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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유턴 대기업’ 현대모비스의 속사정] 행사 당시 유턴기업 신청 안 해, ‘행사용’ 급조?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타사 ‘국내복귀 투자 체결식’도 열려… 지원기준 완화돼도 세제 혜택 못 봐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으로는 처음 해외 사업장을 국내로 복귀시킨 유턴기업”이라고 추켜세웠던 현대모비스가 당시에는 ‘유턴기업’으로 신청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기업이 해외 생산 감축 계획과 국내 생산 계획 등의 보고서를 코트라에 제출해 심의 받은 후 산업부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현대모비스는 기공식 이후 유턴기업으로 신청했다”고 밝혔다.

유턴기업이란 해외에 생산시설을 운영하던 기업이 이를 폐쇄·축소하고 국내로 복귀해 같은 사업을 하는 기업을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3년부터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 ‘조세특례제한법’을 근거로 유턴기업을 지원해왔다.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은 5년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최대 100% 감면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내 생산과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 정책 목표다.

하지만 유턴기업은 많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유턴기업지원법을 시행한 2013년 12월 이후 2019년 5월까지 근 6년 동안 국내로 유턴한 기업은 60곳에 불과했다. 연평균 10개꼴이다. 특히 2018년까지 해외에서 돌아온 대기업은 전무했다. 2019년 8월 28일 현대모비스가 울산에 부품공장을 세우면서 대기업 가운데 처음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 참석행사 이틀 뒤 ‘유턴기업’ 신청


▎현대모비스가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 15만㎡ 규모로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부품공장 건설 현장 모습. 시험 생산을 거쳐 내년 초 양산에 들어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8월 28일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개최된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현대모비스가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사업장을 국내로 복귀 시켜 울산으로 이전한다”며 “2013년 해외 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법을 제정해 해외 진출기업의 유턴을 추진한 이래 양과 질 모두에서 최고”라고 극찬했다. 다음날 청와대도 홈페이지를 통해 “현대모비스의 울산 투자는 해외 자동차 부품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국내로 복귀한 유턴투자로,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대기업 최초의 유턴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현대모비스가 유턴기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유턴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대모비스가 코트라(KOTRA)에 유턴기업으로 신청한 날은 8월 30일이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9월 26일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코트라 관계자는 “기업이 국내에 투자한 뒤 1년 이내에 유턴기업으로 신청할 수 있지만, 보통은 투자 이전에 신청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경제 자강’을 강조하기 위해 현대모비스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모비스를 ‘유턴기업’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모비스 사업과는 이렇다할 관계가 없었던 중소·중견기업들의 국내복귀 투자 양해각서 체결식 행사를 현대모비스의 울산공장 기공식장에서 진행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코트라는 현대모비스의 울산공장 기공식 날 기공식 행사장에서 자동차부품기업 5개사와 ‘국내 복귀 투자 양해각서 체결식’을 함께 열었다. 일종의 유턴기업 행사였다. 하지만 이날 코트라 투자 협약에 현대모비스는 참여하지 않았다. 현대모비스는 산업자원부, 울산시와 따로 투자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들 5개 기업과 현대모비스를 하나로 묶어 6개 기업이 국내에 복귀해 총 364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현대모비스를 언급하며 유턴 투자 의미를 말하는데 당연히 현대모비스도 유턴기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 측은 “기공식과 양해각서 체결식은 전혀 다른 행사”라며 “현대모비스는 5개 기업의 국내 복귀 투자 양해각서 체결식과는 크게 관계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코트라는 왜 중견·중소기업들의 투자 협약식을 현대모비스 기공식장에서 열었을까. 코트라 관계자는 “5개 회사는 현대차그룹의 1~2차 밴더사로 현대모비스와 아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코트라와 투자 협약을 맺은 5개사 가운데 일부는 울산에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은 곳도 3곳에 불과했다.

현대모비스가 유턴기업으로 포장돼 정부에 이용당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세제 감면 등 혜택을 받지 못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유턴기업’으로 굳이 인정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9월 유턴기업으로 선정됐지만 ‘지원 대상’으로 분류되지는 못했다. 유턴기업으로 선정되더라도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받으려면 해외 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그 조건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감면 못 받으면 유턴기업 의미 없어


산업부 관계자는 “유턴기업으로 지정되는 것은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 무조건 세금 감면을 받는 기업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2019년 8월 13일 유턴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유턴기업 선정과 지원에는 해외사업장 생산량 50% 이상 축소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해외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축소해야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았고,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해외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축소해야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두 제도가 병립했지만 선정과 지원의 조건은 같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난해 유턴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유턴기업 신청 조건과 유턴기업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차이가 생겼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국외 사업장을 25%만 줄이고 국내로 복귀해도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조세특례제한법은 해외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축소한 기업을 지원한다는 내용 그대로 유지됐다.

현대모비스가 코트라에 유턴기업으로 신청한 것은 유턴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일로부터 17일 지난 뒤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대모비스 같은 큰 기업이 세금 감면 등의 수혜 기준을 몰랐을 리 없다”며 “세제 지원 대상이 아닌데도 유턴기업으로 신청한 것은 유턴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높게 평가했거나, 정부의 눈치를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원기준 완화돼도 현대모비스는 혜택 못 봐

지난 7월 22일 기획재정부는 생산량 감축 조건 등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유턴기업 선정기준은 그대로지만, ‘해외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축소한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준다’는 지원 조건은 삭제했다. 다만 해외에서 생산량을 감축한 만큼 국내에 투자할 경우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모비스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전망에 그쳤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세법개정안을 통해 유턴기업 지원 기준이 완화됐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 유턴기업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지원 대상”이라며 “이미 국내에 들어온 현대모비스는 지원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정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확률이 높은데, 그 이후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아야 개정안에 따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를 온전하게 ‘유턴기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해외 생산량을 25% 이상 줄이고 같은 시설을 국내에 만들어야 하는데, 꼭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울산에 지은 공장은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을 만드는 공장이다. 연간 최대 1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내년 1월부터 본격 가동해 점차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그런데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중국에서 이 같은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가 축소했어야 한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중국에서 진행하던 사업과 현재 울산공장 사업과는 차이가 있다”며 “중국에서 전기차 관련 부품을 일부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모듈과 관련한 제품 생산 비중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생산량이 축소된 것도 사드 등 업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 국내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일부러 생산량을 감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대모비스의 최대 고객사인 현대차 공장이 있는 지역으로 오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현대모비스와 현대차그룹의 관계를 고려하면 전기차 등 친환경차 생산을 늘리려는 현대차그룹의 기조에 맞춰 관련 부품 생산 공장을 옆에 두는 게 낫다고 평가한다.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는 상당 부분 국내에서 만들어질 예정인데 그 중심이 되는 지역이 울산으로 꼽힌다. 현대모비스가 울산에 공장을 짓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친환경차 생산 대수를 연간 90만 대까지 늘릴 방침이다. 현대모비스도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 생산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을 미뤄보면 현대모비스는 특별히 ‘유턴기업’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 울산에 공장을 지은 것은 전기차 핵심부품을 만드는 전략의 포석이지, 다른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46호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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