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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다툼] 中 대외영향력 확대는 ‘달러화 패권’에 위협 

 

코로나19로 영향력 커져… 국제통화질서 변혁기 수혜자 위안화 주목

▎사진:© gettyimagesbank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는지 모른다. 잰 걸음으로 보였던 사회의 변화를 코로나19가 등장해 시쳇말로 중간 단계를 순삭(瞬削, 순간 삭제)하고 몇 년을 앞당긴 것처럼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다툼도 어느 순간 급변할 수 있다. 미국은 국내 문제로 시선을 좁혀 들어가며 국제 질서에서 역할을 줄이는 반면, 중국은 미국의 빈자리를 차근차근 메우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기존 선진국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중국의 행보에 속도를 늦출지언정 가로막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은 다른 신흥국과 저개발국에 오랜 세월 공을 들이며 우군을 확보해 왔다. 결속이 느슨해진 유럽에도 파고들어 대(對) 중국 경제 의존도를 인질로, 그들을 서서히 길들여가고 있다. WHO 등 국제기구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중국 주도로 새로운 기구를 창설하며 다른 국가들을 포섭해 왔다.

세계 경제 위기 때마다 도약한 중국


중국은 세계 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기회로 삼으며 도약해 왔다. 이번에도 코로나19를 먼저 겪고 성공적 방역을 해낸 것으로 프레임을 만든 뒤 전 세계에 원조의 손길을 뻗쳤다. ‘병 주고 약 준 셈’이지만 중국의 조직적인 대응과 영향력은 병을 퍼트린 과정에 대한 책임론을 무색하게 하는 한편 약을 준 공로를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을 띄우고 있으나, 이에 적극 동참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그나마 4월에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발원지와 중국의 초기 대응에 대한 국제 조사를 제안했지만, 중국은 곧바로 위협에 나섰다. 호주 주재 중국대사는 호주산 소고기와 와인 등의 불매를 언급하며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도록 대외적인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반전이 생기지 않는다면 미래에 중국은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국가는 내부적으로 체계를 세우고 강제관할권을 행사하며 국가를 운영하는 반면, 상위의 절대적 존재가 없는 국제 관계에서는 합의와 약속을 통해 국제 질서를 형성한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이 국제 질서에서 룰메이커(rule maker)로 올라서, 국제 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단지 부유한 국가가 되는 것만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국제 정치에서 약자는 강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으며, 강자의 이익과 약자의 이익이 충돌하면 강자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는 것이 생리다. 현재의 국제 질서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중국의 눈부신 부상은 힘의 균형에 변화를 주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면서 서구와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한때 약자였던 중국은 이제 국제 관계에서 공세적인 입장을 강화하는 추세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달러화 중심의 현재 국제통화 질서도 중국에게는 타파해야 할 목표이며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장기적 과제다. 국제통화 질서는 불변의 법칙이 아니기에 변화는 별안간 닥칠 수 있다.

지난 20세기에는 3차례에 걸쳐 국제통화질서가 붕괴되었다. 1914년에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1939년에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1971년에는 미국이 달러화에 대한 금태환(금과 화폐를 교환하는 것) 포기를 선언하면서 혼돈의 시기를 거쳤다. 특히 달러화의 금태환 포기 충격 여파로 1978년에는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이를 구출했던 것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다.

물론 중국 자본시장의 발전과 개방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국제통화 질서의 변혁기가 닥쳤을 때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하기에는 성숙하지 않은 상황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탈환하지 못하고 과도기를 거치며 다른 형태가 될 수 있다. 특정 국가의 통화가 아니라 신뢰받는 몇 개의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으로 구성된 제3의 통화 형태(SDR 특별인출권 등)가 기축통화 역할을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또 기존에 시행된 여러 형태의 금본위제와는 다르게 변형된 체계의 금본위제 회귀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내어 놓을 시점에는 금융시장의 시선은 반대로 그 수혜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주목할 것이다. 위안화는 당장 달러화를 대체할 기축통화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수혜를 입을 통화로 지목될 가능성은 높다. 우리가 명심하고 대비할 것은 미국과 달러화의 위상은 영원할 수 없으며 도전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 미국이 누렸던 압도적인 힘의 우위도 언젠가는 퇴색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 어떤 형태가 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대비할 필요는 있다.

이미 중국은 글로벌 벤치마크에 중국의 주식, 채권을 편입하는 데 성과를 냈다. 글로벌 자본이 추종하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주가지수 및 바클레이즈 채권지수에 중국의 자산들이 편입되는 중이다. 따라서 중국 자본시장에 글로벌 자본의 유입 흐름에 올라타는 것도 개인투자자에게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에는 기존의 추세가 더욱 추진력을 얻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 뜻에 거스른 상대국 경제 제재에 달러화 패권을 적극 활용하면서 상대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달러화 패권의 남용은 곧 우회로를 찾는 유인이 된다.

달러 패권 훼손하는 미국의 자충수

또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서 탈퇴한 미국은 다자간 합의를 무시하고 국내 셰일(shale) 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에너지 산업 지원을 지속할 것이다. 이는 현재 미국이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올라서고 에너지 자급이 가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한데, 결국 중동에 대한 미국의 관여도를 줄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시스템에까지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중국은 여기에 대비해 2018년부터 상하이에서 위안화 기반의 원유 거래를 시작하고 활성화시켰다.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페트로 달러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결제할 때 어떤 통화로 할 지,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떤 통화로 자금을 차입할지 어떤 통화의 자산에 투자할지는 시장의 선호와 관례에 기반하고 있다. 이 관례는 경제력과 외교력의 우위를 통해 미국이 얻어낸 것이다. 중국은 이 관례를 뒤집을 능력을 언젠가 갖출지도 모른다. 달러화 패권이 상당 기간 굳건하겠지만 변화의 순간이 언제 닥칠지는 모를 일이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36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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