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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OS 주도권 놓고 경쟁 소용돌이] 제조·전장·IT 오픈소스 생태계 각축 

 

합종연횡에서 독자생존으로… 현대차·LG전자, 리눅스 기반 OS 개발 나서

▎애플은 자동차 OS를 비롯해 자체 SW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독자 칩 개발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아이폰11시리즈에 탑재된 ‘A13 바이오닉’ AP칩. / 사진:유튜브 캡처
‘탈(脫) 인텔’은 지난 5~6년 전부터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정보 혁명이 가속하면서 기업들의 인텔 중앙처리장치(CPU) 의존도가 나날이 커져서다. 인텔은 자신이 그린 미래상에 따라 CPU를 개발하고, ICT 기업들은 이에 맞춰 소프트웨어(SW)와 운영체제(OS)를 개발해야 했다. 안정성과 호환성, 속도 등 측면에서 인텔을 대체할 만한 기업은 오랜 기간 등장하지 않았다. ICT 기업들이 OS·시스템 개발을 위해 인텔 등과 연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자체 OS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스마트폰을 넘어 자동차·가전기기, 심지어 발전기기로까지 확대하고 있어 자사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레이스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 자동차 분야에서는 ICT기업·제조사·전장회사 간에 연대가 대부분 끊어지며 무한경쟁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숙제였던 탈 인텔 현상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애플은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열린 연례 개발자대회(WWDC)에서 인텔에 반기를 들었다. 15년간 이어온 인텔과의 ‘칩 동맹’을 끝낸다는 것으로, 애플은 앞으로 아이폰·아이패드·PC 등에 자체 설계한 칩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이 내놓는 ‘애플실리콘’이란 CPU는 ARM의 설계자산(IP)을 이용했으며, 아이폰과·맥(PC)에 최적화된 성능과 효율을 지녔다. 애플실리콘이 별문제 없이 시장에 안착한다면, 애플은 하드웨어(HW)와 SW를 통합 운영하는 유일한 기업이 된다.

사용자 편의 높이고, 정보전달·생태계 확장


▎자율주행 등 신기술의 발달로 자동차 제조·전장·IT 기업 간에 OS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시연 모습. / 사진:현대차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WWDC에서 “맥에는 거대한 도약이 될 역사적인 변화”라며 “HW·SW의 통합은 애플의 핵심이다. 이번 결합으로 애플실리콘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애플은 이날 아이폰을 BMW의 자동차 키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공개했다. 아이폰·애플워치를 착용한 뒤 차량을 열거나 시동을 걸 수 있는 기능이다. 올해 7월 이후 생산되는 차량부터 이 기능을 적용한다.

애플은 2014년 최초의 차량용 제어 서비스인 ‘카플레이’를 적용하는 등 사업 초기부터 BMW를 자동차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애플은 자동차용 OS 개발을 위해 제조사들에 API 공개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애플에 손을 내민 BMW와 손을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자동차와 통신 서비스를 연결해 편의성을 높인다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애플은 내년 출시되는 BMW의 순수 전기차 i4에 애플 지도를 이용한 새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애플의 자동차 OS 수요가 커지면, 아이폰 iOS 생태계처럼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고, 자체 개발한 CPU 판매를 늘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양대 축인 안드로이드의 운영사 구글도 자동차용 OS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운전자가 스마트폰 조작 없이 구글 어시스턴트를 통해 기존 자동차용 OS 안드로이드 오토를 경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을 공개한 바 있다. 캘린더에 등록한 일정대로 구글맵이 안내하고 자주 듣는 음악을 틀어주는 등의 사용자 편의도 높였다. 구글은 자사의 자동차용 OS를 올해 말까지 전 세계 약 10억대 이상 차량이 이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플이 자사 중심의 닫힌 생태계를 지향하는 데 비해 구글은 많은 개발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푸시아’라는 모바일 OS를 내놨는데, IoT 기기에 적합한 임베디드(PC 이외의 장비에 사용하는 칩)는 물론이고 PC·스마트폰으로 확장할 수 있다.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어느 제조사든 사용할 수 있고, 자동차는 물론 무인자판기·무인세탁기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OS를 보면 80% 이상이 전화 통화와 관련 없는 기능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OS도 80%는 이동과는 무관한 엔터테인먼트 등 정보 전달 용도로 사용될 것이며, 구글의 결정처럼 열린 생태계가 유리할 거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ICT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OS개발 역량이 뒤지는 자동차 제조사들도 개발 역량을 높이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현재 10%인 자동차 SW 개발 점유율을 2025년까지 60%까지 확대하고,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도 설계한다. 폴크스바겐은 올 1월 자동차 SW를 개발하는 ‘카소프트(Car.Software)’란 독립 조직을 출범시켰는데, 2025년까지 개발인력을 1만 명까지 확충할 방침이다. 더불어 오픈소스 OS 생태계를 꾸려간다.

폴크스바겐, 2025년까지 개발자 1만명 확보

폴크스바겐의 디지털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담당 이사 크리스찬 센거는 지난 6월 21일 한 외신 인터뷰에서 “오픈소스 접근 방식으로 자동차 회사가 개발하는 SW 기반 자동차 OS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제조사들은 OS 최적화와 데이터 관리, 콘텐트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구글·애플과 같은 IT 공룡과는 거리를 두고 자체 생태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OS를리눅스 기반으로 개발한다. 현대·기아차는 구글 안드로이드, 블랙베리 QNX 등의 OS를 사용해왔지만, 자체 OS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전장 회사도 자동차 OS를 별도 개발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자율주행시대를 반영해 하만과 손잡고 디지털 자동차 실내공간인 ‘디지털 콕핏’을 매년 공개하는 등 전장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올 초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Luxoft)와 손잡고 차세대 자동차 분야에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LG전자의 웹OS오토는 리눅스 기반으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을 지향한다. LG전자도 개방형 플랫폼을 바라보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한 기업들은 시간이 지나면 의존도가 커지는 부작용을 겪었으며, 이는 확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됐다”며 “이런 문제 극복을 위해 자동차 제조사 역시 자체 OS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42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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