 조선산업 전체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33호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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