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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후견지명(後見之明) 함정에 빠지지 말자” 

 

지나친 낙관주의와 과도한 비관주의 버리고, 건전한 회의주의로 중무장

“사실 코로나19 사태도 미리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참석한 한 언론사 행사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한 얘기다. 정치인들이 대개 경제문제나 사회현상을 해석할 때, 자기 편의적 정파 편의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발언은 한마디로 ‘오버’ 그 자체다. 심리학적 표현을 빌자면, ‘후견지명(Hindsight)’의 전형적인 사례다. 앞일을 간파하는 선견지명(Foresight)과 반대로 후견지명은 어떤 일이 터진 뒤 소위 ‘내 그럴 줄 알았어!’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일의 결과를 알고 나면 모든 것은 명료해지는 법. 결과를 알고 있으니 그것에 맞춰 원인을 역추적해서 다시 판단하니 틀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려

우리는 후견지명을 일상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참사가 발생하면, 언론에서는 한결같이 ‘인재(人災)’라는 표현을 쓴다.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사람들이 잘못 판단해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직장 상사 중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말이야’라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내가 예전에 해봤기 때문에 당신은 지금 일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후견지명은 흔하게 발견된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경제학자와 같은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비판에 직면했다. 논조는 이랬다. ‘내가 보기엔 이런 위기는 언젠가는 발발할 것이 뻔했는데 그것 하나 맞추지 못하면서 당신들이 무슨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투자상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도 주가가 급락해 큰 손실을 기록하면 후견지명으로 무장한(?) 투자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곤 한다. 자신이 보기에도 당연히 주가가 떨어질 것 같았는데 투자 전문가가 그것도 모르고 운용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국회의원에게 물어보자. ‘의원님,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할 것이라고 예측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럼 그 증거를 보여 주세요’. 아마, 아니 분명 없을 것이다. 시사평론가들에게도 물어보자. ‘자연재해가 정말 인재(人災)인가요? 인재라는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계셨나요? 그리고 정말 자연재해가 이렇게 크게 날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들은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해 봤다’는 직장 상사들에게도 질문해 보자. ‘당신이 20년 전에 한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일을 한다면, 정말 좋은 결과가 있을까요? 20년 전에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도 없었어요. 시대와 환경이 이렇게 다른데도 당신 말을 듣고 똑같이 일한다면 성과가 좋을까요?’.

진화심리학자들은 후견지명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지적한다. 몇몇 ‘꼰대’들에게만 발견되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에 내재된 편향(bias)이라는 것. 인간은 생존을 위해 미래를 예측하려 노력하지만 미래를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미래를 알기 위해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을 토대로 판단하고 예측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현재 발발한 일을 자신이 예전에 제대로 판단한 것처럼 꿰 맞추는 후견지명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이 발발했던 시점을 단면(斷面)으로 보면, 이런 후견지명이 설 자리는 없다. 자신의 돈이 걸린 투자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설 자리가 없다. 정말 ‘그럴 줄 알았다면’, 그는 이미 부자가 돼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치고 부자가 된 사람은 많지 않다. 사례를 들어 보자. 필자의 지인 중에 1997년 외환위기가 발발한다면 무조건 삼성전자 주식을 살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1등 기업인 삼성전자가 망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끝장나는 것이니 큰 위기가 오면 삼성전자에 베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 20여 년간 여러 차례 위기가 왔고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한 순간이 다가왔지만 단 한 번도 베팅한 적이 없다. 말(言)로는 하늘도 옮길 수 있는 것처럼 말로는 모두 뛰어난 투자가인 것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이처럼 돈 버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게 보인다. 삼성전자를 사고, 강남 아파트를 매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판돈을 걸어야 하는 순간에 베팅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측은 불확실성을 포함하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면 명백해 보이는 것도 그 순간에는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순간에 직면한 인간은 감정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탐욕·기대감·두려움·공포 등등. 어떤 인간도 불확실한 순간에 이런 감정을 피할 수 없다. 여러 감정 중에서 투자에 특히 독(毒)이 되는 것이 ‘무모한 낙관주의’와 ‘과도한 비관주의’다.

절대성보다 상대성이 중요해

무모한 낙관주의는 지나치게 판돈을 많이 걸게 만들고 이는 자칫 큰 손실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반대로 과도한 비관주의는 판돈을 너무 적게 걸어, 그 결과로 초라한 수익만을 챙기게 한다. 한쪽은 잃어서 문제고, 다른 한쪽은 못 벌어서 문제다. 최악의 조합은 이 두 가지가 만나는 것이다. 무모한 낙관주의로 인해 크게 돈을 걸었다가 손실을 입은 후 과도한 비관주의에 빠져 싸게 사야 할 때 못 사는 경우다. 이 경우는 돈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는 돈을 벌지도 못한다.

무모한 낙관주의와 과도한 비관주의 중에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무모한 낙관주의다. 왜냐하면 무모한 낙관주의에 빠지면 큰돈을 잃을 수도 있지만 과도한 비관주의에 빠지더라도 그럴 일은 없어서다. 물론 초라한 예금이자에 만족해야 하지만 말이다. 투자에서는 적정 수준의 비관주의가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적정 수준의 비관주의는 다른 표현으로 ‘건전한 회의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회의주의자는 지식의 확실성을 의심한다. 절대성보다 상대성을 더 중시한다. 반증(反證)을 통한 과학적 태도를 견지한다. 과학의 위대함은 그 어떤 위대한 이론도 반증의 순간과 직면하면, 그 권위를 내려놓는데 있다. 때문에 건전한 회의주의자는 지적으로도 유연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낙관주의가 유리하다. ‘낙관주의자는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에서 어려움을 본다’는 말처럼 낙관주의는 도전의식을 고취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쫓게 만든다. 뛰어난 기업가들 중에는 낙관주의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사정이 다른 듯하다. 일류 투자자들은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나빠질 경우를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투자처를 만나도 한번쯤 문제가 될 것이 있는가를 가늠해 본다. 일부러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완벽한 투자 결정이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인생도 이런 회의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태도는 낙관주의지만, 투자 결정은 비관주의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월가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었던 존 템플턴 경은 인간의 무모한 낙관주의와 과도한 비관주의를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며 낙관 속에서 성숙해서 행복 속에서 죽는다’. 시장이 어두워 앞이 깜깜하더라도 너무 비관주의에 빠지지도 말 것이며, 강세장이라고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얘기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41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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