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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푸틴의 종신집권과 러시아의 운명]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개헌안 

 

스탈린보다 긴 푸틴 철권통치, 러시아 경제부흥에도 통할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001~2016년 회담·연설·기자회견 모습들을 조합한 사진이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끝난 다음날인 7월 2일 등장했다. / 사진:AFP=연합뉴스
러시아에서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이뤄졌던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통과됐다고 러시아 연방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7월 2일 발표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개헌안은 전체 러시아 유권자 1억918만1263명의 67.88%(7410만8049명) 참가에 투표자의 77.92%(5774만3820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반대는 21.27%(1575만9500명), 무효는 0.82%(60만4729명)로 집계됐다. 러시아 연방을 이루는 22개 공화국, 46개 주, 9개 변경주, 1개 자치주, 4개 자치구, 3개 연방시 등 85개 연방주체 가운데 북극해에 접한 인구 4만2000명의 네네츠 자치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찬성이 더 많이 나왔다. 중앙선관위는 원래 7월 1일 하루에 국민투표를 치르려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투표자를 분산한다며 투표 기간을 1주일로 연장했으며 이는 투표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역에선 전자투표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번에 통과한 개헌안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현 임기가 끝나는 2024년 대선 이후 대통령에 두 차례 더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이 두 차례를 초과해 연속으로 임기를 맡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헌은 푸틴이 현 임기를 포함해 기존에 맡았던 재임 횟수를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도록 제외하는 내용을 담았다.

2000년과 2004년 임기 4년의 대통령에 당선했던 푸틴은 이 규정 때문에 2008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고 대신 정치적 동지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나서게 했다. 메드베데프는 당선해 4년 임기를 마쳤다. 메드베데프의 대통령 임기 동안 푸틴은 실세 총리로서 국정을 함께 수행했다. 그동안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연장됐다. 러시아 헌법이 3연임만 금지하지 한번 쉰 다음 다시 출마하는 것은 막지 않기 때문에 푸틴은 그 뒤 2012년과 2018년 대선에 출마해 연속 당선했다. 현재 임기는 2024년까지 이어진다.

푸틴을 위한 개헌안으로 장기 집권 발판 마련

그런데 푸틴은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자신이 기존 재임했던 임기를 제외하는 독특한 내용의 개헌안을 제안했다. 푸틴이 2024년 이후에도 대통령에 적어도 두 차례 더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개헌안이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해 2024년까지 24년의 임기가 보장된 푸틴이 이번 개헌을 통해 그다음 대선에서 당선만 하면 12년을 추가로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계속 당선한다면 푸틴은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연속으로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푸틴 대제’의 장기집권 길을 열어주는 개헌안이다. 푸틴의 지지율은 2000년 대선에서 53.9%, 2004년 71.31%을 기록했으며 2012년 복귀 대선에서는 63.1%로 약간 떨어졌다가 2018년 76.7%로 다시 치솟았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에서 얻은 77.92%의 지지율은 사실상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차후 대선도 현재로선 큰 도전 없이 치를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푸틴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열어준 것이나 진배없다. 참고로 유엔 인구 개발 프로그램이 지난해 12월 10일 공개한 ‘2019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평균 수명은 여성 77.6세, 남성 66.9세에 전체 평균 72.4세다.

이번 개헌안 국민투표 통과로 푸틴은 무려 36년을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열쇠를 받았다. 정치적 권위주의가 판치던 소련에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권좌를 지킨 지도자는 없다. 푸틴은 2연임만 가능한 헌법 조항은 그대로 남겨 자신의 후임자는 장기 집권을 할 수 없도록 사실상 차단했다. 자신만 장기집권 하겠다는 구상이다. 독재자의 상징인 이오시프스탈린(1878~1953년, 재임 1924년 1월~1953년 3월)도 29년 2개월 남짓 집권했다. 민주주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푸틴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가 그만큼 연장된 셈이다.

푸틴은 개헌안이 러시아 상·하원의 승인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까지 받자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년, 집권 1917~1924년)의 생일인 4월 22일 이를 국민투표에 붙일 계획이었다. 교묘한 상징 조직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3월 11일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을 선언하면서 푸틴은 결국 3월 25일 대국민 연설에서 국민투표를 연기했으며 나중에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로 날짜를 잡았다.

애국주의로 지지층 결집, 권위주의로 시민 탄압


▎한 청년이 러시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 마지막 날인 7월 1일 모스크바 시내 푸쉬킨스카야 광장에서 ‘헌법 개정안 거부’라고 쓴 천 조각을 들고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반대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국민투표에 앞서 6월 14일에는 옛 소련에서 ‘대조국전쟁’으로 불렀던 2차대전에서의 조국방위를 기리는 러시아군 대성당을 기공했고, 18일에는 2차대전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찬양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2차대전에서 나치와 소련에 협공을 당하고 숱한 학살과 파괴를 겪었던 폴란드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푸틴은 이를 무시했다. 대성당 기공과 2차대전 역할 찬양 논문은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위한 분위기 띄우기 라는 혐의가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6월 24일에는 원래 5월 9일 열 계획이었다가 코로나19로 연기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했다. 근사한 군사 퍼레이드, 2차대전 전승의 추억으로 국민이 애국주의 물결에 빠진 상황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치르는 수순이었다. 푸틴은 ‘애국주의’를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제시하며 종전 75주년 행사를 지지층 결집의 계기로 삼았다. 그 결과는 푸틴의 정치적 승리였다.

