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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블랙록 경고장 받은 한국전력] ‘석탄 투자 중단’ 지적에도 투자 강행? 

 

2016년 7월 이후 주가하락 지속… 이사 선임 반대 등 주주행동도 예고

▎‘월스트리트의 제왕’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본사 전경 /사진:블랙록 홈페이지
한국전력이 연간 8500조원(2019년말 기준 7조4300억 달러)을 움직이는 ‘월스트리트의 제왕’ 블랙록의 투자 대상 기업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다.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4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전력을 향해 “석탄 투자는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계획”이라며 투자 중단을 경고했다. 특히 블랙록은 지난 1분기 800개가 넘는 투자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평가한 후 한국전력을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기업’으로 선정했다.

금융업계는 블랙록의 한국전력 투자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후리스크는 곧 투자리스크’라는 블랙록의 투자 기조에 한국전력이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전력은 미래 전력 시장 개편에 대한 더딘 대응 등으로 주가 하락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력 주가는 2016년 7월 6만1000원대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떨어져 6월 23일 기준 2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블랙록 “석탄 투자 명확한 전략적 근거 내라” 요구


한국전력은 투자 확보 및 주가 부양을 위해 5개년 경영계획을 내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에너지 전환, 온실가스 감축,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라는 핵심 실천 목표를 정하고도 해외 석탄 투자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라는 블랙록의 분석이다.

블랙록은 한국전력에 석탄에너지 투자에 대한 명확한 전략적 근거를 제시하라는 요구까지 전달했다. 지난 4월 블랙록은 “한국전력 최고경영자(CEO)에게 연락해 석탄에너지 투자에 대해 명확한 전략적 근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한국전력이 베트남 붕앙 지역과 인도네시아 자와 지역에 각각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질문인 셈이다. 한국전력 역시 블랙록으로부터 해외의 새로운 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투자 수익 구조 공개를 요구하는 서한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블랙록의 근거 제시 요구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투자 철회를 염두에 둔 서한에 한국전력은 ▲국가 에너지 정책상 석탄화력이 현실적인 대안인 국가 중, 초초임계압(USC) 등 최신 저탄소 기술 적용과 국제 환경 기준을 준수하는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이드라인 상 수출금융 지원이 가능한 사업인지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 등과 공동 진출이 가능한지 ▲사회공헌과 환경보호 활동 투자로 현지 수용성 높이는 사업인지 등에 대해 검토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추진하는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들은 모두 이 조건에 부합한다는 답만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은 현재 전력 시장의 변화를 완전히 잘못 읽고 있다. 한국전력이 블랙록에 내세운 조건을 면밀히 살펴보면, 한국전력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중단돼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인도네시아 정부는 석탄 화력을 유일한 대안으로 보고 있지 않다. 지난 2월 아리핀 타스리프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은 20년 넘게 가동해온 15개 석탄발전소를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2028년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가 석탄발전보다 저렴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기술 향상과 정부 지원정책에 따라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석탄을 태우는 것보다 낮아지기 때문에 더 이상 석탄발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석탄 매장량에서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도네시아 상황을 고려할 때, 현지 정부의 이번 발표가 국가 에너지 정책에서 얼마나 큰 변화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는 중장기 전력수요 예측의 실패로 인해 현재 예비전력율이 적정 수준을 크게 웃도는 에너지 설비 과잉 상태다.

또 석탄 사업을 벌이면서 ‘환경보호’를 거론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한전은 현지에 발전소를 건설할 때 ‘최신 저탄소 기술’인 초초임계 기술을 적용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이제까지 해외에 건설한 발전소의 오염물질 배출과 비교하여 단지 10~15% 정도만 줄어들 뿐, 여전히 심각한 오염물질을 뿜어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20년 현재 석탄보다 대기오염 물질이 훨씬 덜 나오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절반 수준인 천연가스 발전소도 투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초초임계’라는 이름만 거창할 뿐이다.

석탄발전소가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인해 발전소 인근 주민이 입는 건강상 피해도 상당하다. 한국 공적금융기관이 투자한 해외 10개 석탄발전소가 인근 주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린피스가 분석한 결과, 연간 최대 5000명의 조기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발전소 평균 수명이 30년임을 고려하면, 사망자는 최대 15만명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피해 때문에 지난해 인도네시아 현지 주민들은 자국 법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법원에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짓지 말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척하며 현지에서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내세우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전력이 내세운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함께 관련 사업에 진출한다는 조건은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 이 사업은 한국 건설사는 발전소의 건설 공사를 맡고, 공적금융기관은 사업 자금을 대여해 주는 방식이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발전회사는 20년 넘게 발전소를 운영하고 관리한다. 한전은 지분 투자를 통해 사업 전반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고부가가치 투자개발형 사업 수주를 확대하고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는 것인데, 이는 심각한 판단 착오이며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확률이 대단히 높다.

유럽 전력회사들은 화석연료 기반 발전 사업을 접고 있다. 주가 하락을 이미 겪었고, 석탄발전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린피스가 2019년 전 세계 석탄발전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석탄발전 설비의 증가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들(신규착공, 건설 허가 취득, 허가 전 추진 단계 등)은 4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석탄발전소 가동률은 51%에 불과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며 세계 주요 은행 및 보험사 126곳은 석탄에 대한 규제를 확대했다. 33개 국가 및 27개 지방 정부는 석탄에 의존하지 않고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손실 지켜볼 수 없다” 이사선임 반대 등 주주행동 예고

현재 석탄화력발전은 좌초자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전력 석탄화력발전소 투자는 더 심각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사양산업에 세금을 동원하는 것이다. 석탄 사업에 투자된 비용은 장기적으로 수익 전환이 어려워,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 자명하다. 한국전력 및 자회사에 투자한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기준 이미 약 9000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전력 및 발전 자회사가 석탄 중심 발전 시장에 고착해 있는 데 따른 결과다.

전 세계에서 석탄화력발전은 온실가스 문제로 가동률이 낮아지고, 조기 폐쇄 대상이 되고 있는 투자 위험이 아주 높은 사업이다. 블랙록이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계속하는 한국전력을 향한 투자 축소를 밝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블랙록은 당장 필요하다면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등 주주행동까지 취할 수 있다고까지 경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권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내 유일의 전기판매 사업자는 글로벌 최대 운용사의 투자를 받지 못할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

-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yeonho.yang@greenpeace.org

1541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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