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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마지막 업무는?] ‘특혜법으로 통신사 챙기기’ 

 

규제 풀고, 보호법 만들고… “통신 공공성 포기” 비판도

20대 국회가 막을 내렸다. 극한 대립으로 몸싸움까지 일으켰던 ‘동물국회’, 일은 하지 않은 ‘식물국회’ 등 역대 최악의 국회로 지적 받는 20대 국회의 마지막 작품은 ‘통신사 챙기기’였다. 지난해 말부터 20대 국회 종료 직전까지 각종 통신사 ‘특혜법’을 통과시키며, 통신사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수혜를 본 기업은 SK다. SK는 5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얻게 됐다.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이다. 기존에는 통신사(ISP)가 인터넷망 유지와 품질 관리를 책임져야 했는데, 이제는 인터넷 망을 이용하는 콘텐트 사업자(CP)도 책임을 나눠 갖도록 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회기 수혜자는 SK


개정안에는 네이버 등 부가통신사업자가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넷플릭스 등 해외사업자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이 법은 넷플릭스나 구글 등 콘텐트·플랫폼 업체가 인터넷 망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이용료는 제대로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동안 SK브로드밴드는 “콘텐트 사업자도 망 품질을 유지하는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고, 넷플릭스는 “ISP가 인터넷망을 통해 콘텐트를 소비하는 이용자들로부터 이용요금을 받으면서 콘텐트 업체에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중과금”이라며 맞선 상황이었다.

문제는 논란이 첨예한 시점에서 국회가 일방적으로 망 사업자 편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통신사 논리를 따른다면 소비자가 해외에서 네이버로 프로야구를 볼 경우 해외 망사업자가 네이버에 망 사용료를 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서울 한 대학의 소비자학과 교수는 “콘텐트 사업자가 망사용료를 내기 위해 이용료를 올린다면 결국 소비자만 두 배로 통신비를 부담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가 받은 혜택은 또 있다. 통신요금인가제 폐지다. 통신요금인가제는 1위 통신사업자가 요금제를 내놓으려면 반드시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국내 통신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는 SK텔레콤이 대상이었는데, 이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신고제로 바뀌면 SK텔레콤이 내놓는 요금제를 정부가 15일 안에 문제 삼지 않는 이상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이 법은 인가제가 통신사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에 발의됐다. SK텔레콤이 새 요금제를 내놓으면 인가 심사가 진행되는 2~3개월 동안 KT, LG유플러스가 비슷한 요금제를 따라 만든다는 것이다. 규제 탓에 오히려 요금 하한선이 생기고, 다양한 서비스 출시를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법이 통과되자 SK텔레콤 측은 “통신사들의 경쟁이 치열해 무작정 요금을 올릴 수 없다”며 “다양한 요금제를 통해 소비자에게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반발하고 있다. 인가제 폐지로 요금 급등을 막을 장치가 사라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오픈넷 등은 논평을 내고 “요금인가제 폐지 법안은 정부와 국회가 국민 필수품인 이동통신서비스의 요금 결정 권한을 완전히 이통사에 넘겨주는 ‘이동통신요금 인상법’이자 ‘통신 공공성 포기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은행법은 KT 위한 핀셋 법안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2019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보고서’를 보면 국내 통신사들의 경쟁은 활발하지 않다. 2018년 말 알뜰폰을 제외한 국내 이통사의 가입자 점유율은 SK텔레콤 47.3%, KT 29.8%, LG유플러스 22.9%였다.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1, 2위 사업자 점유율 격차 평균보다 5.4%포인트 높다. 박경신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이동통신 요금과 인터넷 가격은 그대로 두고 통신사를 위한 규제만 완화한 것은 특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KT는 통신업이 아닌 은행업 규제 완화로 혜택을 봤다. 지난 4월 통과된 인터넷 은행법은 사실상 ‘KT 특혜법’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KT가 국내 1호 인터넷 은행인 케이뱅크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8년 8월 인터넷전문은행에 산업자본의 참여를 일부 허용 하면서 비(非)금융산업자본도 인터넷은행 지분을 34%까지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막는 ‘은산분리’ 원칙을 깨면서까지 KT가 케이뱅크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KT가 과거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전력 탓에 금융위원회의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일이 꼬였다.

그러자 국회가 나섰다. 지난 3월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한도 초과 지분 보유 승인 요건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을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개정안’을 내놨다. 그래도 ‘KT 특혜법’이란 비난을 받으며 부결되자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중 ‘담합’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KT가 공정거래법상 담합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던 걸 고려하면 사실상 KT를 위한 핀셋 법안이었던 셈이다.

당시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불과 55일 전 본회의에서 부결된 특례법 수정안과 취지가 같은 법안을 또다시 본회의에 상정시키는 것은 비정상적·비상식적 시도”라며 “20대 국회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집어 국회 권위를 깎아 먹는 부끄러운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채이배 의원도 “공정거래법상의 가장 악질적인 위반 행위인 담합에 대해서 오히려 대주주 자격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은행을 거의 범죄기업에 맡기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KT는 개정안이 통과되자 “KT가 보유한 케이뱅크 지분 10%를 자회사인 BC카드에 모두 넘기고, BC카드가 케이뱅크 대주주로서 자본금을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유플러스도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등으로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견해도 있다. 사실상 SK가 주도하는 통신시장에 편입되면서 ‘판 흔들기’ 전략이 효과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LG유플러스는 자사 IPTV에 넷플릭스 콘텐트를 독점 공급하며 효과를 봤다. LG유플러스의 IPTV 이용 고객은 리모컨 버튼을 통해 바로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IPTV 첫 화면에서 넷플릭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난해 LG유플러스 가입자는 약 45만명 늘었고, IPTV 매출도 1조원을 넘어섰다. 콘텐트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고착화된 인터넷 시장 점유율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망 사용료 논란이 점화되면서 LG유플러스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와 보호법을 통해 통신사들이 얻는 이익이 늘었지만, LG유플러스 입장에선 당분간 KT나 SK를 치고 나갈 동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37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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