푸틴은 올해로 첫 대통령 취임 20년을 맞았다.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초대 러시아 대통령의 사임으로 총리에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 푸틴은 2000년 5월 대선에서 당선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1년 무너진 소련에서 신생 러시아로 체제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권좌에 오른 푸틴은 초기에는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푸틴 집권 초기는 경제적으로는 불경기, 사회적으로는 ‘포스트 공산주의’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 체첸 분리독립 운동이 심화하면서 체첸은 물론 러시아 각지에서 테러가 벌어졌다. 2002년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 둠 쿨리크 극장에 난입해 관객과 배우, 시민들을 억류해 인질극을 벌였다. 당시 러시아 특수부대는 위험한 마취제를 살포한 뒤 진입해 사태를 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167명의 사망하고 700여 명이 다쳤다. 2004년에는 또 다른 체첸 반군이 카프카스 북오세티아의 베슬란 지역의 한 공립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군이 진압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334명이 목숨을 잃고 500여 명이 부상했다.

2011~2013년에는 러시아 총선에서 집권한 통합러시아당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당시 푸틴 총리의 독재를 우려한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2011년 12월의 시위는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들어선 뒤 벌어진 최대 규모의 시민 항의운동이었다. 시민들은 시위와 불복종 운동, 인터넷 행동 등으로 항의에 나섰다. 러시아 당국은 시위자에 대한 벌금 인상과 반정부 세력 탄압, 그리고 인터넷 통제로 맞섰다. 친푸틴·친정부 단체인 나시(청년 민주주의 반파시스트 운동)의 회원들이 시위대와 대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사건도 발생했다. 나시는 러시아 인구 늘리기와 군 입대 장려 운동을 펼친 극우 성향의 단체다. 이 과정에서 푸틴 정권은 갈수록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갔다.

에너지 자원 팔아 권력 지탱, 경제 개발엔 소홀


▎러시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 개표 모습 / 사진:REUTERS=연합뉴스
2012년 대통령에 복귀한 푸틴은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패럴림픽을 치렀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합병했으며 우크라이나 동부의 내란에 개입했다. 크림반도 합병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를 불렀으며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8년에는 FIFA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푸틴이 지난 20년 동안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핵심은 에너지 자원이다. 풍부한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 덕분에 푸틴은 집권 20년 동안 러시아의 경제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2019년 통계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1조6378억 달러로 한국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 11위다. 2011년 GDP보다 6.4배 정도 증가했다. 1인당 GDP는 1만1162달러로 세계 61위다. 세계 평균 1만1355달러에 약간 못 미친다. 참고로 소련은 붕괴 직전인 1990년 명목금액 기준으로 GDP가 2조7000억 달러로 세계 2위였으며 1인당 GDP는 9200달러로 세계 28위였다. 당시 소련 인구는 약 2억9000만 명이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석유 생산은 하루 8066만 배럴에 이르렀으며, 러시아는 1080만 배럴을 생산해 미국(1504만 배럴)과 사우디아라비아(1200만 배럴)에 이러 세계 3위의 생산국이다. 천연가스도 러시아산은 물론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물량까지 자국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으로 독점 수출해왔다. 푸틴은 ‘에너지 차르’로서 국제적 명성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이 전체 수출의 60%를 넘는 등 경제가 지나치게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러시아는 자체 기술로 비행기, 자동차, 선박 등을 자체 생산하지만 이를 구입해가는 외국은 그리 많지 않다. 천연자원 대국에 과학기술도 발달했지만 이를 경제 발전으로 연결하는 치밀한 전략이 부족한 상황이다.

푸틴으로선 러시아 경제를 그 다음 단계로 올리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푸틴이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열쇠가 여기에 들어있다. 이 때문에 푸틴은 에너지에서 얻은 외화를 바탕으로 2024년까지 26조 루블(약 440조원)을 투입해 러시아를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해왔다.

유가하락·실업증가·인권문제에 봉착한 러시아

하지만 국제적인 저유가로 정부 기금이 줄면서 경제발전 추진이 여의치 않게 됐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로 교통수단이 통제되면서 석유 수요가 역사적인 수준으로 감소해 유가가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외출규제 등으로 경제난이 심화하고 있다. 연말까지 실업자가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외출규제의 전면적인 해제와 강제휴업에 따른 손실을 보상하라는 항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인구 1억4500만 명의 러시아는 7월 3일 확진자가 66만 명을 넘어 미국(283만 이상), 브라질(150만 이상)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하루 확진자 발생 건수는 5월 11일 1만1656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조금씩 줄긴 했으나 7월 2일에도 여전히 하루 6760명이 새로 발생하는 등 크게 꺾어지는 않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도 푸틴은 이동금지를 차례로 해제하고 경제를 재가동 할 수밖에 없다. 그가 내세운 애국주의와 권위주의의 철권통치는 국민투표 찬성률은 높일 수 있었지만 코로나19를 잡고 경제를 되살리는 데는 별로 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승리는 경제 부흥과 사회 안정을 통해서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유가가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푸틴이 어떻게 경제부흥의 길을 열지 의문이다. 개헌 국민투표로 장기 독재 발판을 마련한 푸틴이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할 준비는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러시아 내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구의 경제제재는 중단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푸틴의 장기 집권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궁금증이 더해갈 수밖에 없다. 한반도와 국경을 마주한 러시아다. 그 나라의 절대적인 지도자인 푸틴의 앞날을 조심스럽게 주목할 수밖에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42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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